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설립된 애경그룹… 장 회장 이어 장남 채형석 부회장이 그룹 총괄
지난해 비자금 조성 의혹 등으로 전격 구속된 채 부회장… 보석 석방 논란
애경그룹의 경영 승계구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지난 2006년부터 어머니인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아 사실상 그룹의 총수 역할을 맡아오던 채형석 총괄부회장이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휘말려 구속됐기 때문이다.
최근 채 부회장은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 받게 됐지만, 그룹 경영 일선에서는 떨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사실상 그룹의 총수 자리는 공백 상태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채 부회장의 공백으로 인해 애경그룹의 경영 및 후계구도에 비상이 걸린 만큼, 재계의 ‘잔다르크’라고 불리는 장 회장이 어떤 회심(?)의 결단을 내리지 않겠냐는 말들이 오가고 있다.
애경그룹 후계구도에 대파란을 예상하고 있는 재계 일각의 목소리를 본지가 정리해 봤다.

지난 1950년 설립돼 비누 제조회사로 출발한 애경은 우리에게 주방용 세제 ‘트리오’로 더욱 친숙한 기업이다.
식기 등을 씻는다는 의미를 담은 트리오는 애경이 만든 국내 최초의 주방용 세제로 공전의 히트를 치며, 수많은 카피상품을 쏟아냈다. 지금도 세탁세제인 ‘퍼펙트’ 등을 생산하며 생활용품 제조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애경은 2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애경은 최근 유통부문 등으로까지 진출해 기업의 활동 영역을 넓히며, 재계 순위 50위권 내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비누회사로 시작한 ‘애경그룹’
애경그룹의 가장 큰 어른인 장영신 회장은 지난 1972년 남편인 채몽인 애경유지 사장이 작고한 이후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애경의 경영을 맡아 그룹을 성장시켜 온 신화적 인물로,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경제인으로 꼽히고 있다.
장 회장은 남편인 고 채몽인 애경유지 사장과의 사이에 3남1녀의 자녀를 뒀다.
장 회장의 장남인 채형석(49) 부회장은 지난 2006년부터 어머니를 이어 애경그룹의 전반적인 업무를 맡아왔으며, 2남인 채동석(45) 부회장은 애경유지공업(애경백화점), ARD 홀딩스 등 그룹의 유통·부동산부문을 맡고 있다.
3남 채승석(39)씨는 애경개발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그는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한성주씨의 전 남편으로도 유명하다.
외동딸인 채은정(46)씨는 애경(주) 마케팅지원부문 상무를 맡고 있으며, 그의 남편인 안용찬(50)씨가 애경(주) 부회장을 맡아 그룹의 생활·항공부문을 책임지고 있다. 애경은 장 회장의 자녀 모두 각 계열사를 맡아 장 회장을 보필하는 형식으로 그룹을 이끌어 왔다.
그룹 급성장 주도한 채 부회장
현재 장 회장은 지난 2006년 11월 그의 장남인 채형석 부회장에게 경영바통을 넘겨주고 그룹 경영 일선에서 손을 뗀 상태다.
그룹의 황태자로서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보스턴대 경영대학원(MBA)을 마치고, 지난 1985년 애경산업에 입사한 채 부회장은 여느 재벌 2세와 같은 행로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여느 재벌과는 달리 집무실에 소파와 책상, 벽걸이에어컨이 전부일 정도로 소박하며 평소에도 검소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로 평가 받아왔다.
채 부회장은 입사 후에는 차분히 경영수업을 받으며 어머니인 장 회장을 도와 애경그룹의 입지 넓히기에 매진했다. 그러던 지난 1999년 그룹의 신성장동력원 찾기 일환으로 부동산개발업에 뛰어든 채 부회장은 직접 부동산개발을 위해 ARD홀딩스를 설립, 자신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 ‘애경백화점 리노베이션’이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애경백화점 매출이 부진을 면치 못하자 과감히 식품매장을 없애고 대신 GS슈퍼마켓에 공간을 임대했다.
그룹 총수로서 ‘도덕성 논란’ 함께 신사업 부진으로 ‘경영자질’까지 거론돼
재계 일각, “유통부문 통해 그룹전면에 부각중인 채동석 부회장이 다음…”
뿐만 아니라 백화점 내 수영장을 없애고, CGV와 대형서점을 입점시키며 애경백화점 리노베이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 그 공을 인정받아 2002년 그룹의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것은 그가 추구하고 있는 독특한 경영방식인 ‘윈-윈 시스템’이다. 애경이 취약하거나 미숙한 부문은 과감히 다른 기업에게 맡겨 같이 상생한다는 전략인 것이다.
