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로써 박영석 대장은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에베레스트 중 가장 험난하다는 남서벽에 한국인이 개척한 첫 번째 길을 만들어내며 세계에 한국 산악계의 위상을 드높였다.
소속사인 노스페이스에 따르면 박영석 대장이 지난 19일 현지 시각 새벽 12시30분에 캠프 5(8350m)를 출발해 20일 현지시각 오후 3시(우리나라 시각 6시 15분)에 남서벽 정상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19일 선발대가 출국한지 63일만이다.
노스페이스측은 "박영석 대장외 함께 정상에 등정한 강기석, 신동민, 진재창 대원의 건강상태는 모두 양호하다"며 "박영석 대장은 정상에서 베이스캠프로 내려온 후 6월 초 국내에 귀국해 등반보고회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남서벽 등정 성공은 '등정주의'가 아닌 '등로주의'의 정신에 입각해 이루어져 국내 산악계에 던지는 의미가 각별하다.
등정주의는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이 정상에 등정하면 성공으로 인정받는 결과주의 등반으로, 보통 신루트나 힘들고 어려운 루트보다는 쉬운 루트가 선택되기 마련이다.
반면 '등로주의'는 산악인 특유의 도전과 탐험정신에 입각해 어렵고 험한 코스를 택하여 산을 오르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현재 히말라야 8000m 봉우리 등반을 시도하는 대부분의 산악인들이 등정주의를 선택한 반면 박영석 대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코리안루트를 개척하는 등로주의를 선택했다. 그는 진정한 탐험가의 길을 택한 것이다.

남서벽은 1975년 영국의 크리스보닝턴 대장이 이쓰는 원정대에 의해 처음 개척되었으며, 1982년 러시아의 발리 베르딘과 미슬로브스키가 두번째로 정상에 오른 이후 27년동안 새로운 루트를 통해서는 아무도 성공한 이가 없었다.
박영석 대장이 협곡을 따라 수직벽을 뚫는 새로운 루트를 개발함으로써 바로 그 일을 해낸 것이다.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만들며 세계에 한국 산악계의 위용을 과시하게 됐다. 2005년 인류 최초로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영석 대장이 4년만에 세계에 박영석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셈이다.
박영석 대장은 2007년 5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도전했다가 8100m 까지 루트를 뚫는데 성공했으나 함께 등반했던 오희준, 이현조 대원을 갑작스런 눈사태로 인해 잃어야만 했다. 오랫동안 산을 함께 다녔던 동료이자 한솥밥을 먹던 식구라 그 슬픔이 더욱 각별했다.
이로 인한 충격으로 등반을 그만 둘 결심까지 했었던 박 대장은 두 대원의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고자 2008년 10월 두번째로 남서벽에 도전했다. 그러나 최악의 극심한 바람과 돌풍으로 인해 모든 텐트들이 완파되고 장비들이 파손되면서 정상을 바로 450m 앞두고 어쩔 수 없이 후퇴해야만 했다
그리고 2009년 3월, 박영석 대장은 드디어 세번째로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도전했다.
박대장은 4월 10일경 정상 등반을 위한 캠프 구측을 시작했다. 이미 2007년도 등반 때 8100m까지 루트를 뚫어놓았고 2008년에는 8400m까지 올라갔었다. 두 번의 경험을 통해 박대장은 캠프 1부터 캠프 5까지 캠핑 사이트를 정확히 파악해놓을 수 있었고, 대원들도 혹독한 추위와 바람에 단련이 되어 있었다. 박대장은 5월 초부터 정상공격을 시도해 20일 마침내 남서벽 정상을 밟았다.
박영석 대장은 "전 세계 8000m급 봉우리가 14개가 있는데 대부분 외국인들이 이미 낸 길을 답습하고 있는 형편이며 한국인이 낸 루트는 없었다. 이번 남서벽 등정 성공을 통해 에베레스트에 코리안루트를 만들게 되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함께 해준 동료대원들과 故 오희준 이현조 대원과 함께 영광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 성공은 영국과 러시아에 이어 험난하기로 유명한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한국인 최초의 새로운 등반길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국내 산악계의 위상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