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일 재판관 퇴임식서 비판
김영일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11일 퇴임식에서 정치권, 특히 여당에 대해 헌재결정을 폄하하는 세력이라며 맹비난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김영일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그동안 헌재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온 정치권과 사회 일각의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 재판관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강당에서 동료 재판관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자신의 정년 퇴임식 에서 “헌재가 중요한 사건에서 내린 결정들을 폄하하는 등 지각없는 행위를 자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들이 진정 나라를 위하고 헌법을 수호하며 국민 의지를 대변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지난해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한 위헌결정 이후 '사법 쿠데타'라는 비판과 헌재 폐지론을 제기한 정치권을 향해서는 구체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또 김 재판관은 "헌재를 폄하하는 지각 없는 사람들이 헌법 수호와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헌재 재판관 구성의 다양화를 통해 사회 각계의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과 관련, "법 정신을 찾고, 의미를 전달하는 작업은 오랜 생활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정신을 흔들림 없이 찾아온 법률가만이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치적 감각이 헌법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헌재 결정에 영향을 준다면 국민의 기본권은 헌법의 장식물에 그칠 뿐"이라고 말했다. 이는 문석호 의원 등 열린우리당 의원 10명이 “헌재 구성을 다양화하자”며 제출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는 또 “헌재 결정이 정치적 기준에 따라 내려질 경우 헌정질서가 이완되고 (그 폐해는) 결국 헌재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 재판관들의 정치적 판단을 경계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65년 5회 사법시험에 합격, 법조계에 입문한 김 재판관은 매사에 철저하고 깐깐해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동기들 사이에서 ‘대법관’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김 재판관은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으로 재직하던 1996년 8월 12.12 및 5.18 사건의 1심 재판장을 맡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징역 22년6월을 선고했다. 1999년 12월 헌재 재판관에 임명된 김 재판관은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엔 증인으로 불려나온 안희정·여택수씨를 매섭게 추궁, 눈길을 끌었다. 두 차례 ‘세기의 재판’을 맡아 전·현직 대통령 3명을 상대하면서 한치도 흔들리지 않은 그의 꼿꼿함은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 재판관은 그동안 호주제에 대허서는 합헌,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해서는 위헌판단을 내리는 등 보수적인 의견을 견지해왔다.
헌재 재판관 구성을 둘러싼 법 개정을 앞두고 미묘한 시기에 터져 나온 이번 김 재판관의 쓴소리에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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