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감정 해소 위해 끝까지 싸웠던 바보 노무현 FULL STORY
국민들 “27 만원 있는 전두환도 사는데...”한탄과 아쉬움에 휩싸여
“모든 짐은 내가 짊어지고 가겠다”는 소신, 국민들 아직도 기억해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김해 사저 뒤 봉화산에서 투신해 오전 9시 30분께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보를 접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매우 충격에 휩싸이고 침통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특히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입)회원들과 봉화마을 주민들은 그의 서거에 격노했고 “왜 노무현 대통령을 끈질기게 괴롭혀 죽음까지 이르게 했냐”며 검찰을 향해 서슴없이 맹비난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즉 국민들이 이번 사건으로 ‘패닉’ 상태에 놓여줘 자칫 ‘베르테르 효과’로 슬픔에 잠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자살 사태로 까지 번지지 않을까 하는 내심 불안감마저 감돌고 있다.
유서 남기고 死의 뒤안길로
박연차 리스트에 연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법처리를 기다리고 있던 가운데 지난 23일 새벽 6시 50분쯤 노 전 대통령은 경남 봉화마을 사저 뒷산 언덕 밑에서 뛰어 내려 끝내 숨졌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머리를 심하게 다쳐 오전 7시쯤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오전 9시30분께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서거했다.
이와 관련해 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노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비서관 1명과 봉하마을 뒷산서 등산 중 6시 40~50분경 산 아래로 떨어져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노 전 대통령은 사고 당시 머리 부분을 크게 다쳐 뇌출혈이 심각해 7시 5분경 김해 세영병원으로 이송 뒤 다시 양산 부산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진 상태”라고 전했다. 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어 “노 전 대통령이 뒷산서 직접 뛰어내렸다”고 밝히며 “가족 앞으로 간단한 유서를 남겼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유서에는 “너무 힘들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다.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원망하지 마라. 화장해 달라. 마을 주변에 비석하나 세워달라”고 이같이 밝혔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유서는 또 “사는 것이 힘들고 감옥 같다. 나름대로 국정을 위해 열정을 다했는데 국정이 잘못됐다고 비판 받아 정말 괴로웠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지금 나를 마치 국정을 잘못 운영한 것처럼 비판하고 지인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부정부패를 한 것 처럼 비쳐지고, 가족 동료, 지인들까지 감옥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게 하고 있어 외롭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아들 딸과 지지자들에게도 정말 미안하다”며 “퇴임 후 농촌 마을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유서는 끝으로 “ 돈 문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이 부분은 깨끗했다”며 “나름대로 깨끗한 대통령이라고 자부 했는데 나에 대한 평가는 멋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돈 문제는 깨끗하다’는 발언은 사실상 검찰의 수뢰 의혹을 부인한 것이어서 검찰의 부실수사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정치권은 노 전 대통령의 비보 소식에 침통한 분위기와 당혹감에 휩싸였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참으로 믿기 어렵다. 애석하고 비통한 일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이 정중하게 모셔라”는 뜻을 전했다.
여의도 정가도 한 목소리로 “침통함을 금할 수 없다”며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일이라 현재로선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당시 안타까운 상황을 전달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전신인 민주당도 이날 긴급 최고위를 열어 당 차원의 대응책을 논의한 가운데 김유정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너무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특히 그는 그동안 진행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도 없이 이런 식으로 수사한 게 옳은 일이냐”며 개탄하기도 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서거의 배경에 대해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백만 달러를 건네받은 의혹과 관련해 부인 권양숙 여사와 자녀 노건호씨와 노정현 씨 등 가족과 측근들이 연루돼, 여기서 오는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려 끝내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격동의 정치인생. ‘단맛과 쓴맛’
안타까움 죽음을 맞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46년 8월 6일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가정형편 등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한 그는 9년간 독학해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이듬해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변호사로 승률 90%를 넘나들었다는 그는 81년 용공조작 사건을 맡으면서 재야 운동에 뛰어들었고 6월 항쟁 뒤 정치권에 영입됐다.
