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통운에 맞서 강제해고 당한 택배 기사들과 함께 싸우다 자살한박 지회장
박 지회장, “투쟁,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면 바쳐야한다”죽음암시 글 남기기도
여름과 같은 한낮의 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4월29일 오후.
우연히 지나던 서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신사옥 앞에서 피켓을 맨 채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머리에는 “생존권 사수”라는 띠를 매고, “이것이 아름다운기업인가! 문자 해고라니? 과연 금호그룹은 대한통운 사업체와 무관한가? 금호 회장님이 나서십시오!”라는 피켓을 앞뒤로 목에 걸고 있었다. 본지가 남자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고 시간이 맞지 않아 만남을 같지 못하고 있던 중, 뜻하지 않은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바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상운송 계열사인 대한통운 강제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던 화물연대 광주지부 박종태 지회장의 사망소식이었다.

그의 주검이 발견된 곳은 대전시 대덕구 읍내동 대한통운 대전지사가 바로 코앞에 보이는 인근 야산이었다. 그리고 박 지회장이 숨진 자리에는 유서와 함께 “대한통운은 노조탄압을 중단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박 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죽음, “승리를 위해서라면”
경찰과 화물연대에 따르면 박 지회장은 대한통운으로부터 강제 계약해고 당한 택배기사 76명과 함께 이에 반발해 불법집회를 개최한 혐의로 지난달 23일 경찰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그의 시신이 발견된 날은 강제해고 당한 택배기사들과 대한통운에 맞서 싸운지 44일이 되던 날. 또 그가 한 정당 게시판에 죽음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고 사라진지 3일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노총) 소속 노조원이자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당원인 박 지회장은 지난 4월30일 민노당 게시판에 4·29재보선 결과를 축하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탄압속에 희망은 보이지 않고, 갈수록 조직대오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며 “가정을 이어갈 수 없는 경제적 고통과 타지역에서 투쟁하는 소외감, 외로움은 물론 강한 투쟁을 하고자 하나 우리의 약점이 많아 맘껏 대응하지 못하는 무기력감까지… 이런 상황에서 자본은 대화와 교섭을 더욱더 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적들은 죽음을 요구하고 있다”며 “조직을 사수할 수 있다면, 투쟁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면 바쳐야한다”라며 자살을 암시했다. 마지막으로 박 지회장은 “이제 여러분들이 화물연대와 민주노총을 지켜주시고, 길거리로 내몰린 동지들이 정정당당하게 회사에 들어가 우렁찬 목소리 낼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십시오. 동지들을 믿습니다.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며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라는 서명으로 글을 맺었다.
더욱이 이글을 읽은 박 지회장의 부인은 그의 자살을 만류하기 위해 애뜻한 글을 남기기도 한 것으로 드러나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하지만 부인의 애끓는 마음에 불구하고 결국 그는 잠적 3일 만에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됐고, 박 지회장의 죽음으로 인해 대한통운 택배기사 강제해고 사태는 점차 격앙돼가고 있다.
민노총은 박 지회장의 사망사건과 관련해 지난 4일 ‘범국민투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대한통운과의 전면전을 선포, 민노당 등 야권도 일제히 성명서를 발표하며 박 지회장의 죽음을 애도했다.
“10원이라도 올려 달라했지만”
박 지회장과 지난 50여일 동안 함께 싸워온 대한통운 강제해고 택배기사들도 그의 뜻하지 않은 죽음에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박 지회장과 동거동락하며 투쟁을 함께했던 화물연대 광주지부 조합원 최학열씨는 지난 7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현재 이곳의 분위기는 비장하면서도 침울한 상태”라고 전했다.
지난 3월16일 대한통운으로부터 강제해고 당한 택배기사 중 한 사람인 최씨는 당시 대한통운으로부터 받은 노조탄압과 고인이 된 박 지회장이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를 격앙됐지만 차분한 말투로 설명해 나갔다.
그는 “박 지회장은 대한통운으로부터 강제해고 당한 택배기사는 아니었지만, 해고자들 중 16명 정도가 지난해 화물연대에 가입한 상태였기 때문에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이었던 그가 우리와 함께 싸우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의 설명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지난 3월16일 대한통운이 배상수수료 인상을 둘러싸고 협상을 벌이던 택배기사 76명에게 문자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최씨는 “이미 지난 1월 택배수수료를 920원에서 30원 인상한 950원으로 구두 합의했었는데, 대한통운 측이 서면합의서 작성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급기야 우리를 강제해고까지 했다”며 “당시 2월에 재계약서를 작성하면서 합의 부분을 명시하고 시행하기로 했었는데 대한통운은 3월까지 재계약을 미뤘다”고 주장했다.
최씨와 같은 택배기사들은 현행법에선 회사와 배달 계약을 맺은 자영업자로 분류한다. 때문에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자신들의 운송차를 이용해 대한통운과 단기 계약을 맺어가면서 택배업무를 봐왔던 최씨 등은 산재보험은커녕 차량 유지비와 기름값, 휴대전화요금까지 직접 내면서 일을 해왔다. 그렇게 한달에 그들이 가져갈 수 있었던 돈은 150~200만원 남짓.
