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말, AR코리아 마스터 라이센스 종료되면서 제일모직 ‘니나리찌’ 인수
‘니나리찌’ 라이센스 둘러싼 끊임없는 잡음…AR코리아 이어 쌈솔과도 대립중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대기업의 ‘갑의 횡포’에 한 중소기업이 또다시 도산의 위기에 처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남성 드레스 셔츠 전문기업인 ‘쌈솔’이다. 쌈솔은 지난해 자사 셔츠 브랜드인 ‘니나리찌’(NINA RICCI, NR) 마스터 라이센스사가 AR코리아에서 제일모직으로 바뀜으로써 기업의 존폐위기에 까지 처해 있다.
쌈솔측은 제일모직이 니나리찌를 독식하기 위해 처음부터 마음에도 없는 재계약을 통해 자사에 엄청난 불이익을 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제일모직측은 라이센스 재계약은 단지 회사를 처분할 수 있는 기간을 준 것 뿐이라는 엇갈린 입장을 내놓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니나리찌(본사 푸치그룹)는 프랑스에 본사를 둔 명품 및 고급패션의류, 액세서리 및 향수 등을 제조하는 업체로 국내에서는 주로 남성복, 드레스 셔츠, 골프웨어 등으로 잘 알려진 중·저가형 브랜드이다.
20여년 전에 한국에 소개된 니나리찌는 그동안 AR코리아에서 마스터 라이센스를 가지고 각 품목별로 나눠 쌈솔, 원풍물산, 크리스패션, 이센스 등 10여개 중소 패션업체들과 서브 라이센스를 맺고 사업을 진행해 왔다.
제일모직이 탐낸 ‘니나리찌’
그러던 2007년 말, AR코리아와 니나리찌 본사의 마스터 라이센스 계약이 종료되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니나리찌의 상표 사용권을 AR코리아가 아닌 대기업인 삼성 제일모직이 가져갈 것이란 게 알려지면서, 20여년 동안 니나리찌를 키워온 AR코리아와 제일모직 간의 신경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당시 AR코리아와 본사의 마스터 라이센스 계약은 표면상 계약이 종료된 상태라 법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AR코리아측은 ‘20여년 동안 브랜드를 가꿔온 것에 대한 배려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제일모직이 터무니없는 로열티 금액을 제시해 공정거래에도 위배된다’며 법적 절차까지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 2008년 2월경 결국 국내 니나리찌 마스터 라이센스는 제일모직이 가져가게 됐고, 그 이후로는 AR코리아와 제일모직의 분쟁은 잠잠해진 듯 보였다.
그러나 니나리찌와 관련된 라이센스 계약에는 또다른 복병이 있었다. 바로 10여개의 서브 라이센스사들과의 계약 부분이 그것이다.
당시 제일모직이 니나리찌의 마스터 라이센스사가 되자 패션업계 일각에는 ‘제일모직이 여성명품과 잡화 품목만 먼저 직접 전개하고 신사복과 드레스 셔츠, 골프 등 타 복종은 당분간 기존 업체들에게 영업권을 맡길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또다른 일각에서는 ‘제일모직이 순차적으로 서브 라이센스 품목에 대한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이를 회수하고 직접 전개해 나갈 것’이라는 말들도 오갔다.
당시 제일모직측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한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고, 결국 그로인해 새로운 논란이 대두됐다. 바로 최근 니나리찌의 서브 라이센스사 중 남성 드레스 셔츠를 생산하고 있는 ‘쌈솔’과의 라이센스 계약 논란이 그것이다.
지난 3월24일 쌈솔의 서울 봉이동 사무실에서 만난 조재수 대표이사는 지난해 니나리찌의 마스터 라이센스가 제일모직으로 넘어가고, 그해 5월 제일모직과 라이센스 사용 재계약을 맺기까지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고 한탄했다.
조 대표는 “제일모직이 지난해 5월 재계약을 맺으면서 ‘앞으로 계속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해놓고선, 이제와서 말을 바꿔 ‘회사의 방침이다. 2년 내로 브랜드를 정리하라’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30여년간 남성 셔츠업계에 몸 담아 왔던 조 대표는 지난 1998년 쌈솔 ‘니나리찌’를 첫 선보였다. 당시 니나리찌 셔츠사업을 하던 ‘동양어패럴’이 97년 최종부도가 나면서 그가 니나리찌 셔츠 사업을 인수하게 된 것이다.
