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행정’도 모자라 업체 봐주기?
‘뒷북행정’도 모자라 업체 봐주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석면 탈크 화장품 형평성 논란에 싸인 식약청

베이비파우더 리스트 공개이후 석면이 검출된 화장품 리스트가 국민들의 우려 속에 지난 6일 공개됐다. 하지만 식약청은 리스트가 공개 된지 3일 만에 해명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려야만 했는데 이유인 즉, “유명화장품 업체 두 곳이 빠져있다”는 은폐의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잘 있던 규제기준이 하루 만에 달라지는 게 어딨냐”며 “베이비파우더와 화장품을 다른 잣대로 매긴 거 자체가 형평성에 어긋나니 않냐”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식약청의 규제기준과 그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본지가 집중 취재해봤다.

▲ 식품의약품안정청: 지난 6일 석면 검출 화장품 공개이후 유명 화장품 업체 두 곳 은폐 의혹


전반적인 화장품 매출이 성장세를 지속한 가운데 지난 2일 석면파동이후 파우더 투웨이 케익 등 분말 색조화장품을 중심으로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석면파동의 영향이 크다”며 매출 감소의 원인으로 ‘성인용 화장품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을 언급했다.

모 화장품 회사의 경우 색조 파우더의 제품 출시를 연기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이달 초 홈쇼핑 런칭을 앞두고 있던 이 회사는 홈쇼핑측에서 석면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일종의 ‘시험성적서’ 및 안전성에 관련한 서류제출 등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른 업체들마저 괴롭히고 있는 석면 검출 화장품은 무엇일까.

석면 검출 된 화장품

식약청에서 발표한 문제가 되고 있는 화장품은 1개 화장품 제조업체의 총 5개 제품으로 (주)로쎄앙의 로쎄앙휘니쉬훼이스파우더, 로쎄앙더블쉐이딩콤팩트 10호 및 20호, 로쎄앙퍼펙션메이크업베이스, 로쎄앙퍼펙션훼이스칼라인 것으로 나타났다.

▲ 석면 검출 된 (주)로쎄앙 화장품


특히 로쎄앙의 5개의 품목이 모두 덕산약품공업이 제조사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 외에도 덕산약품공업에서 탈크를 공급받은 업체는 무려 304곳이나 검출됐다.

때문에 식약청 위해사범중앙수사단은 지난 16일 이회사의 대표인 홍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로쎄앙 화장품 5개 품목서 석면 검출, 화장품에 대한 전반적 불신 ‘팽배’
안전 파악 쉽지 않은 1급 발암 물질 석면, 피부로 흡입하면 폐암도 유발

이처럼 석면 화장품리스트가 지난 6일 공개됨에 따라 로쎄앙의 5가지 품목의 화장품은 유통과 판매가 금지됐으며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화장품은 전량 회수명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미 판매가 된 화장품과 현재 로쎄앙 화장품을 사용하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보상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시민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실제로 로쎄앙의 화장품을 사용 한적 있다는 서울 봉천동에 A(29)씨는 “석면이 들어간 화장품은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냐”며 “내가 지금까지 피부 관리를 받은 돈이 모두 헛돈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아까워서 눈물이 난다”는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피부에 작은 뾰루지마저 용납하지 못하는 요즘 여성들은 피부과에 돈을 들여 관리까지 받는 현실이라 더욱 화가 난 모습이었다.

한 포털사이트의 네티즌은 “내가 피해를 당한 건 아니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며 관리당국의 도덕성까지 문제 삼았다.

