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탐욕’에 울부짖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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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문화 탐방] ‘상쾌한 하루’ 망치는 지하철 성범죄

‘범죄의 온상’된 출근길 지하철, 성추행범 대다수가 30대 화이트 칼라 회사원
‘어쩔 수 없는’ 또는 ‘의도된’ 밀착… 그 경계선 오가는 애매한 손길에 울상만


매일 하루 동안 지하철을 이용하는 서울 시민은 무려 860만에 달한다.
한마디로 ‘어마 어마한 숫자’가 지하철이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해 목적지로 향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인 만큼 이곳에서의 범죄 행위도 끊이질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범죄의 온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매일 성추행이 발생하고, 몰카를 찍는 남성들이 있는가 하면 소매치기들이 기승을 부리는 곳이 또한 지하철이다.
그러나 실제 성추행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여성들은 이러한 자신의 피해에 대해 제대로 호소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혹시 내가 잘못 느낀 것은 아닌가’, ‘보복이 두렵다’ 등의 이유로 인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잘못된 대처는 오히려 지하철 범죄를 지속적으로 유도하는 부분도 있다. 범죄자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아무런 대응이 없는 여성들을 보면서 계속해서 성추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쾌한 하루의 시작, 아침을 망치는 출근 시간 내 지하철 성추행을 집중 취재했다.


▲ 사진은 특정 기사 내용과 무관함.


서울 지하철 노선 가운데 가장 많은 성범죄가 일어나는 곳은 지하철 2호선이다. 이곳은 인천지하철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노선이 교차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용률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지하철 성범죄 수사대는 매일 아침 이러한 성범죄자들과의 사투를 벌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매일 그들을 검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검거율이 실제 성범죄율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검거율에 비해 적게는 5배, 많게는 10배 정도까지 성범죄가 자행되고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화이트 칼라’의 검은 손길

그렇다면 이렇게 성범죄를 저지르는 남성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결과는 꽤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뭔가 특별한 변태성향을 가진 남성들이 의도적으로 이러한 성범죄를 할 것 같지만 실제 드러난 결과는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30대 화이트 칼라 회사원’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가장 일상적으로 보이는 그들이 지하철 안에서는 돌연 ‘범죄자’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거되는 남성들 중 50% 이상이 초범이라는 점도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의도적이고 집요하게 성범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충동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서 성범죄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잠재되어 있는 성충동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변호사를 비롯한 전문직 종사자는 물론이고 한번은 주한일본 대사관 직원이 성추행으로 인해 수사대에 검거된 경우도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사회의 지하철 성범죄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은밀하고 충동적인 성적 욕망이 넘쳐나고 있다는 이야기하고도 일맥상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H씨의 고백을 들어보자.

“30대 화이트 컬러가 가장 많은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한편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솔직히 30대 화이트 컬러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는 허리나 척추와 같은 세대이다. 그만큼 일에 대한 압박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제 집에서는 아이가 막 크고 있을 즈음이라서 가정에서도 편안하게 쉬지를 못한다. 평일에는 회사에서 시달리고 주말에는 집에서 시달리는 형국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은밀한 욕구를 해소하는 방편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성범죄가 용인될 수는 없겠지만 잘못된 생각과 계기로 인해서 그런 스트레스를 풀고 잠시나마 짜릿한 기분을 느끼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 사진은 특정 기사 내용과 무관함.


하지만 지하철 내 성범죄의 심각성은 단지 범죄 행위 그 자체가 아니다. 바로 성범죄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는 정식으로 항의하고 문제가 생기면 경찰서로 가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일은 쉽지 않다. 피해자이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피해 사실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지하철 성범죄의 특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추행 당하고 오히려 반성?

그렇다면 여성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 우선 스스로의 생각을 ‘반성’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직접 지하철 성추행을 당한 직장여성 L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실 아침의 복잡한 지하철에서는 ‘밀착’에 대한 구분이 쉽지 않다. 누구라도 느끼듯이 오히려 그런 곳에서 밀착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밀려드는 사람들을 몸으로 막을 수도 없고 그들에게 내리라고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당연히 몸이 밀착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게 성추행의 의도에서 그러는 건지, 아닌지는 상대방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 없는 이상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그러니까 설사 그러한 의심이 든다고 하더라도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남들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그럼 지옥철이라고까지 불리는 지하철에서 그런 밀착이 없을 수가 없지 않냐’라는 이야기까지 한다. 놀랍고 당황스러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성추행을 신고하는 것에 대해 뭔가 보복이라도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신고를 막는 이유가 된다. 비록 지하철에서 오가면서 만난 낯선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신고 후 미행을 하거나 사소한 개인 정보 하나만을 알아도 보복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직장인 K씨의 생각이다.

“경찰서에 간다고 칩시다. 그리고 합의라도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합의를 받기 위해 서로 연락처도 교환해야 하고, 진술을 할 때에도 그런 전화번호는 쉽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일단 핸드폰 번호만 알면 그때부터는 위험 속에 갇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속적인 스토킹을 당할 수도 있고 심지어 브로커들과 연계해 개인 정보를 빼낸다면 이메일, 블로그, 싸이월드 등을 아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성추행을 당하고 화가 치솟아 신고까지 할 생각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러한 일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생각이 신고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사실 K씨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됐을 때 당사자는 성추행보다 더욱 심한 일상의 고통을 겪을 수도 있고 사회적인 관계가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

또 일부 여성들은 ‘번거롭다’는 이유 때문에 성범죄 신고를 기피하는 이유도 있다. 강간을 당해 신체에 상해를 입거나 후유증을 남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기분은 나쁘고 불쾌하지만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제대로 법적인 처리를 하자면 여러 번 경찰서에 가야하고 진술도 반복해야 하고 번거로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들었다. 차라리 그런 일을 감수하느니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것이다. 성질 같아서야 합의를 해서 수백만 원을 받아도 분이 풀리지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고통스럽고 괴로운데 어떻게 하겠나.”

하지만 여성들이 이렇게 신고를 꺼리게 되면 지하철 내 성범죄는 더욱 만연될 수밖에 없다. 범죄자들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지 않으니 그들은 자신들의 방법이 ‘먹혔다’고 생각하면서 지속적으로 성범죄를 행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능적인 성범죄자들의 경우 앞서 본 것과 같이 ‘어쩔 수 없는 밀착’과 ‘성범죄를 의도한 밀착’의 경계선을 의도적으로 애매하게 오가면서 여성의 심리를 교란하게 되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그럴수록 더욱 신고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그나마 지금의 성범죄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준/프리랜서
(www.heymanli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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