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정부 시절 자신을 임명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해야할 최종책임을 맡고 있는 임채진 검찰총장.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2007년 11월 검찰총장으로 임명 받았지만 이후 그를 수사하는 최고 책임자 입장에 서 있는 얄궂은 관계가 됐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임 총장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는 것을 고민했다. 검찰 입장을 지나치게 고수하는 등 코드가 달랐던 것. 여기에 임 총장의 강성 이미지도 한 몫 했다. 하지만 당시 안영욱 서울중앙지검장이 사법연수원 시절 방위병으로 근무했던 사실이 공개되면서 임 총장을 임명하게 된 것이다.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을 입버릇처럼 강조해 온 임 총장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까지 마치고나서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아니면 불구속 기소를 선택할지를 놓고 검찰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그들의 얄궂은 관계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임명됐던 임채진 검찰 총장.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맺은 인연은 얄궂다.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검창총장 임명을 받았지만 현재 그를 수사하는 최고 책임자로 만난 것이다.
이들의 만남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11월 정상명 전 검찰총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법무 연수원장이었던 임 총장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는 것을 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과 얄궂은 인연
임 총장이 법무부 검찰국장이나 서울중앙지검장을 역임할 때 검찰 개혁, 경찰의 수사권 독립,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등에 적극적이지 않는 등 검찰 입장을 지나치게 고수하는 모습이 불편해 쉽게 임명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당초 유력하던 안영욱 서울중앙지검장 카드는 검토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암초에 걸렸다. 안 지검장이 사법연수원 시절 방위병으로 근무했던 사실이 공개 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안 지검장 카드를 접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지검장이 사법연수원생 신분으로 방위병 복무를 한 것이 당시 관행이라고는 하지만 청와대는 여론이 군 복무에 유독 민감한 만큼 역풍을 부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 50%를 웃돌고 있는 국정 지지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여론을 의식했음을 내비쳤다.
청와대는 임 원장에 대해 ‘대가 세다’ ‘코드가 맞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고심했으나 정상명 검찰총장이 “검찰총장 인선은 조직 장악력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며 임 원장을 강력하게 천거하면서 분위기가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도 정 총장을 지원했다는 후문이 있다.
실제로 천정배 법무장관 시절 청와대 참모진을 중심으로 당시 검찰 국장이던 임 총장을 교체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무색무취한 안 지검장과 달리 임 총장은 성격이 강해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껄끄럽게 여길 만큼 임 원장은 목소리를 분명히 내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법무부 검찰국장 재직 때 여권의 공직부패수사처 신설 요구에 “옷을 벗는 한이 있어도 못 받아들인다”고 강하게 거부했다. 서울중앙지검장 때는 수뢰 혐의로 조사하던 기업인을 탈세 등 다른 혐의로 압박하는 수사 방식을 “비겁한 짓”이라고 꾸짖기도 했다.
실제로 임 총장은 2004년 법무부 검찰국장 시절 중수부 폐지, 형사소송법 개정 등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사법개혁에 반론을 제기해 후배들로부터 ‘할 말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 검ㆍ경 수사권 조정 갈등 때도 검찰의 ‘입’ 역할을 했었다.
검찰청장 후보로 내정될 당시인 2007년 11월. 한나라당이 단단히 벼르고 있어 임 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여 그의 임명이 불안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부터 ‘삼성떡값’ 수수 의혹을 집중 추궁을 받은 자리에서도 한치의 물러섬 없는 자세를 보였고, “의혹있지만 적합”하다는 평을 받으며 검찰청장에 임명됐다.
역경 딛고 일궈낸 자리
당시 국회 법사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임채진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해 ‘조건부 적합’ 취지의 인사청문회 경과 보고서를 채택했다.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문제지만 의혹이 총장 장애 사유가 되기 어렵다는 것.
법사위는 경과보고서에서 “후보자는 25년간 검사로 재직하면서 수사는 물론 검찰 업무 전반에 대해 풍부한 경험을 갖췄다”며 “대선을 중립적으로 관리하고 각종 의혹이 있는 주요사건의 법과 원칙에 따른 처리를 통해 법질서를 확립하는 등 직무수행에 필요한 자질을 갖췄다고 전반적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이어 “후보자가 삼성의 관리대상이라는 의혹이 제기돼 의혹에 연류된 후보자가 총장이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지적한 뒤 “후보자가 철저한 실체 규명을 다짐하고 있는 이상 제기된 의혹만으로 검찰총장 장애사유는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 총장은 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재신임에 대한 불안감을 갖게 됐다. 정권교체기에 임명되는 바람에 새 정부 출범 이후 재신임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관측이 나돌았던 것. 그러나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변이 없는 한 2년 임기를 채울 것이란 전망이 법조계 안팎에서 유력한 상황이다.
이른바 4대 사정기관장 가운데 임채진 검찰총장이 유일하게 유임된 것은 부처 장악력, 업무 능력 등 면에서 교체 명분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올해 큰 동요 없이 지난해부터 '드라이브'를 걸어 온 사정수사 및 임 총장이 올 신년사에서 밝힌 ‘경제위기 극복에 기여할 수 있는 검찰권 행사’ ‘국법질서 확립을 통한 국민과 정부의 위기극복 노력 뒷받침’에 적극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 전임 정상명 총장에 이어 검찰총장 임기제 확립 및 검찰 독립성 확보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는 평을 받았다.
