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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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기업, 학원 사업 뛰어든 내막

국내 유통명가 ‘현대백화점’ 서원학원 인수 확정…사학재단 가진 재벌 합류
재벌의 잇단 대학 인수…1세대 창업주 교육에 대한 열망에 학교 설립도 해


재벌그룹들의 영토 확장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는가 보다. 근래에 재벌그룹들과 사립학교재단 간에 물밑교섭이 끊이질 않더니, 최근 현대백화점그룹이 한 사학재단 인수를 확정지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해 두산그룹의 중앙대 인수에 이어 현대백화점그룹까지 사학재단 인수에 나선 것. 사실 재벌들의 사학재단 인수는 비단 이 뿐만은 아니었다.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이라면 사학재단 하나쯤은 필수 아이템처럼 가지고 있다.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들이 왜 이윤추구와는 거리가 먼 사학재단을 욕심내고 있는 것일까. 이에 본지가 재벌그룹들이 학원사업에 문어발식 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는 내막을 들여다봤다.


▲ 왼쪽부터 삼성그룹에 인수된 성균관대, 현대백화점그룹에 인수된 서원대, 두산그룹에 인수된 중앙대.


국내 3대 유통명가로 손꼽히는 현대백화점그룹이 한 사학재단 인수에 나서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4월29일 현대백화점은 충북 청주 소재의 학교법인 서원학원에 대한 인수 합의서를 작성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서원학원은 서원대학교를 비롯해 충북여자중·고등학교, 운호중·고등학교 등을 둔 유명 사학재단이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서원학원 인수가 긴 산고 끝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됨으로써, 현대백화점도 삼성, LG, 현대중공업, 두산 등에 이어 사학재단을 가진 재벌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얼핏 현대백화점이라는 유통기업과 사학재단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적 성격이 강한 곳인데 반해, 사학재단은 진리를 추구하는 교육시설이기 때문.

그렇다면 왜 재벌들은 이윤추구와는 거리가 먼 학원사업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일까.


1세대 창업주들의 숨겨진 열망

우선, 재계 관계자들은 그 첫 번째 이유를 ‘1세대 창업주’들에게서 찾는다.

현재 사학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재벌들 중에 절반 이상이 창업주들이 직접 인수에 나섰거나
손수 재단을 설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룹 창업주의 남다른 교육과 인재양성에 대한 열망으로 설립된 대표적인 학교로는 울산대와 포항공대가 있다.

현재의 울산대는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설립한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에서 1970년 울산공대로 설립됐다. 울산대의 초대 이사장직을 역임했던 정 명예회장은 가난한 농사꾼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소학교 과정 밖에 졸업하지 못해 평소 교육에 남다른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공계 고급인력 양성을 위해 지난 1986년 설립된 포항공대(포스텍) 또한 창업주인 박태준 포스코그룹 명예회장이 국내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인재육성이 매우 시급하다고 판단해 설립한 사립대다. 포스코는 포항공대를 비롯해 경북 유일의 자립형사립고인 포항제철고 등 6개의 초·중·고교를 설립했으며, 지금까지 1조원이 넘는 금액을 재단에 지원해 오고 있다.

재단설립 뿐만 아니라 창업주들은 사학재단 인수에도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1946년 설립된 국민대는 지난 1959년 쌍용그룹 창업주인 김성곤 회장이 인수했으며, 교민이주 50주년을 기념해 하와이 동포들의 성금으로 1954년 설립된 인하대도 지난 1968년 한진그룹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이 인수했다. 아주대는 지난 1977년 당시 대우그룹의 창업주인 김우중 회장이 설립한 학교법인 대우학원에 인수되기도 했다.

1세대 창업주는 아니지만 LG그룹 2세대인 구자경 명예회장의 남다른 학교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진주사범학교를 나와 해방직후 고향에서 5년간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기도 했던 구 명예회장은 특히 과학과 기술 교육을 중요시 여겼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4년제 대학교는 아니지만, 지난 1983년 구 명예회장이 설립한 연암공대는 세계 수준의 초일류 공대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과학존중 정신이 깃든 곳이라 할 수 있다. LG는 연암공대뿐만 아니라 천안 연암대학도 운영중이다.

