신임 원내대표, '친박' 강재섭 선출
한나라당은 11일 오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행정도시법안 국회 통과에 따른 당내 혼란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김덕룡 전 원내대표 후임으로 강재섭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강 의원은 재석 1백1명 의원들 중, 55표를 얻어 1차에서 과반을 획득해 치열한 경쟁을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무난히 당선됐다. 나머지 두 후보의 득표수는 권철현 의원이 32표, 맹형규 의원이 13표를 획득했고 무효는 1표였다.
이날 경선 불참을 선언한 ‘수도지키기투쟁위원회(수투위)’의원들 가운데,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박세일, 단식중인 전재희 의원을 포함해 이재오, 김문수 의원 등 7명의 의원들만이 참석하지 않았다.
친박(親朴) 그룹인 강 의원이 선출되면서 행정도시특별법 국회통과에 따른 내분 사태 해소 작업과 동시에 위기에 처한 박근혜 대표 체제가 일단 안전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강재섭 신임 원내대표의 앞길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심각한 양상을 빚고 있는 한나라당의 내홍과 '행정도시법'통과에 따른 후속대책, 3대입법 등 문제의 해결방안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강 원내대표가 여야관계의 돌파구를 어떻게 마련해나갈지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강재섭-권철현 후보간 치열한 신경전
강 의원은 이날 국회 본청 146호실에서 한나라당 소속의원 120명 가운데 101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의원총회에서 과반인 55표를 얻어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당초 2차 결선투표까지 갈 것이란 예상도 있었지만 강 의원은 각각 32표와 13표를 얻는데 그친 권철현 후보와 맹형규 후보를 1차 투표에서 가볍게 눌렀다.
그러나 앞서 시작된 원내대표 토론에서는 후보간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날 첨예하게 대립된 후보는 강재섭, 권철현 후보로 권 후보가 강 후보에게 던진 질문이 발단이 되었다.
권 후보는 강 후보를 겨냥, “그간 주요 당직자 시절, 개혁을 성사시켰던 일이 있으면 한번 말해보라”고 답변을 요구. 강 후보는 즉각 “그간 무대에 올라보지 못했을 뿐”이라며 영남지역출신에 대한 색안경으로 보는 시간은 문제가 있다고 반격했다.
또 강 후보는 “지난 대선 당시 이회창 전 총재에게 젊은이들은 DDR을 하는데 한나라당은 오케스트라를 부르는 마인드를 가졌다고 충고했으나 수용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권 후보를 겨냥해 강 후보는 “권 후보가 보기에는 제가 미래를 못 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근시지만 망원경으로 볼 것은 보고 있다”며 신경전의 수위를 높였다.
특히 강 후보와 권 후보 사이의 격론이 오가는데 비해 권 후보와 맹 후보는 보이지 않은 연대감이 조성되는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 강 후보는 두 후보에게 “언론에서 서로(권 의원, 맹 의원) 밀어주기로 하자고 단합설이 나오고 있는데 두 분이 밀어주자 하면 결국 1들은 강재섭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냐”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권 후보는 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맹 후보와의 친분을 소개하고 “강 후보야 말로 연대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불안해하는데 그렇게 흥분해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한편 행정도시법 처리와 관련된 공통질문에서는 세 후보 모두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았지만 미묘한 시각차이를 보였다.
맹 후보는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하나 국민에게 많은 부담이 될 수 있는 대목은 수정해 나가겠다”고 말했고, 강 후보는 “솔직히 대통령이 반성하고 거부권을 행사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권 후보는 "정치적 이익과 국가적 이익간의 문제이지만 이를 놓고 당이 친박, 반박으로 갈리는 것은 천박한 일"이라고 의견을 내놨다.
권 후보는 "권력 구조, 시스템 개선이나 새로운 인물들 영입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연 총체적인 위기를 느끼느냐에 달려있다"고 주장했고, 맹 후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합"이라며 박 대표 흔들기에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내기도 했다.
강 원내대표, ‘내분 수습 강조’
의원총회에서 당선된 앞으로 신임 강 원내대표는 우선 박세일 정책위의장의 의원직 사퇴서 제출, 전재희 의원의 단식농성, 당내 수도권지키기투쟁위원회(수투위) 소속 의원들의 지도부 총사퇴 요구 등 행정도시법 통과에 따른 후유증을 수습하고, 국가보안법 등 쟁점법안에 대한 당론 결집에 주력할 방침을 밝혔다.
강 대표는 선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당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다방면의 사람들을 만나고, 해결점을 찾아보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당 내분 수습을 강조했다. 이날 강 대표는 원내대표 선출 직후 단식중인 전재희 의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강 대표는 당내 반대파 의원들에 대해 "그 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줄 것"이라며 "당내에서 연구하고 투쟁하는 기구는 얼마든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 대표는 "이를 국회에 설치하는 것은 나눠먹기식이 될 수 있다"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국회특위 구성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강 대표는 이어 4월 임시국회 전략과 관련 "각 임시국회마다 우리 당이 지향하는 임시국회는 어떤 국회라는 포장과 내실이 있는 국회를 운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입법, 4월 임시국회서 처리 유보
국가보안법, 과거사법, 사립학교법 등 3대입법과 관련해 강 대표는 “다른 첩첩이 쌓여 있는 일들이 많은데, 여당이 4월에 이 이슈를 제기해 혼란에 빠트리지 말 것을 일단 촉구한다”고 처리 유보를 주장했다.
