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野人)으로 돌아 갑니다”
“야인(野人)으로 돌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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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한나라당 전 원내대표

사실상 임기를 마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野人으로 돌아간다. 4월 임시국회를 끝으로 임기를 마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4일 한 라디오방송에서 “작년 6월 촛불 사태 때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이 총사퇴하고 여권 중심부에서 움직일 사람은 저 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가장 보람 있는 순간으로 꼽으며 “야인으로 돌아갑니다”라는 짧은 한마디를 남겼다. 4선을 지내는 동안 핵심 당직을 맡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돌다 지난 1년 간 여당 원내대표로서 여권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던 홍 원내대표. 거침없는 언행으로 ‘홍반장’으로 불린 그가 이달 말 임기를 마치고 원내지휘봉을 놓는다. 야인으로 돌아가는 그의 발자취를 들여다봤다.

집권여당의 원내사령탑으로 4월 임시국회를 끝으로 임기를 마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지난 1년 간 여당 원내대표로서 여권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던 홍 원내대표는 이달 말 임기를 마치고 다시 야인(野人)으로 되돌아간다.

물러나는 ‘與원내수장’ 홍준표

그동안 원내대표로서 당내 의견 수렴은 물론, 청와대와 조율, 야당과의 협상 등 크고 작은 일에 몸이 서너 개라도 모자랐을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비교적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 역시 스스로 “제가 맡은 입법 개혁은 90%를 다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지만, 지난 1년 간 원내대표를 거치며 강한 야당의 공세와 당내 의원들의 반발로 두 차례 사퇴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에는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으며, 지난 1월에는 야당과 입법 전쟁을 계기로 ‘함께 내일로’ 등 이재오계 의원들로부터 강한 사퇴 압력을 받았다.

하지만 이재오계가 나섬으로써 당내 갈등이 전면으로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은 친박계와 친이직계 등의 지원으로 홍 원내대표는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임기를 마치게됐다.

비록 4월 임시국회 마지막날 금융지주회사법 처리 부결 등으로 오점을 남기기는 했지만, 그는 특유의 솔직함과 돌파력으로 야당과 협상을 이끌어 종합부동산세 완화, 주택공사ㆍ토지공사 통합법 등 쟁점 법안을 처리해내기도 했다.

홍 원내대표는 1954년 경남 창녕에서 2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가난에 시달려야 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홍 원내대표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농사는 부업이고 판소리와 꽹과리, 시조를 읊는 한량이었다. 활쏘기와 술 마시는 것도 즐겼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항상 복종이었다”고 말했다.

1977년 고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재직한 홍 원내대표는 자신의 인생을 전환시키는 한 사건을 맡게 된다. 바로 ‘슬롯머신 사건’이다.

1993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 중이던 홍 원내대표는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씨 등 권력 실세들이 연루된 슬롯머신 사건을 맡는다.

세인들에게는 6공화국의 권력 실세들을 모조리 구속 기소한 것은 물론 당시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전 의원을 구속한 ‘모래시계 검사’로 잘 알려져 있으며 거침없는 입담으로 유명하다.

‘슬롯머신사건’때 명성 얻어

하지만 이 사건은 홍 원내대표가 검찰을 떠나야 하는 계기도 됐다. 당시 슬롯머신 업자에 대한 내사를 무마해줬다는 혐의로 상사인 이건개 대전고검장을 구속기소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나는 잃을 것도 없다. 끝까지 파헤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현직 상사를 구속하는 것에 각계각층에서 회유와 압박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소신을 꺽지 않았고 이후 검찰 내에서 상사까지 구속시키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소위 검찰내에서 왕따가 된 것이다.

2년여 동안 한직으로 내몰리던 홍 원내대표는 결국 1995년 검찰을 떠나 변호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새로운 길을 택한 홍 원내대표는 정치입문 권유를 받게 된다. 1996년 신한국당 김영삼 총재의 권유로 입당하면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 하지만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해 또 한 번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러다 2001년 서울 동대문구 을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권에 복귀해 2004년, 2008년 같은 선거구에서 연달아 국회의원에 당선,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누구를 막론하고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 홍 원내대표. 그는 지난 4·29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전패를 당한 가운데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특정인에 기대 국회의원 하려 하냐?”고 쓴소리를 내 뱉으며 당·정·청 쇄신이 필요하다는 강한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지난 4일 SBS ‘이승열,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재·보궐 선거는 노무현·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여당이 참패를 했다”며 “그래서 재·보선 하나하나에 큰 의미를 두기보다는 앞으로 좀 여권이 쇄신을 하고 당·정·청이 좀 더 긴밀하게 협조해서 경제를 살리고 대북 관계라든지 국제 관계를 전부 다시 한 번 다잡아 가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재보선 결과에서 가장 뼈아픈 지역’에 관한 질문에 홍 원내대표는 ‘경주’를 꼽았다. 경주는 친박계 무소속 정수성 후보가 이상득 의원 직계로 분류되는 정종복 전 의원을 제치고 당선된 곳이다.

