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기업들이 대중소를 막론하고 너도나도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 운동(?)에 참여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겉과 속은 사뭇 다른 듯하다. 삼성, LG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신입사원들의 연봉을 10% 가량 삭감하겠다는 내용을 경쟁적으로 발표했지만, 정작 실행 여부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것. 이로 인해 노동계를 비롯한 각종 시민단체 등에서 정부의 고용확대를 빌미로 재계가 요구해 온 임금삭감만 관철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잡셰어링 동참 뜻을 밝힌 기업들 또한 할 말은 많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이에 본지가 딜레마에 빠진 이들 기업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올 들어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한 채용시장의 문이 더욱 좁혀진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정부는 경제부흥의 일환으로 산업의 중추돌이 되는 기업들을 살리고,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윈-윈’정책을 내놓았다.
이게 바로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이다. 잡셰어링은 기업들의 신규채용시 신입사원의 초임을 삭감하므로써 더 많은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
이에 삼성과 LG 등 30대 그룹은 앞다퉈 동참 뜻을 밝혔다.
잡셰어링 동참한 기업들, 말 못할 속사정
최근 삼성그룹은 계열사별로 순차적으로 채용공고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올해 계열사별로 대졸 신입사원 초임을 10~15% 삭감하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재정적 여력을 잡셰어링과 교용 안정화에 활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확한 채용규모와 시기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잡셰어링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계열사별)채용규모나 활용계획 등은 지금 검토에 들어간 상태이므로 세부계획이 나올 때까지는 시일이 좀 걸릴 듯하다”라고만 밝혔다.
LG그룹도 이달 말 채용공고를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5천여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한 LG는 올해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을 계열사별로 5~15% 줄여 신규 채용을 하겠다고 밝혔다.
30대 그룹 ‘잡셰어링’ 너도나도 동참 말뿐…채용규모·시기는 ‘침묵’
노동계 등 비난 여론 불구, 할 수 밖에 없는 기업들의 말 못할 속사정
하지만 LG 역시 삼성처럼 구체적인 채용시기 및 규모 등에서는 밝히지를 않고 있다. LG관계자는 “대졸신입 연봉 삭감 등에서 마련된 재원을 인턴 채용에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경우 또한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을 삭감해 인턴사원 1천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의문 부호를 단다. 그도 그럴 것이 강성 노조와 협의 과정에서 상당한 마찰이 빚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일자리 나누기’가 정부의 시책인 만큼 재계의 큰 흐름 속에 동참하고 싶다”전제한 뒤 “하지만 신입사원은 입사와 동시에 대다수가 노조원에 가입이 되는데 이들의 연봉을 삭감하려면 노조와 협의를 해야하는 상황이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진퇴양난에 빠진 30대 그룹
이 외 잡셰어링에 동참하는 기업들 대부분이 올해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을 삭감하겠다고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시기와 채용규모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잡셰어링 동참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팽배하다. 이 같은 조치가 실제 고용확대로 이어질지 미지수란 것이다. 또한 각 그룹들의 합의가 어느 정도 이행될지도 불투명할 뿐 아니라 이행 과정에서 노사갈등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노총을 비롯한 각종 시민·노동 단체에서는 기업들이 정부의 고용확대를 빌미로 재계가 요구해 온 임금삭감만 관철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잡셰어링에 동참키로 한 기업들로서는 난감하다. 특히 이들 기업들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30대 대기업들의 경우엔 더욱 난처한 입장이다.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더는 외면할 수 없을뿐더러 이명박 정부가 핵심 정책 과제로 일자리 나누기를 추진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H그룹 한 관계자는 “며칠 전 임원 회의에서 잡셰어링에 대한 일부 비판 여론을 의식해 기존 임원들의 임금까지 삭감키로 했지만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으로 대치됐다”며 “현재 신입사원 초임 삭감을 두고 말이 많음에도 불구 회사로서는 여러 가지 상황상 선뜻 채용규모와 시기를 정하기 힘든 점이 많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