임 총장은 한때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인사, PK(부산·경남) 출신이라는 점 등 때문에 교체 대상에 포함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교체설은 잦아들었다.
우선 검찰총장 2년 임기제(임 총장은 올 11월까지)가 명문화돼 있고 다른 3대 권력기관과 달리 정무직이 아닌데다 특히 검찰 내 신망이 두텁다는 점이다.
검찰 독립 강한 의지 피력
임 총장은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마다 검찰 간부들을 한 자리에 모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참석자의 의견을 끝까지 청취하는 방식으로 조직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거쳐 ‘임걱정’이라는 별명과 함께 ‘좌고우면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지난 1년5개월 재임 기간에 처리한 굵직한 사건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참모진이 국회 법사위 진용이 꾸려졌을 때 법사위원들과 식사를 건의했으나 5∼6차례 단호하게 거절했을 정도로 정치권과 거리 두기를 하며 조직을 안정시켜 왔다는 평가다.
지난 1년여 동안의 전반기 임기에 BBK사건, 촛불시위, 대선 및 총선사범 수사, 공기업 수사 및 사정수사 등을 큰 무리 없이 지휘하기도 했다.
임 총장은 또 기회 있을 때마다 “강한 검찰보다는 바른 검찰을 지향하고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을 지킬 것”이라며 “검찰의 합리적 결정에 외압을 행사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 온몸을 던져 바람막이가 될 것”이라고 강조, 검찰 독립에 강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자신의 성품을 보여주기라도 하 듯 지난 3월에는 정기 주례 간부회의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로비 의혹 수사와 관련해 “어떠한 외부적 영향도 받지 않고 검찰 자체의 판단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며 수사 결과에 대해서는 직접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임 총장은 또 정치적 중립성 문제나 편파수사 시비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대검 중수부의 최근 수사와 관련해 ‘구정권 사정’이라는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는 이어 “한 기업인으로부터 부정한 금품을 받은 정ㆍ관계 인사의 범죄 혐의를 밝히는 것”으로 규정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임 총장은 표적 수사 등의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품격 놓은 수사도 주문했다.
또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은 필요한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시행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검찰 수사가 궁극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검찰 구성원들에게 이번 수사를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 힘을 보태고 근거 없는 비난에 대해 모두가 수사팀의 일원이라는 충심으로 대응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총장으로서 검찰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도 함께 했다.
그런 그가 노 전 대통령을 수사 선상에 올려놓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재 일선 수사팀은 ‘법대로 하자’는 의견이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사팀을 이끄는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대표적인 특수수사통으로, 한번 시작한 수사는 끝을 보고야 마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본인은 이런 별명을 싫어하지만, 이인규 중수부장은 ‘재계의 저승사자’로 통한다. 지난 2003년 SK그룹 비리 사건을 진두 지휘해 최태원 회장을 구속시키면서 얻은 별명이다.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할 우병우 중수1과장도 검찰내 몇 안 되는 ‘칼잡이’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금융조세조사2부장 시절 3차례 영장을 청구한 끝에 김평수 전 교원공제회 이사장을 결국 구속시키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사건 수사에 투입된 검사 숫자만도 무려 21명, 역대 최대 규모다. 기자들이 특종을 욕심내듯, 일선 검사들도 ‘대어(大魚)’를 낚으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또, 흔히 대어를 낚는 시점을, 나중에 법원에서 유죄가 내려지는 시점이 아니라 수사의 최정점인 구속 시점으로 잡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구속된 다른 정치인들과의 형평성이나 앞으로의 수사 전망도 수사팀으로서는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했을 경우 향후 다른 수사 대상들에 대해서도 사실상 구속영장을 청구하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의 깊어지는 고민
하지만, 검찰 수뇌부는 법적인 요건 외에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가져올 국가 위신의 추락이나, 국민들이 안게 될 실망감, 정치권의 반발 등도 감안해야 하는 등 ‘플러스 알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임 총장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법무부 검찰 1.2과장과 검찰국장을 지낸 기획통이면서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장, 서울중앙지검장 등 일선 경험도 풍부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임채진 검찰총장. 업무처리에 사심이 없고 원리원칙에 충실하며 입이 무거워 보안의식이 투철한 한편 검찰이 지향해야 할 목표의식이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검찰국장 재직시 중수부 폐지, 형사소송법 개정 등 굵직한 현안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객관적인 판단을 토대로 장관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아 내부 갈등을 봉합하는 역할을 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취임하면서 ‘검찰이 지양해야하는 것은 수사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수사의 질과 품격을 높이는 데 있다’며 고품격 수사를 강조한 바 있다.
또 검찰이 인권을 침해한다면 ‘검찰제도의 본질에 대한 모욕이자 자존심에 대한 훼손’이라는 말로 인권 수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 2007년 11월,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해 검찰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임 총장은 현 정부 초대 검찰총장을 맡고 있으면서 올 1월 ‘4대 권력기관장’ 중에서 유일하게 유임할 정도로 현 정부의 신임도 두터운 상황.
지난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때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범죄정보관리과장으로 있으면서 수사팀과 함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을 이끌어 냈던 임채진 검찰총장.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을 입버릇처럼 강조해온 그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까지 마치고나서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아니면 불구속 기소를 선택할지를 놓고 검찰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어떤 결단을 내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