그는 “경주 선거는 친이 친박 대결이 아니라 정종복 후보 대 반(反) 정종복의 대결”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여당이면서 당무나 선거지원에 소극적인 분(친박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보선 후폭풍 수습 과정에서 친이 주류 쪽이 친박계를 포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5월 임기를 마치는 홍 원내대표 후임으로 안상수, 정의화 의원 등이 물망에 오르지만 친박계 중진이 자리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당 쇄신에 대해 홍 원내대표는 “우리가 야당 때 하던 당헌당규를 갖고 있는데 지금은 여당이 됐기 때문에 당헌당규를 전부 한 번 바꿀 필요가 있다”며 “그래서 당 쇄신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당헌당규 정비와 인적쇄신 문제 그 두 가지이고 이번에 당헌당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청와대와 정부의 쇄신도 필요하다”며 “당도 그렇고 청와대나 정부나 내각도 6월 국회 이전에 5월에 정비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청와대와 정부라든지 소위 부서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여권 실세’에 “자중하라” 일침

4.29 재.보선에서 ‘0 대 5 완패’의 심각한 민심 이반에도 여권 핵심부의 민심 수습이 ‘미봉(彌縫)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내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이 4일 전면적인 쇄신을 공론화하고 나서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당직다운 당직을 한번도 맡아본 적 없는 ‘비주류’ 였음에도 쇠고기 정국의 한 복판에서 여권내 컨트롤타워로서 제 역할을 십분 발휘, 여권내 핵심으로 자리잡은 그의 발언이 당내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다.

그는 특히 당내 계파 갈등에 대해 “10년 만에 보수정권이 탄생했는데 힘을 모아도 참 힘든 판에 당내에서 일부 의원들이 친이계니, 친박계니 그렇게 떠드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이번 선거를 정권심판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선거 결과가 안좋게 나온 데 대해선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뒤 “언론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실세’라는 사람들은 자중해야 한다”고 하는 등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 1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같이 말하며 역대 정권에서 이른바 `실세'였던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일침을 가했다.

그는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 양녕대군이라고 해서 전경환씨가 설쳤다. 그 다음에 또 노태우 대통령 리틀 프린스 LP라고 해서 박철언씨가 실세였다. YS 시절에는 소산(김현철)이 설쳤고, DJ시절에는 세 아들 소위 홍삼트리오가 설쳤고 노무현 시절에는 봉하대군이라고 하면서 노건평씨가 설쳤다”며 역대 전례를 열거한 뒤, “그런데 지금 여러 가지 시중에 나돌고 있는 소문이나 언론에 나돌고 있는 것, 또 일부 그 MB 측근이라고 하면서 대통령 측근이라고 하면서 실세라고 거들먹대는 사람들, 이 사람들 우리 한 25년 YS, DJ, 노태우 모든 시절 보면 이거 다 불행한 결과가 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홍 원내대표는 이어 “대한민국 실세는 대통령 한사람밖에 없다”면서 “앞으로 여권 실세라고 하면서 설치고 거들먹거리고 언론에 엉뚱하게 등장하고 그렇게 안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이 같은 언급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구명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사교육비 절감대책에 대한 발언을 잇따라 언론에 내놓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 등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홍 원내대표는 또 당내 친이(친 이명박).친박(친 박근혜) 구도에 대해서도 “친이.친박 구도는 지난 (대통령) 경선 때 생긴 프레임”이라며 “지금까지 친이.친박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소롭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은 소신과 정책으로 해야 되는데 그것 없이 친이.친박으로 다음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기들끼리 몰려다니고 쑥덕거리고 하는 것을 보면 국회의원답지 못하고 가소롭고 부끄럽다는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재.보궐 선거 전패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올 10월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재.보궐 선거를 통해 활동이 시작돼야지 지금부터 나서면 또 오해를 받는다.”며 “그런 성급한 추론을 하게 되면 또 당에서 친이 친박 구도가 고착화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이재오 선배 본인한테도 지금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지금껏 그를 지켜보았던 정치권 한 관계자는 “홍 원내대표는 누구의 말을 듣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옳다면 그 길로 가는 타입이다. 그렇다고 상대를 무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모래시계 검사’, ‘홍반장’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이유도 정의감에 불타는 그의 모습 때문”이라고 평했다.

아듀 ‘홍반장’ 국회 위상 정립 기여

그의 거침없는 언행으로 ‘홍반장’으로 불린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 그가 원내지휘봉을 놓으며 나온 평가는 과거 정권의 거수기로 인식됐던 국회를 진정한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위상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터져 나온 인사파동,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에 따른 대대적 촛불집회 등으로 여권의 컨트롤타워가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그 부담은 가중됐다.

특히, 은행법이나 신문방송법 등 미디어법, 한미FTA 비준동의안은 여야간 입장차가 현격해 지난 정기국회에서 해머와 전기톱이 등장하는 이른바 입법전쟁이 촉발될 정도로 처리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당 내부적으로도 172석의 과반을 훨씬 웃도는 다수당의 위치를 점했지만 친이 친박으로 나뉘어 갈등이 상존하는 상황이었다.

홍 원내대표는 취임 직후 ‘모래시계 검사’라는 수식어로 알 수 있듯 두둑한 배짱과 순발력을 바탕으로 굵직한 현안들을 쾌도난마 식으로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생긴 별명이 ‘홍반장’이다.

쇠고기 파동으로 정국이 들썩일 때 ‘추가협상 카드’를 꺼내들어 수습의 계기를 마련했고, ‘사전예측, 사후통제’ 개념의 당.정.청 협의시스템을 만들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했다.

임기중 쟁점법안을 대부분 통과시킨 것도 평가할만 하지만 정권의 거수기 역할을 거부하고 민의를 중시하는 행보를 통해 국회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점도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그동안 “이젠 쉬고 싶다”는 말을 해온 홍 원내대표는 오는 6일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다. 돌아온 그가 여전히 이슈의 중심에 설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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