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고개를 푹 숙였다. 최근 검찰이 효성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계열사 임원 두 명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 이를 두고 세간의 눈과 입은 연신 씰룩이고 있다. 조 회장이 “(비자금)없다”고 호언장담한 것과 달리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부터 효성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벌였지만 명확한 혐의점을 찾지 못한 채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다르다. 아무런 이유 없이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았을 것이란 것. 물론 법원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계속될 전망이어서 본지가 끝나지 않은 효성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핵심 쟁점을 몇 가지만 짚어봤다.

비자금 조성 의혹에 조석래 회장 삼남 모두 등장, 친인척 동원까지 같은 수법
조 회장은 ‘효성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자신이 직접 나서 “(비자금)없다”고 공식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모양새가 조 회장을 자못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검찰이 효성의 건설 부문 임원 두 명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 앞서 검찰은 효성의 비자금 조성 의혹의 연장선상에서 효성중공업PG 김모 전무를 부품 값을 부풀려 수백억 원대의 차익을 남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효성 비자금 조성 의혹’이 과거 대기업들의 비자금 조성 의혹사건보다 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이유는 조 회장이 ‘현직 대통령과 특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의 조카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셋째 사위인 것. 아울러 조 회장은 국내 재계를 이끌고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수장직을 연임해 맡고 있다.
이로 인해, 검찰의 행보를 쫓고 있는 세간의 시선은 효성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서 나아가 정·관계 로비 및 특혜 의혹까지 바라보고 있다.
Point 1. 효성, 건설 부문에 남다른 애착 이유
최근 검찰은 효성의 건설무문 고문 송모씨와 상무 안모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들이 수십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포착해 강도 높은 압박수사를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법원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하지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여태까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것은 그만큼 명확한 혐의점을 포착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의혹에 대해 검찰의 수사는 오래 전부터 진행돼 왔다. 지난 2006년 7월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으로부터 효성에 대한 첩보를 받은 뒤 수사를 해 왔던 것.
검찰은 지난해 12월 효성 건설 부문 전 자금관리담당 직원 윤모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60억∼70억원대의 자금 명세가 적힌 장부를 확보, 송씨를 수차례 불러 조사한 바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조 회장 일가가 효성의 건설부문을 통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지 않았을까하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효성은 지난 1957년에 효성물산으로 창립해 섬유, 화학, 중공업, 무역, 정보통신등 산업 전반에 걸쳐 진출해 있다. 하지만 유독 건설 부문에서만큼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물론 장기화된 경기 악화등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효성은 건설 부문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초 국내 건설업계에서 알짜건설사로 평가돼 온 진흥기업을 전격 인수한 것. 당시 M&A시장에서조차 효성이 진흥기업을 인수하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여기서 효성이 건설 부문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엿볼 수 있었다. 당시 진흥기업을 인수하는 데 있어 조 회장의 둘째 아들인 조현문 부사장이 물밑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새삼 화제를 낳기도 했다.
진흥기업 인수를 계기로 건설 부문에서 덩치를 키운 효성은 업계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에서도 효성의 야심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효성이 그렇게 남다른 애착을 보였던 건설 부문이 이번 효성의 비자금 조성 창구로 활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나아가 검찰은 진흥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조 부사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효성의 비자금 조성 의혹은 효성 고위 임원 출신이 국가청렴위(현 국민권익위원회)에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된 회계 자료를 넘겨주면서 시작됐다.
내용인 즉, 효성이 2000년께 일본 현지법인을 통한 수입부품 거래과정에서 납품단가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
이 같은 수법은 ‘경찰’의 수사에서도 똑같이(?) 드러났다. 납품단가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 당시 경찰은 육군 마일즈(MILES·육군의 다중 통합 레이즈 훈련체계)사업 비리 수사를 벌이고 있었다.
여기서 경찰은 육군에 장비를 공급한 (주)로우테크놀러지(이하 로우)가 위장 거래를 통해 납품단가를 부풀려 수십억원의 이득을 챙긴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로우가 효성의 미국 현지법인을 거쳐 국방부에 납품한 사실이 드러났다.
나아가 로우의 실사주인 주모씨가 조석래 회장의 친인척이란 점에 무게를 두고 압박 수사를 벌였다. 본지가 확인한 바로는 로우는 (주)효성(구 동양나일론)의 방산사업부문이 떨어져 나온 기업이었고, 회사 역시 효성의 경북 구미 공장에 임대 방식으로 불과 얼마 전까지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계약만료로 이전한 상태이다. 또한 표면상 사장으로 등재된 이모씨 역시 10년간 효성에서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취재하는 과정에서 눈에 띤 것은 로우의 주요주주 명단에 조석래 회장의 막내 아들인 조현상 전무가 지분 13%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로우가 국방부에 납품한 야간표적지시기의 특허권은 회사의 실사주인 주씨와 그의 아내인 송씨, 그리고 조석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사장이 각각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본지가 파악한 바로는 주씨와 송씨 부부는 둘 다 서울대 출신 공학박사로 미국 오클라마호주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효성 일가가 친인척을 동원해 위장 계열사를 설립한 후 효성의 외국 현지 법인을 거쳐 납품 단가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대규모 비자금 조성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세간의 시각이 다소 부정적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과거 효성은 참여정부 시절 분식회계를 고백하는 기업에게는 처벌을 면제해 준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지난 2006년 당시 1500억원대 분식회계 사실을 자진 신고하기도 했다. 즉 해외 법인의 적자를 장부상에서 흑자로 바꿔 분식회계를 고백해 면죄부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지난 1일 검찰은 60억원대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교부한 혐의로 로우의 실소유자 주씨를 기소중지했다.
아울러 정치학도 출신인 조석래 회장의 장남 조현준 사장이 로우가 국방부에 납품하던 ‘야간표적지시기’의 특허권을 보유한 배경을 두고서도 말들이 많다.
본지가 취재한 결과 조 사장이 가지고 있는 이 특허는 지난 2003년 대리인 김모씨(피닉스법률사무소 소속 변리사)를 통해 특허를 출원, 2006년 2월 특허가 결정돼 그해 5월부터 ‘조현준, 주소지 서울 청담동 C빌딩’으로 특허가 등록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정작 특허권 소유자인 조 사장은 이를 전혀 몰랐다는 것.
이에 대해 효성 관계자는 “조 사장이 특허를 소유하고 있는지 개인적 일이라 잘 모르고 조 사장이 가지 있는 특허와 논란이 되고 있는 마일즈 사업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특허 출원시 출원자의 ‘인감’이 필요한 점으로 미뤄, 효성 관계자의 답변은 석연치 않다. 또한 특허권에 사용료에 대해서도 효성 관계자는 입을 굳게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