그는 “당 내부에선 여당이 3대법의 처리를 강행할 경우를 대비해야 하지만, 밖에서는 항상 강하게 얘기해야 한다”며 “4월국회에서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하면 저쪽에서 밀어붙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강 대표는 "3대법이 어떤 법은 본회의에 있고, 어떤 법은 상임위에 있어, 처해있는 상황이 지금 다 다르다"며 "우리 당의 당론을 다시 보고 과거와 같은 것은 추인하고 조금 달라질 부분은 시정해서, 한나라당안에서도 확실한 입장을 정리해놓고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협상 파트너인 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에 대해선 "실용주의적 생각과 내실이 있는 안정감있는 분"이라고 칭찬한 뒤, "과기정통위원회에 같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인간적으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당초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강 원내대표는 당의 조속한 안정을 바라는 의원들과 대구.경북(TK) 지역 의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 낙승을 거뒀다.
행정도시법에 찬성입장을 보였던 강 원내대표의 선출로 한나라당 지도부는 현 정책기조를 유지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강 원내대표가 평소 대화와 타협, 상생의 정치를 강조해온 만큼 여야 관계에서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표 안정화 기반 마련, 그러나 내분 잠복(?)
행정도시 특별법의 여야 합의를 지지하며 '친박' 그룹인 강 의원의 당선으로, 위기에 몰렸던 박근혜 대표 체제는 안정화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또 반대파 의원들 일부가 이날 경선을 참석치 않았지만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박세일 의원과 단식중인 전재희 의원, 이재오, 김문수, 안상수 등 수도지키기 투쟁위원회(수투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7명의 의원들만 불참해 반대파의 동력도 크게 약화된 모습을 보였다.
한 반대파 의원은 "당내에서 논의의 장을 마련해 준다면 들어가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지속적인 외곽 투쟁에 부담감을 피력했고, 단식중인 전재희 의원도 강 대표를 만나 "국회가 열리기 전에 방을 뺄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3월내 단식 중단 의사를 시사하기도 해, 당 내분은 완연한 수습국면으로 돌입하는 분위기다.
이로써 당 내분사태는 잠복기로 접어들었지만 행정도시특별법 찬반론으로 촉발된 분열은 언제든 새로운 이슈로 반복될 소지를 남기고 있다.
강재섭 원내대표 차기대권주자(?)
현재로선 박근혜-강재섭 ‘투톱’간에 별다른 마찰의 소지가 없어 무난한 연착륙이 예상되지만, 박 대표와 강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모두 TK 출신이라는 점에서 ‘탈영남 전국정당’을 지향하는 한나라당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으며, 쟁점법안에 대한 당론 결집도 당내의 다양한 이견으로 인해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또 박 대표와 강 대표 모두 차기대권후보라는 점도 불안요소 중 하나다. 강 대표 본인은 "대통령 후보도 아닌데..."라며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당내에선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대표와 원내대표가 모두 대권후보란 점을 볼 때 이들이 불안한 동거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며 "양측 모두 TK를 발판으로 대권을 준비할 것이란 점에 비춰볼 때 상호보완관계에서 언제든 경쟁관계로 돌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강 대표는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선수가 많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3선들끼리 서로 경쟁하다보면 당 분열에 직면할 수 있다"며 "나는 화합적으로 살아왔고 남과 각세워 투쟁하지 않았다. 비교적 양보했고 이 대목에서 꼭 필요한 사람 아니겠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강 대표의 발언은 27명이나 되는 3선의원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사람은 같은 3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곧 대다수 의원들이 요구하는 화합과 안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5선 의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행정도시법'으로 위기에 몰려있는 박 대표 역시 3선 의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강 대표의 발언은 박 대표 리더십에 대한 문제지적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창당이래 최악의 상황속에서 무거운 짐을 떠맡은 박근혜-강재섭 투톱체제가 어떻게 호흡을 맞춰 갈지는 가까운 시일안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내대표 경선이 마무리 됨에 따라 후임 당직 인선도 주목된다. 김무성 사무총장, 전여옥 대변인 등 반대파 의원들로부터 공격의 타깃이 됐던 당직자들이 원내대표 선출 이후 일괄사퇴 의사를 밝힌 만큼,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곧 있을 당직인선에서 박 대표의 선택도 내분 수습에 중대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임 강재섭 원내대표 그는 누구?
경북 의성 출생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검사출신의 5선의원으로, 박근혜 대표와 함께 대구경북 지역을 대표하는 잠재적 대권 주자로 꼽힌다.
전두환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법무 비서관을 거쳐 민정당 청년자원봉사단총단장 민자당 대변인, 신한국당 원내총무, 한나라당 부총재 등을 역임, 한나라당의 역사와 정치행보의 궤를 같이해왔다. 1987년 노태우의 '6.29 선언'의 사실상 집필자로도 알려지고 있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에는 이회창 후보 정치특보를 담당했으며, 2003년 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특유의 친화력이 강점이나 동시에 다소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함께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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