최씨는 “재계약을 차일피일 미루는 대한통운에게 지난 3월9일 마지막으로 ‘일주일의 시간을 줄테니 확답을 달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대한통운은 계속 사정이 어렵다며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10원만이라도 올려달라고 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결국, 최씨 등 계약직 택배기사 76명은 3월16일 오전 계약서상에 명시되어 있지 않았던 택배물류분류작업을 거부하고 운송작업을 위해 밖으로 나갔고, 대한통운으로부터 “12시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계약해지할 것”이라는 문자를 받게 됐다. 그리고 그날 3시경에는 “6시까지 복귀하면 계약연장을 해주겠다”는 회유의 문자메시지를 받기도 했다고 최씨는 주장했다.
최씨는 “평소에는 영업활동 등 때문에 6시 이전에는 들어오지도 말라던 회사였다”며 “그날 5시35분쯤에 회사에 도착해 들어가려 했지만, 이미 회사의 문은 굳게 닫혀져 있는 상태였다”고 호소했다.
그렇게 대한통운으로부터 강제해고 당한 76명 택배기사들은 생존권을 걸고 대한통운과의 사투를 시작했고, 최씨 등은 대한통운 광주지사는 물론 대한통운 물류 집결지인 대전지사로까지 원정을 나가 농성을 이어갔다.
“형, 노래 하나 불러줄게”
최씨는 고 박종태 지회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한 일화를 통해 털어놨다.
그는 “박 지회장은 동지라기 보단 동생 또는 친구 같은 사람이었다”며 “본인에겐 엄격하면서도 남들에겐 항상 다정다감했고, 투쟁중에도 아픈 사람이 없는지를 늘 챙기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박 지회장이 잠적하기 전날인 29일 저녁에도 숙소에 생일인 사람이 있었는데 ‘형한테 내가 노래 하나 불러줄게’라고 말하며 박 지회장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며 “그 모습을 생각하면 더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박 지회장이 마지막을 맡이 했던 대전지사 인근 야산의 그 자리도 수배중이던 그가 숨어서 농성중이던 동지들을 안타깝게 바라봤던 곳이라는 말도 최씨는 잊지 않았다.
그는 “광주에서 40여일이 넘도록 투쟁했지만 지역 일간지 몇 곳을 빼고는 언론보도도 거의 되지도 않았고, 지회장과 부지회장은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상태였기 때문에 집회 등에 참석하지 못해 박 지회장은 늘 힘들어 했다”며 “늘 멀리서만 지켜봐야 했기 때문에 박 지회장은 무기력감과 함께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듯 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지회장의 죽음으로 사태가 점점 격앙돼가고 있는 가운데 대한통운 측에서도 갑작스런 화물연대 지회장의 죽음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대한통운은 “박 지회장은 대한통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지난 7일 대한통운 관계자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박종태씨는 대한통운과 관계있는 분은 아니다. 문제는 사업 당사자들과 얘기하면 되는데, 제3자(화물연대 측)가 끼어들 이유는 없다”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당시 택배기사들이 수수료 인상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광주지역에서 타 업소보다 30% 높은 수수료를 받고 있었고, 당시 시장상황 등이 좋지 않아 ‘경기가 좋아지면 추후 협의하자’고 말했었다”라며 1월 수수료 인상합의 부분에 대해 부정했다.
관계자는 오히려 “해고당한 택배기사들은 서면합의서가 있다고 했다가 구두로 합의했다는 등의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며 “현재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택배기사 30여명이 복귀, 10여명도 복귀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대한통운은 신분이 불안하다는 택배기사들의 의견을 수립, 정규직 채용 공고를 내는 등 당사자들과의 합의를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대한통운의 주장에 대해 강제해고 택배기사 당사자인 최씨는 “가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38세의 젊은 사람이 죽었는데, 대한통운은 자기합리화만하고 있다. 인정할 것은 해야 한다”며 “대한통운은 코앞에서 우리가 집회를 하고 있는데도 한마디 말도 없이 정규직 채용 공고만 벽에 붙이는 등 전혀 대화를 걸어온 적이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리들이 달려가 제발 대화 좀 하자고 붙잡고 매달렸었다”라며 “대화의 창은 단 한번도 열려있었던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최씨를 비롯해 대한통운으로부터 강제해고를 당하고 화물연대와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택배기사는 40여명 남짓.
이들은 박 지회장의 죽음에 대해 아직까지 한마디의 사과도 없는 대한통운을 향해 연일 한 목소리로 그의 죽음에 대한 사과와 함께 해고 당한 나머지 40여명의 복직을 외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복직이 이뤄지기 전까진 박 지회장의 장례도 치르지 않겠다고 하고 있어 당분간 사태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