그후 조 대표는 10여년간 AR코리아와 3년마다 라이센스 재계약을 해오면서 지금의 쌈솔을 만들어 왔다.
쟁점 1. 제일모직은 말 바꾸기 달인?
조 대표에 따르면 그러던 지난 2007년 12월, AR코리아의 라이센스 계약이 종료될 당시 제일모직 기획과의 이모 부장이 그를 찾아와 ‘마스터 라이센스를 우리가 가져올 것 같다. AR코리아에 만났다는 것은 비밀로 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2월 제일모직이 본사와 마스터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고, 4월경부터 계약서 수정작업을 거쳐 5월21일 제일모직과 쌈솔도 서브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여기서 논란의 첫 번째 쟁점이 시작된다.
조 대표는 제일모직이 재계약 후 중간에 말을 바꿔 사업을 정리하라고 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삼성측은 처음부터 사업을 정리할 수 있는 유예기간 개념으로 재계약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제일모직이 재계약 당시에는 계속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놓고선 지난해 7월경부터 안 좋은 소문이 돌아 확인해 보니, 그제서야 ‘회사의 방침이다’라며 사업을 2년 내로 정리하라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재계약 당시부터 애초에 브랜드를 회수해 갈 것이라면 지금 상품과 매장을 인수해 가던지, 새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9년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제일모직측은 “그렇게까지야 가겠냐, 더 좋은 관계가 될 것이라고 사탕발림을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때문에 재계약 당시부터 자신은 사업을 정리해야 된다는 것은 몰랐고, 그런 부분은 계약서 상에도 적혀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쌈솔, “제일모직이 사업 계속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중간에 말 바꿨다” 주장
제일모직, “처음부터 재계약 사업정리 위한 유예기간, 몰랐다는 것 말안돼” 반박

제일모직측 “니나리찌 본사에서는 이미 2006년부터 AR코리아에 더 이상 계약할 마음이 없음을 공지했고, 이를 조 대표가 몰랐을 리가 없다. 처음부터 재계약은 서브 라이센스사들이 재고를 정리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찾을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며 “2년이라는 유예기간은 유례가 없다. 그만큼 중소기업들을 배려해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 계약을 담당했던 기획과 이 부장은 26일 본지와의 전화통화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재계약서 상에도 ‘재계약은 단지 사업정리를 위한 유예기간’이라는 부분을 명시해 조 대표에게 메일로 보냈었지만, 이를 거부해 그 조항은 뺏다”고 주장했다.
또 “여러 차례 만나면서도 누누이 상품 물량을 줄이고 매장수를 줄이는 등 2년에 걸쳐 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볼 것을 여러번 권했다”며 “직접 찾아오면 계약서 부분은 눈으로 확인시켜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7일 기자가 직접 사무실로 찾아가자 이 부장은 “어제는 내가 뭔가를 착각했다. 그런 조항을 넣자고 내부적으로는 말했지만, 계약서를 직접 작성한 변호사 및 실무자들이 그 조항은 넣지 않기로 한 것 같다”면서 “계약서가 여러 차례 오갔기 때문에 내가 오해한 것 같다”고 말을 바꿨다.
쟁점 2. 위약금 물며 유예기간 왜?
제일모직측은 그러면서 자신들도 쌈솔 등에 2년이라는 유예기간을 주면서 사업을 진행하지 못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본사로부터도 패널티 명목의 위약금을 물었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이 두 번째 쟁점이라 할 수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대기업인 제일모직이 왜 위약금을 물어가면서 스스로 서브 라이센스사들에게 유예기간을 주고,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본사가 정리해도 될 부분을 왜 자처했느냐는 것이다.