이렇듯 남다른 창업주들의 학교 사랑에 대해 재계 관계자들은 “과거 창업 1세대들이 그룹을 키워나가던 70~80년대는 고급인력이 부족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인재양성에 대한 필요성을 특히 많이 느꼈을 것”이라며 “때문에 창업주들이 학교설립과 인수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 부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공교육 제도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창업주 스스로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학교 교육에 대해 남다른 열망을 갖게 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벌 필수 아이템 된 학교사업, 사학재단 기부 통해 법인세 절감 혜택 누려
삼성·현대중공업·두산, 대학내 부속병원 운영 통해 이윤창출 효과까지 ‘톡톡’



학교 인수, 그 숨겨진 속내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재벌들의 학교로의 영토 확장은 비단 창업주들의 남다른 열망 때문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역시 재벌들은 이익을 쫓아다닐 수밖에 없는 생리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또다른 속내가 있다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그 숨겨진 속내 중 하나로 사학재단 기부를 통한 법인세 절감 등을 들었다.

법인세법 제24조 ‘기부금의 손금불산입’ 조항에 따르면 내국법인이 각 사업연도에 사립학교에 낸 기부금 등은 한도가 소득금에서 결손금을 차감한 금액의 50%를 한도로 두고 기부금은 비용으로 인정된다.
뿐만 아니라 기부금액에 따라 법인세가 차등적으로 적용돼 1억원 미만일 경우 13%, 1억원 이상일 경우 25%의 감면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재벌들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재단을 인수하거나 설립한다고 표면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법인세 절감을 통해 얻은 잉여이익금으로 생색내기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일각에서는 재벌들이 학교를 자사 계열사로 이용하기 위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재계 일각은 “재벌들이 인수 또는 설립한 대학들의 경우, 그룹의 또다른 계열사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대학들의 경우 상장할 수 있는 계열사가 아니기 때문에 재벌들의 비자금 조성 등에 쓰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재벌들은 대학교 운영을 통해 우수한 인재 확보를 안정적으로도 창출할 수 있어 인재양성 차원에서도 학교사업 진출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기업측면에서 원하는 능력의 인재, 원하는 기업관을 지닌 인재를 기업의 입맛에 맞게끔 키워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 지난 1996년 성균관대를 인수한 삼성그룹은 재정파탄 일보직전까지 몰렸던 성균관대를 연세대, 고려대와 어깨를 견줄 정도의 학교로 키워내긴 했지만, ‘삼성직원양성소’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재벌들이 사학재단 운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더 있다.

최근 서원대 인수를 확정한 현대백화점도 인수 이유에 대해 “서원학원 정상화를 위한 그룹의 순수한 육영사업 의지”라고 말했듯이, 재벌은 이 같은 사회공헌에 따라 기업의 이미지 제고 및 홍보의 2중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삼성과 현대중공업, 지난해 중앙대를 인수한 두산의 경우에는 각각 대학 내 부속병원 운영을 통한 이윤창출 효과까지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아탑 기업화’ 우려 목소리도

물론, 대학들도 자금력이 탄탄한 재벌을 재단으로 둠으로써 재정적 안정과 재단 전입금을 통한 학교 발전 등을 꾀할 수 있다. 또 지금과 같은 취업난시대에 안정적인 취업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재벌들의 사학재단 운영을 마냥 곱게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게 교육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중 관계자들이 가장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부분이 바로 ‘상아탑의 기업화(상업화)’이다. 기업은 수익창출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영리단체이기 때문에 대학운영도 성장·수익창출위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돈이 되는 학문, 수익을 낼 수 있는 학문 쪽으로만 대학교육이 편중돼 기초학문 분야가 상대적으로 줄어 대학의 자율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거다. 심지어는 대학이 재벌 직원을 양성하는 직업훈련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 삼성은 성균관대를 인수하면서 자사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관련된 반도체학과와 휴대폰학과 등은 신설한 반면 지원자 수가 적은 사회복지학과 등은 폐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교육계 관계자들은 “성균관대를 인수한 삼성의 경우 학교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켜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긴 하지만, 이는 주로 의대와 삼성전자 관련 특정학과에 성장에 따른 것”이라며 “대학을 이익창출을 위한 계열사처럼 운영하는 것은 대학교육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관계자들은 또한 “재벌이 부도가 나면 대학의 생사여부도 같이 좌지우지되는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며 “과거 성균관대도 1991년 사학재단을 운영하던 봉명그룹의 부도에 따라 재정이 악화됐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재벌과 사립사학재단 간의 인수 물밑교섭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광운대와 경기대 인수를 둘러싸고 재벌들과의 접촉설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교육계 일각은 “재벌의 학교 운영이 탈세 및 비자금 조성의 온상이 되지 않도록 경영 투명성 확보를 위한 법제도 등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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