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은 여야 승부처, 지역은 집안싸움 공개 전투장
정동영 “재보선 출마, 선대위원장도” 정세균 “NO!”
‘미니총선’, ‘MB정권 중간평가장’으로 불리며 거물들의 귀환 소식으로 더 뜨거웠던 4·29 재보선에서 ‘거품’이 빠지고 있다.
좌절된 거물들의 귀환
3월28일 현재 확정된 재보선 지역구는 국회의원 5곳, 광역의원 3곳, 기초단체장 1곳, 기초의원 4곳, 교육감 2곳이다.
4월 재보선은 현역 의원들 중 1, 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 이상을 받은 곳이 적지 않아 재보선이 가능한 지역구가 최대 10여 곳 이상으로 늘 것으로 기대되며 ‘미니총선’이라 불렸다. 하지만 3월31일까지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형이 확정돼야 해당 지역구가 4월 재보선에 포함되기 때문에 큰 변동이 없는 한 현재 확정된 지역구에서만 재보선이 치러질 것으로 보여 재보선에 대한 기대감은 한풀 꺾였다.
또한 재보선을 달아오르게 했던 거물들의 귀환 소식도 사그라졌다. 서울 은평을에서 출마, 정계로 복귀할 것이라는 관측을 불렀던 이재오 전 의원은 귀국 일정을 확정했지만 당분간 현실정치와 거리를 둔 정중동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팬클럽인 ‘재오사랑’ 회원들에게도 귀국에 즈음한 ‘공항출입 금지령’을 발동시킬 정도로 최대한 조용히 귀국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이 전 의원은 귀국 후 집과 사무실을 오가며 집필활동에 전념할 계획이다.
원외에서 원내로 진입을 꿈꿨던 박희태 대표도 재보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인천 부평을과 울산 북구 등 출마 지역구가 논의됐지만 결국 장고 끝에 불출마를 선언한 것.
박 대표는 “이번 재보선에는 나서지 않겠다. 지금은 전 국민이 경제살리기에 심혈을 갖춰야 할 때고, 특히 대통령부터 국민들이 한덩어리가 돼서 오로지 경제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며 재보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최근 짧은 휴가지만 부인과 함께 경상북도 북부지방을 좀 여행했다. 낙동강 바람을 씌며 평상에 앉아 막걸리를 먹고 있는데 집사람이 ‘저 유유히 흐르는 장강처럼 인생도 그렇게 사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낙동강을 한번 더 쳐다봤다. 참 평온하게 유유히 잘 흘러가더라. 그래서 나도 그렇게 사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면서 부인의 만류가 결정적 계기가 됐음을 전했다.
자신의 출마로 재보선이 정쟁화되는 것을 우려했다는 박 대표는 ‘10월 재보선’에 대해서는 “10월 재보선이 있을지 없을 지 하늘만이 안다. 그런 걸 가지고 지금부터 국민 앞에 이야기하기는 좀 빠르지 않나”고 즉답을 피했다.
한나라당 안팎에서 김덕룡 국민통합특보의 인천 부평을 출마설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공성진 최고위원은 “거물이라는 것이 경제 살릴 수 있는 거물이 되어야지, 그저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고 거물이 되겠느냐”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공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 내부적으로 결정한 것은 경제 살릴 수 있는 적임자가 후보가 돼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라며 “부평도 그렇고 울산도 그렇고 공단이 많고 경제 문제가 가장 중요한 현안”이라고 말했다.
‘골칫덩이’로 돌아온 정동영
재보선 출마가 거론되던 ‘거물’ 중 출마를 선언한 이는 정동영 전 장관뿐이다. 재보선 출마와 불출마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던 정 전 장관은 미국에서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전주 덕진 재보선 출마를 선언했다.
텃밭인 전주지역에서 공천개혁으로 참신한 인재를 세워 MB정권을 시험대로 올리는 것과 동시에 여기서 시작된 ‘바람’을 재보선 전체로 확산시킨다는 전략을 구상했던 민주당 지도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당 주류는 당의 재보선 전략도 전략이거니와 대선후보에 나선 데다 지난 총선에서 수도권 지역에 출마, “뼈를 묻겠다”고 했던 정 전 장관의 전주 덕진 출마에 강한 반감을 표시했다. 반면 정 전 장관측은 “정 전 장관은 모든 면에서 충분히 당의 새로운 기치를 세울 수 있는 카드”라며 “정치적인 의도나 목적에 따라 카드를 스스로 폐기하고 없애버리는 듯한 태도는 당 발전을 위해서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또한 당 지도부가 전주 덕진을 전략공천 지역구로 확정, 사실상 정 전 장관에 대한 공천 배제 방침을 정하자 “그런 상태가 되면 이미 분당이라고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세균 대표와 정 전 장관은 지난달 24일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 전 장관은 전주 덕진 출마와 함께 선대위원장을 맡아 재보선을 책임지겠다고 말했지만 정 대표는 정 전 장관의 불출마와 함께 당 내 여러 사람과 충분히 대화를 나눌 것을 조언하면서 이들의 대화는 결렬됐다.