조 대표는 이 부분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며 “본사와 AR코리아의 라이센스 계약이 종료되고, 본사에서 브랜드를 회수해 갔다면 나도 수긍했을 것이다. 또 그런 유례는 많이 있다. 하지만 제일모직처럼 대기업이 중간에서 서브 라이센스를 뺏어가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R코리아의 라이센스 계약이 끝나면서 우리가 단기간 안에 사업을 정리하면 브랜드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제일모직이 2년 동안 우리를 잡아놓고 서서히 죽이기 위해 재계약을 한 것”이라며 “재고도 아울렛 등에 풀지 못하게 해 재고가 쌓이고 백화점으로부터는 라이센스가 끝날테니 매장을 빼달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조 대표는 “제일모직은 본사에서 우리들의 제품이미지가 떨어져 이미지 개선 차원에서 직접 서브 라이센스 사업을 정리할 것을 요청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니나리찌 사업을 하면서 본사로부터 제품에 대한 경고를 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일모직측은 “2년이라는 유예기간을 준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닌 전 마스터 라이센스사인 AR코리아의 요청이었다”면서 “AR코리아와 서브 라이센스사들과 합의를 통해 2년이라는 사업정리 유예기간을 주게 된 것이다. 브랜드가 죽는 것을 막기 위해 2년 동안 잡아뒀다는 조 대표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 우리는 사업을 빨리 정리해 줄수록 좋다”고 반박했다.
때문에 쌈솔과의 계약을 담당했던 이 부장 역시 “지난 2007년 말에 니나리찌 계약에 앞서 조 대표를 만났던 것은 단지 ‘바로 사업종료가 가능한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하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제일모직이 ‘단지 유예기간을 주기 위해 재계약을 했다’면서도 쌈솔 등과 재계약을 하면서 로열티를 인상했다는 것 역시 쟁점중 하나가 되고 있다.
조 대표는 “지난해 초 재계약을 협상하면서 제일모직은 처음에 로열티를 엄청나게 인상해 줄 것을 요구했었다”면서 “하지만 여러 차례 협상 끝에 AR코리아와의 2억6600만원보다 약 34% 인상된 3억5000만원의 로얄티를 주기로 하고 재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일모직이 2008년 1차 년도는 3억5000만원, 2009년 2차 년도에는 2억8000만원으로 계약서를 작성해 와서, 1·2차 년도를 같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제일모직이 미리 더 받길 원해서 그렇게 했다”고 설명했다.
또 “제일모직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상표 사용을 종료했다면 본사에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고 6개월에서 1년 동안 사업을 정리할 수 있는 기간을 받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계속 사업을 같이할 마음도 없는 제일모직이 로열티를 대폭 인상해 재계약을 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조 대표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역시 제일모직측은 조 대표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이 부장은 “금전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계약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AR코리아와 똑같이 맞춰 받았다”면서 “회사간 일이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조 대표는 마케팅과 샘플비용 명목으로 1억원 가량을 따로 AR코리아에 납입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브 라이센스사들에게 유예기간을 줌으로써 본사에 물게 된 위약금과 로얄티 인상분의 차이가 얼마나 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자세한 금액은 말해줄 수 없지만, 위약금에 비하면 로열티 인상분은 미비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 제일모직 무혐의 결론
결국 ‘쌈솔의 니나리찌 라이센스가 종료된다’는 소문에 40여개에 달하던 백화점 매장이 절반으로 줄고, 매출도 급감해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 대표는 “내심 처음에는 대기업인 제일모직이 니나리찌 마스터 라이센스를 가져가게 되면 마케팅 홍보 효과도 좋아 매출도 늘 것으로 기대했었다”며 “하지만 제일모직은 재고분도 인수할 수 없다, 다른 브랜드를 찾을 기간도 더 줄 수 없다는 등 막무가내로 기업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조 대표는 “공정거래위원회에도 이런 부당한 사업활동방해에 대해 신고했지만, 지난 3월8일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지금은 전체 250여명이 넘던 직원도 사무실에 고작 5명만 남는 등 간신히 어음만 막아가며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모직측 역시 “결국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분쟁은 대기업이 욕을 먹게 되어 있다. 쌈솔측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재고를 가져가거나 사업 기간을 연장해 달라는 쌈솔측의 입장은 들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공정위의 관계자도 “공정거래위원회는 합의·중재 기관이 아니다. 법을 위반한 혐의가 없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라며 “두 업체는 종속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제일모직이 위약금 물며 2년의 유예기간을 준 것으로 충분한 배려를 했다고 본다. 오히려 전 마스터 라이센스사인 AR코리아가 충분히 고지를 안했거나 라이센스를 지키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두 기업의 분쟁은 이해 당사자간의 합의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