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림수 하나. 배임 논란 피하기 위해 일단 소송 말 꺼내놓고 ‘산은’ 눈치 보기중
노림수 둘. 본격 소송 대비, 승소 위한 강력 법적 반박자료 확보 위한 시간 끌기
노림수 셋.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 먼저 건 ‘동국제강’ 선례보고 움직이기 노림수
최근 한화그룹의 작은 행보가 재계의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화는 최근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조선) 인수를 위해 구성했던 컨소시엄을 해제, 소송에 따른 비용을 비율에 따라 분담하는 정산합의서를 체결했다. 대우조선 인수 결렬 후 지난 몇 개월간 답보 상태에 빠졌던 대우조선 인수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이 탄력을 받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재계 일각의 시선은 날카롭기만 하다. 한화가 보증금 반환 소송 시기를 저울질하는 등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노림수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에 본지가 재계 일각에서 바라보는 한화의 보증금 반환 소송 준비 그 노림수를 들여다봤다.

지난 몇 개월간 답보 상태에 빠졌던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 준비가 최근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 5월14일 한화는 “13일 열린 이사회에서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관련해 한화와 한화석유화학, 한화건설이 양해각서를 통해 인수키로 한 대우조선해양 주식수의 상대적 비율에 따라 이행보증금과 관련 비용을 분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정산합의서를 체결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재계에서는 한화가 3150억원에 달하는 대우조선 인수 이행보증금을 산업은행(이하 산은)으로부터 돌려받기 위해 드디어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착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때문에 이르면 5월말이면 한화와 산은 간의 소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졌다.
[노림수 1] 배임 논란 피하기 위한 액션?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와는 정반대의 시선으로 한화를 바라보고 있다. 한화가 쉽사리 소송을 제기하지는 못할 것이란 거다. 그도 그럴 것이 한화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겪어야 하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화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수도 없다는 게 일각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한화가 대우조선 인수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 제기, 그 준비 과정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어떤 노림수가 있다는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재계 일각에서도 한화가 ‘소송 제기’ 이슈 하나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서 첫 번째 노림수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바로 주주와 산은과의 사이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보여서 양쪽과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1월, 한화는 대우조선 인수가 결렬됐을 당시만 해도 곧바로 소송을 제기할 태세였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화는 소송대리 법무법인도 결정짓지 못하는 등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시간을 끌고 있다. 일각은 이 모든 것이 한화의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가 만약 대우조선 인수 결렬에 대해 적극적으로 회소 노력을 보이지 않을 경우 주주들로부터 재산 훼손을 방치했다는 배임죄에 따른 처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반환금 소송은 제기한다고 말했지만, 막상 산은과의 관계 때문에 본격적으로 소송 제기까지는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화가 산은으로부터 빌린 자금 규모는 단기차입금을 포함해 약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소송 때문에, 자칫 산은이 만기연장이라도 거부하게 되면 한화로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일각에서는 “한화의 반환금 소송 제기는 배임 논란에서 피하기 위한 노림수일 수 있다”며 “3150억원을 돌려받자고 2조원에 달하는 여신리스크를 관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자니 배임 혐의가 걸리기 때문에 한화는 최대한 금융시장이 풀릴 때까지는 소송을 가급적 미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림수 2] 강력한 한방(?) 준비 중?
한화가 소송 제기를 최대한 늦추면서 얻을 수 있는 또다른 노림수로는 소송에 대비한 충분한 준비 기간 확보와 법적 반박 자료 마련의 기회다.
물론 한화와 산은이 소송까지 가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협의를 통해 문제를 일단락 지으면 좋겠지만, 산은이 절대 이행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한화는 최대한 산은에게도 협상 결렬의 잘못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때문에 한화가 소송 제기를 미루고 있는 것은 소송에 필요한 강력한 한방(?)에 대한 준비 기간이란 것이 재계 일각의 시각이다.
일각에 따르면 소송이 진행될 경우 핵심 논점은 한화가 대우조선에 대한 실사를 진행하지 못한 것에 산은의 잘못이 있느냐 없느냐다. 이와 함께 한화가 대우조선의 기업 가치가 산은이 실사 전에 제시한 가격보다 낮다는 것을 입증할 법적 반박 자료를 확보하느냐도 소송의 승패를 가릴 중요한 열쇠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이런 법적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선 대우조선이 국외에 거느리고 있는 자회사 모두의 재무제표 등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한화가 시간을 벌며 물밑 소송 준비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화의 소송대리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도 한화가 승소할 경우 3150억원 중 1000억원 이상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만큼, 한화가 강력한 한방을 확보할 경우 절반 이상의 금액도 반환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이에 한화는 협상이 결렬된 순간부터 산은 측도 대우조선 협상 결렬에 귀책사유가 있다고 주장, 산은이 기업 실사를 진행하도록 도와야했는데 이를 해결해주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산은은 한화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다 분할 매입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 양해각서를 어겼다며 협상 결렬 책임은 전적으로 한화에 있다고 반박하며 “절대로 이행보증금 반환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고 있다. 한화가 강력한 한방을 찾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볼 수 있다. 산은을 밀어붙일 법적 자료가 없이는 승소도 조정도 힘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각은 “한화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법적인 논리를 착실히 준비한 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림수 3]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기?
한화가 노리고 있는 또다른 노림수로는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기이다.
한화에 앞서 동국제강이 쌍용건설 인수를 시도하다가 포기하면서, 이행보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법적 소송을 먼저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선례를 지켜본 후 움직이겠다는 노림수가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 따르면 쌍용건설을 인수하려다 실패한 동국제강은 231억원의 이행보증금을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몰취 당했다. 몰취당한 과정도 한화와 비슷하다. 둘다 매각자 측에 인수유예나 분할 납부, 잔금 납부기간 연장 등의 ‘수용 불가능한 조건’을 요구하다 계약해지와 보증금 몰취를 통보받은 것.
더욱이 보증금 반환을 위한 소송 논리도 인수자금 조달에 실패한 것이 본인들의 책임보다는 세계적인 금융위기라는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 탓으로 여기고 있는 만큼, 먼저 소송을 제기한 동국제강이 승소를 하면 한화에게는 좋은 판례로 남을 수 있다.
이에 일각은 “재판부가 금융위기를 감안해 일정부분 보증금 반환을 선고하거나 조정안을 제시할 수 있는 만큼, 한화는 동국제강의 소송 경과를 지켜본 후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계 일각의 이런 분석에 대해 한화그룹 관계자는 “그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아직 대우조선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과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소송을 언제 제기할 것이라는 말도 우리쪽에서 한 적이 없는 만큼 소송을 미루고 있다고만은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산은에 반박할 어떤 법적 자료를 찾느라 소송 제기가 늦어지고 있다는 것도 말도 안된다”며 “산은도 알고 있는 내용 외에 다른 법적 논리를 찾고 있는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동국제강과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며 “일각에서는 좋은 판례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참고만 되는 것이다. 동국제강의 소송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결국, 3150억원이라는 돈은 적지 않은 금액인 만큼 소송 제기는 할 것이지만 다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한화의 소송 제기 의지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입찰보증금은 M&A 독점권과 우선권에 대한 대가인 만큼 인수에 실패했다고 이를 돌려달라는 것은 자본주의 계약룰을 깨는 ‘떼쓰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한화가 대우조선 보증금 반환 소송을 과연 제기할 수 있을지, 제기하더라도 승소할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