1981년 제5공화국 정권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釜林事件)의 변론을 맡으면서 이후 학생·노동자 등의 인권사건을 수임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이후 1988년 부산 동구에서 제13대 국회의원(통일민주당)으로 당선됐으며, 제5공화국비리조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날카로운 질문과 정연한 논리로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이른바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1990년 3당 합당을 거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이후 부산에서 14대 총선(1992년), 부산광역시장 선거(1995년), 15대 총선(1996년)에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당선 확률이 희박했지만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워 연이어 출마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바보 노무현’으로 불렸다.
‘바보 노무현’은 바보가 아니 였다. 순탄치 않는 행보가 대통령이라는 꿈을 일궈낸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2002년 노 전 대통령은 국민경선과 사퇴 압력, 단일화의 우여곡절 끝에 그는 대선 후보로 선출됐고, ‘낡은 정치 청산,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 등을 기치로 내걸고 선거전에 들어갔고,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물리쳤다.
당시 투표 하루 전날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일방적인 지지철회로 후보 단일화는 깨졌지만 ‘노사모’ 등 팬클럽의 지지를 얻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5년은 순탄치 않았다. 취임 직후부터 거침없는 언사로 야당과 언론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임기중 대통령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측근 비리 등에 대한 야당의 사과 요구에 대해 거절하자, 2004년 3월 국회는 본회의에서 193대 2로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의결은 56년 헌정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5월에 열린 탄핵심판 선거공판에서 기각결정을 내려 탄핵사건은 종결됐다.
재임기간 중에는 안희정씨와 최도술씨 등 386세대로 불려진 측근들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 수감됐다.
청와대에서 집사로 불렸던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역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3억원과 노 전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 수감 됐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이후 고향 김해에 머물며 나름의 활동 영역을 찾아가는 듯 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청와대 기록물 유출 사건에 이어 박연차 사건으로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최대 위기에 몰리게 됐다.
이처럼 노 전대통령은 단맛과 쓴맛을 다 같이 맛본 대통령 이었다. 정치권 전문가들은 막판에 가서 도덕성이 실추됐지만 그는 과거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에 많은 기여를 했고, 대통령으로서도 남북화해협력,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증진 정책, 수도권이전의 지역균형 발전모색, 무엇보다 권위주의 타파에 큰 족적을 남긴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국민들 애도 “‘국민장’으로 치렀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을 비롯한 노사모 회원 및 봉하마을 주민들은 깊은 슬픔과 함께 큰 충격에 빠졌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긴급히 봉하마을에 내려간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 김모(30)씨는 “누가 노 전 대통령에게 손가락질하겠는가. 좌파고 우파고 전부 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혼자 외로이 사신 분”이라며 “애꾸눈의 원숭이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홀로 양 눈으로 살아가려니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또한 같은 회원인 주부 이모(42)씨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로 수천억원 받은 것에 비하면 노 전 대통령은 ‘빙산의 일각’에 불가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검찰이 ‘노무현 죽이기’에 혈안이 되서 이 같은 참담한 일이 발생했다”고 격노했다. 마침 봉하마을을 방문 중 있던 한 관광객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27만원(?)으로 지금 까지 잘 살고 있는데 너무 마음이 여리신거 아니냐”며 안타까움을 전달했다. 누리꾼들 또한 그의 극단적인 행동에 안타까워하는 반응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민장을 치르자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네이버의 아이디 ‘chooksee’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눈물이 난다”면서 “누군들 견딜 수 있었겠는가. 좋은데 가서 나라를 굽어 살펴 달라. 도덕적(비리연루)실망으로 국민들에게 실망을 줬지만 당시 참여정부는 소신이 있었다. 그의 공적을 취하해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렀음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 아이디 ‘des33'는 “노 전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나고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모범을 보여주셨다. 꼭 국민장으로 치러 모든 국민들이 그의 명복을 빌어주었음 한다”고 슬퍼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이번 사건에 대한 판단을 놓고 정치권과 법조계 등이 갈등과 반목에 휩싸일 경우 가까스로 안정을 찾아가는 국내 경제에 악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또한 “국민들도 한동안 혼란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어 보인다”이라며 “전직 대통령의 자살로 인한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