또한 채 부회장은 애경의 베트남 진출도 성사시켰다. 그는 2003년 베트남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 생산법인 AK-VINA를 설립해 페인트 공장을 준공했다.
AK-VINA는 베트남 정부로부터 투자허가 라이선스를 받아 설립한 생산법인으로 수지·특수페인트를 먼저 생산한 후 화학제품, 생활용품 등으로 품목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채 부회장은 AK-VINA를 인도차이나반도 시장의 교두보로 활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로도 채 부회장은 2006년 제두항공 출범, 2007년 삼성플라자와 SMK 인수, 2008년 대기업 최초의 부동산개발회사인 AMM자산개발 설립 등 애경그룹 성장사에 획을 그을 굵직한 사안들을 주도해서 추진해왔다.
비자금조성의혹에 후계구도 휘청?
사실상 그동안 재계에서는 애경그룹의 경영승계는 마무리됐다고 평가했었다. 채 부회장의 경영성과가 눈에 띌 만큼은 아니었지만, 장 회장의 고령의 나이 등의 이유로 경영 전면에서 뛰고 있는 채 부회장이 곧 그룹 총수 직에 오를 것이라 예상돼 왔다.
그런데 지난해 12월17일 그룹의 실질적 오너 역할을 해온 채 부회장이 비자금 조성 의혹 등으로 전격 구속되면서 공들여 진행해온 애경의 경영승계구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채 부회장은 지난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회사 공금 20억원을 빼돌려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05년 대구 섬유업체 대한방직이 소유한 7만9000㎡의 토지 매입 협상 과정에서 우선매수권을 달라며 설범 대한방직 회장에게 15억여원을 전달한 혐의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채 회장은 애경백화점 주차장 부지 주상복합상가 중 상가부문을 사들인 나인스에비뉴가 은행 대출을 요청하자, 이에 동의하는 대가로 6억여원을 받아 챙겼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그룹의 실질적 총수가 검찰에 구속되자, 재계 일각에서는 “그룹의 중요 사업을 추진하던 채 부회장의 구속으로 경영 공백이 생기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자 애경그룹 측은 “애경은 지난 2006년 말부터 3개 사업부문별로 부문 부회장 책임경영체제로 운영되어 왔기 때문에 그룹 경영에는 전혀 영향이 없을 것이며, 그룹이 영위하는 사업 또한 이전과 다름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계의 시각은 달랐다. 소비자와 접점이 많은 그룹 특성상 오너 구속이라는 대형 악재가 그룹 이미지에 큰 타격이 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그룹 운영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채 부회장은 지난 1월23일 구속 한 달 여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유전무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채 부회장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재판부가 그의 보석신청을 수락한 것이다.
덕분에 채 부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게 됐다. 애경그룹 등에 따르면 현재 그는 경영일선에는 참여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경영일선에 복귀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앞으로 재판 기간도 얼마가 더 걸릴지도 불투명한 상태이기 때문에, 재계에서는 당분간 채 부회장의 그룹 총수로서의 역할 수행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애경 후계구도 ‘대파란’ 오나
채 부회장의 악재는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번 사건으로 그룹 총수로서의 도덕성 등의 심판을 받고 있는 그가 그룹 경영자로서의 자질까지 의심받고 있는 것. 채 부회장이 야심차게 진행했던 저가항공 사업과 부동산개발 사업은 극심한 경기 침체와 환율, 기름값의 상승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채 부회장이 그룹의 신성장동력원으로 그의 동생인 채동석 부회장과 적극적으로 준비해왔던 분당 삼성플라자(현 AK플라자) 사업 역시 그의 공백으로 채동석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서 사업을 이끌고 있어, 그 공이 사실상 채동석 부회장에게 맞춰져 있어 그의 입지를 더욱 좁게 하고 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채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그 자리를 채동석 부회장이 대신하지 않겠냐는 말들이 오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2002년부터 경영에서 손을 뗀 장영신 회장은 더 이상 경영 일선으로의 복귀는 어렵다. 고령의 나이 탓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룹의 총수직을 마냥 비워둘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재계의 ‘잔다르크’ 장 회장이 후계구도에 대파란을 낳을 회심의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 재계의 전망이다.
더욱이 장 회장은 평소 경영인으로서의 도덕성과 명예 등을 중요시여긴 만큼, 비자금 조성 의혹 등으로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준 장남 채 부회장에게 어떤 식으로든 벌을 주지 않겠냐는 추측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애경그룹 관계자는 “후계구도는 이미 결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변동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고 있다.
그러나 이미 대외적으로 애경그룹의 전면에 채동석 부회장이 나서고 있는 만큼, 이대로 채 부회장의 재판이 길어져 경영 공백이 길어지면 애경그룹의 경영 승계작업에도 수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