규제기준 미흡, 국민 불신↓

탈크는 가루 화장품 대부분의 원료로 쓰이는 분말 형태의 광물로 보통 자연 상태에서 석면과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화장품 제조 공정에서 이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으면 석면이 그대로 들어간 화장품이 나오기 쉬운 것이다.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은 피부를 통해선 거의 흡수되지 않지만 파우더 가루의 경우 얼굴에 흡입하게 되면 적은 양이더라도 폐암을 유발 할 수 있어 위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화장품 제조업체들과 달리 원료를 수입하는 업체들은 신고 의무가 없어 안전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현황 파악이 쉽지 않아 지난해 10월 소비자들의 안전한 화장품 사용을 위해 ‘화장품 전성분표시제(화장품 케이스나 사용설명서에 함량 순으로 전 성분을 표시하고 별도 책자나 홈페이지도 마련해 이를 소개하도록 함)’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장품 업체 및 당국의 소극적 태도로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소비자들은 직접 업체에 일일이 문의해 성분표시를 물어야 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화장품 업체들이 성분을 영업 기밀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만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로는 미흡한 원료 관리 실정이 지적되고 있는데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국내에는 석면 검출과 관련한 규격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탈크 속 석면이 0.1% 이하로만 허용되는 일본이나 석면 검출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유럽 등 선진국에선 ‘의약·화장품 등에 석면이 검출돼서는 안된다’고 명문화 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 우리나라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또한 그들은 2005년부터 유아제품에 탈크를 쓰지 못하도록 규제한 데 반해 우리나라는 ‘석면을 0.1%이상 함유한 제품의 제조 및 수입을 금지하는 법’을 건축자재에만 적용해 석면 물품의 위험 기준을 모르는 국민의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거기다 공산품에 함유된 석면은 딱히 정해진 관리 부처가 없어 서로 떠넘기기 까지 하고 있으니 국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유명업체 두 곳 은폐의혹

관리당국의 석면 규제기준의 미흡에 이어 형평성 논란이 제기 되고 있다.

식약청은 지난 8일 석면 함유 화장품 은폐 의혹을 해명하는 설명회를 갖고 H사에 납품된 영우컴텍의 탈크 원료는 화장품용이 아닌 농업용(농약 등)에 사용하는 원료로 화장품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또한 의혹을 낳은 H화장품사 등 두 곳의 원료에서는 지난 3일 공표된 탈크의 규격기준에 적합한 것으로 판정돼 지난 6일 로쎄앙 화장품 발표시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H사가 유명회사 화장품이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냐”며 “중간에 무슨 말이 오가지 않고서는 그럴 수는 없다”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식약청이 하루 만에 적합, 부적합 잣대를 바꿔 불공평 은폐의혹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유무영 의약품안전정책과장은 “짧은 기간내 다수의 샘플을 검사하기 위해 한국화학시험연구원과 동시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식약청은 IR시험법(ㄱ)을, 연구원은 X-ray회절법(ㄴ)과 편광현미경법(ㄷ)을 각각 담당했다”며 “H사 등의 원료는 ㄱ, ㄴ에서 석면이 미검출됐으나 ㄷ에서 1개의 석면 의심물질(Trace)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판정은 탈크 규격기준이 마련되기 전인 지난 1일 발표된 석면 베이비파우더에는 적용되지 않아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마련된 탈크 규격기준으로는 ㄱ, ㄴ 시험법에 적합 판정될 경우 ㄷ의 판정 여부에 관계없이 규격에 부합하기 때문에 석면 검출명단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는 베이비파우더 석면 검출을 발표할 당시 식약청이 해당 12개 품목에 대해 ㄱ~ㄷ까지 종합 검사를 하고 이 가운데 하나라도 부적합할 경우 석면 검출로 규정한 것과는 다른 조치이기 때문에 의혹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같은 설명에 따르면 한국콜마의 베이비파우더가 지난 1일 석면 제품으로 된서리를 맞은 지 불과 하루 만인 지난 2일 심의한 탈크 규격기준으로는 해당 제품은 적합했다는 해석이며, 결국 한국콜마와 H사는 하루사이에 천국과 지옥행으로 운명이 갈린 것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식약청의 멜라닌 사태에 대한 대응 과정을 사례로 들어 이번 석면 사태에 대한 업체별 기준 적용에 고의성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식약청이 석면파동이 일어난 직후에 소비자의 우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석면 검출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방침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도 안 돼 검출량 미비를 이유로 석면 검출사실을 발표하지 않아 불신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모 인터넷 시민단체 카페에서 활동하고 있는 B(33)씨는 “이제 와서 부랴부랴 석면관련 제도를 정하면 뭐하냐”며 “현재 가지고 있는 규제기준을 가지고도 왔다갔다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데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관리당국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환경 관련 시민단체 등은 이미 5년 전 보고서를 통해 석면 탈크의 문제점을 인지하고도 현 사태를 부른 정부의 ‘뒷북행정’을 질타하며 각 부처의 제도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6일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식약청장, 노동청장과 함께 석면이 검출된 8개 베이비파우더제조사 대표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데 이어 ‘석면 베이비파우더 피해자 대규모 집단소송’을 제기할 방침이어서 석면 파동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