정 대표와의 회동 이후 정 전 장관은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의 오찬과 문희상 국회부의장, 조세형 고문과 박상천 전 대표 등 당 중진·원로 인사들과의 면담 등 광폭행보를 걸었다. 그러나 “예견됐던 상황 중 최악의 상황이다. 전주로 간다. 당분간 올라오지 않을 것”이라면서 전주로 향했다.
그는 재보선 무소속 출마에 대해 “조금 빠른 얘기다. 너무 이른 얘기다”라며 선을 그었으나 무소속 출마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당 내 일각에서는 “정 대표와 정 전 장관이 루비콘 강을 건넜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정 전 장관측이 무소속 출마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정 대표와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 정 전 장관으로서도 이번에 원내 진입이 어려워지면 정치 생명이 불투명해지는 만큼 원내 진입 후 2010년 지방선거와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에 다가갈 것이라는 분석이 커지고 있다.

재보선 키 쥔 박근혜
한나라당은 경주 재보선에 주목하고 있다. 경주는 ‘박심(朴心)’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으로 이번 재보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에 따라 당 계파 문제에 대한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이곳에서는 이상득 의원의 측근인 정종복 전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의 측근인 정수성 전 육군대장이 한판승부를 벌이고 있다. 정종복 전 의원은 당 공천을 신청했으며 정수성 전 대장은 무소속으로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선거전에 돌입했다.
경주 재보선 ‘친박’ or ‘한나라당’ 지원요청 “난감하네”
안경률 사무총장 “박근혜와 재보선 상의해 공천할 것”
박근혜 전 대표는 경주 재보선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정수성 전 대장이 출마 전 출판기념회를 열었을 때는 경주를 찾아 힘을 실어줬으나 3월20일 그의 선거사무실 개소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은 경주에서 박 전 대표가 해마다 참석해온 춘분대제가 열려 그의 경주행이 강하게 점쳐졌으나 박 전 대표는 다른 일정이 있다며 참석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박 전 대표가 경주에 내려가면 가뜩이나 친이·친박 대결로 시끄러운 선거판에 파장을 더하는 것밖에 되겠냐”며 “당 화합을 위해 경주행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수성 전 대장이 한나라당 공천을 포기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박 전 대표가 그의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 힘을 실어주면 지난 총선에서 받았던 ‘몸은 한나라당, 마음은 친박’이라는 비판을 되살리게 된다는 점을 의식한 행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미 정수성 전 대장이 경주의 대결구도에 의해 ‘친박 후보’라는 타이틀을 쥐고 있는데다 박 전 대표가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 그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것으로 ‘한나라당 소속 의원’으로써 할 수 있는 도움은 다 줬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박 전 대표 대신 그의 팬클럽인 박사모가 움직였다. 박사모는 홈페이지 게시판에 정수성 전 대장의 사무실 개소식 참석을 독려하는 글을 올린데 이어 개소식에 대거 참석했다.
그동안 박사모의 활동이 논란을 불러올 때마다 친박계에서는 “박 전 대표도 어쩌지 못하는 이들”이라며 거리감을 둬왔다. 그러나 정가 관계자들은 “팬클럽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조직”이라면서도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을 함께 가려는 이들이 아니겠냐”는 말로 이들의 행보에 섞인 박 전 대표의 ‘의중’을 짚었다.
특히 박사모는 지난 총선에서 이방호·이재오·전여옥·박형준·김희정 등 친이계 후보 5명에 대한 조직적인 낙선운동을 벌여 전여옥 의원을 제외한 4명을 떨어뜨리는 저력을 발휘했음을 지적하며 박사모의 경주행을 정수성 예비후보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정종복 전 의원에 대한 낙선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박근혜와 교감 가질 것”
한나라당도 이번 재보선에서 박 전 대표에게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안경률 사무총장은 재보선 공천과 관련, “공천 과정에서 (박 전 대표와) 서로 교감을 가질 것이고, 공천 결과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천이 결정되면 (박 전 대표도) 흔쾌히 도와줄 것”이라며 박 전 대표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박 전 대표도 당 지도부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며 “공심위가 공천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조율이 됐다고 보면 되고, 최고위에서 최종 결정이 되면 박 전 대표도 지지를 보내고 성원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치권은 이번 재보선에서 박 전 대표 특유의 정중동 행보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친이·친박계의 계파 갈등이 재현될 것을 염려해서 경주행을 취소했듯 이번 재보선에서 당의 지원유세 요청에도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것.
이런 ‘예고된’ 행보에도 불구, 안경률 사무총장의 지원 요청은 박 전 대표의 당 내 영향력을 확인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번 재보선에서 친박계와 한나라당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가 당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당 밖에 있는 친박계와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시켰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