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장 관리 ‘허점’ 드러낸 경찰
최근 유치장을 빠져나간 수감자가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더욱 놀라운 건 이들은 6개의 출입문을 아무런 제지 없이 통과했으며 경찰은 25분이 지난 뒤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각처에서는 “경찰은 뭐하는 거냐”며 “차라리 내가 대신 철창을 지키겠다”는 원색적인 비난이 일고 있다. 이는 경찰의 총체적인 기강해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수뇌부의 조직관리 능력에도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받고 있어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지가 어떻게 된 사연인지 취재해봤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지난 13일 브리핑에서 “도망친 홍모(26)씨를 잡기위해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며 “더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취재요청에 진이 빠진 형사과장은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고 그나마 대답한 답변에는 최대한 자신들의 허점에 말을 가리는 모습을 보여줘 의혹은 더욱 가중됐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기자들은 “경찰이 말을 숨기고 있다”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원성을 사기도 했다.
대체 사건 당일 무슨 일이 있었길래 경찰은 말을 빙빙 돌리고만 있는 걸까.
너무도 쉬었던 그날의 ‘탈출극’
지난 12일 서울 도심의 유치장에서 수감 중이던 범죄자 두 명이 도망친 사건이 발생했다.
6개의 출입문 그냥 통과해 도망친 수감자…경찰 관리·감독 소홀 심각
곳곳에 난무하는 허점으로 곤욕 치르는 경찰…하지만 허술한 건 사실?
이들은 이모(36)씨와 홍모(26)씨로 서울과 강원 원주, 경기 광주 등지의 렌터카 회사에서 수천만 원 상당의 차량 3대를 빌린 뒤 이를 되팔아 판매 대금을 챙긴 혐의로 지난 4일 밤 체포돼 지난 6일 서울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찰서에 따르면 “사건발생 6시간 만에 이씨를 붙잡았으나 홍씨에 대해선 자수하겠다는 뜻만 확인한 채 위치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사진행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더욱이 붙잡힌 이씨가 평소 유치장 관리가 허술한 것을 알고 혼자 도망치려고 했으나 홍씨가 따라왔다고 전해져 그동안 경찰의 관리·감독이 소홀했음을 암암리에 인정하는 것이 돼 파문이 일고 있다.
또한 이 경찰서의 유치장은 2평가량 공간의 감방 8개가 반원형으로 배치돼 있으며 감방 앞 중앙에 형사 3명이 하루 3교대로 책상에 앉아 유치 대상자를 관리하고 감시하는 구조로 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즉 외부에서 감방 안으로 들어가려면 유치인 면회실 출입문을 거쳐 유치장 출입문을 지나야 하고 마지막으로 감방 앞의 철창문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경찰은 유치장 출입문과 감방 철창문 두 곳은 항상 시정장치로 잠그지만 탈주 당시에는 두 개의 문이 모두 열려 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한 경찰의 해명도 가관(?)인데, “아침식사 후 방을 청소하는 시간과 근무교대 시간이 겹치면서 유치장 출입문이 열려 있었고 빗장을 건 뒤 자물쇠를 채우는 방식인 감방 문의 경우 당시 직원들이 문을 잠가놓은 것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건 착각이 아니라 할 생각을 아예 안 한 것이다”며 “차라리 관리가 소홀했음을 인정하고 잘못을 빌어라”고 말했다.
더구나 경찰은 유치장 중앙 책상에 누군가 앉아서 근무를 했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지만, 단 한명이라도 근무를 하고 있었더라면 문이 열려 있더라도 탈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찰의 말은 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반응했다.
심지어 경찰은 CCTV로 유치장 내부와 이들이 도주 모습을 충분히 볼 수 있었지만 눈뜬장님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덕분에 피의자 두 명은 의경이 지키고 있던 경찰서 후문을 유유히 빠져나가 남산 방향으로 도망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경찰은 일정부분에 대해선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만 어떤 부분에 대해선 계속 말을 바꾸거나 말 돌리기를 하고 있어 도주한 홍씨가 잡힌다 하더라도 경찰의 기강해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경찰이 입을 꼭꼭 다물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무엇일까.
허점투성이 수감자 관리·감독
지난 12일 경찰에 붙잡힌 이씨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게 뭐 이상한가 싶겠지만 유치장에서는 감자용 슬리퍼를 신게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 그 바쁜(?) 와중에 이씨는 언제 자신의 운동화로 갈아 신을 세가 있었던 것일까.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찰은 “수감자는 만 원 이하의 돈을 소지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이씨와 홍씨는 경찰서 근처인 힐튼호텔 부근에서 택시를 탄(돈은 홍씨가 지불) 것이다.
더욱이 이씨가 전화를 하다 붙잡힌 장소(홍씨와는 면목동에서 헤어짐)는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으로 만 원 이하의 돈으로는 가기 힘든 거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경찰은 초동조치에도 허점을 드러냈다.
근무교대를 하면 인원점검부터 해야 하는 근무 수칙을 지키지 않은 채 교대 시간이 25분이 지나서야 유치장에 2명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빠져나올 당시 근무교대를 위해 2명이 모두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는 것은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반응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이들이 경찰서 후문을 버젓이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남대문경찰서의 경우 후문은 쪽방이 밀집한 낡은 가옥들이 주로 위치했기 때문에 사실상 유동인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출입이 잦은 정문에 비해 외부인을 확인하는데 번거로움이나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경찰은 당시 경찰서 후문에 의경 1명이 근무 중이었다고 했지만 전혀 제지를 받지 않아 가장 기본적인 ‘경계근무 원칙’인 외부인출입 통제를 간과한 것이다.
게다가 ‘피의자유치 및 호송규칙’에 의하면 공범들은 서로 모의하지 못하도록 분리 유치하게 돼 있었지만 이씨와 홍씨는 같은 방에 수감돼 있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송치를 하루 앞둔 터라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었다”며 “이미 수사가 마무리 됐고 보안 수사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런 규칙이 있다면 당연히 지켜줘야 하는 게 아니냐”며 “결국 경찰이 일을 자처한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판이 오고갔다.
때문에 이번 사건은 ‘성매매업소와의 유착’, ‘뇌물수수’ 등 잇따른 파문으로 신뢰가 떨어진 경찰이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하고 ‘낮술금지’ 지침을 내리는 등 기강을 바로 잡겠다고 나섰지만 여전히 근무기강이 허술했음을 다시 한 번 더 못 박아 주는 계기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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