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NLL 또다시 "무력충돌" 긴장고조
서해 NLL 또다시 "무력충돌" 긴장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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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차 서해교전에 이어 "무력충돌 가능성"

▲ 서해 해상을 기동훈련중인 고속정
한반도 내에서 다시금 무력충돌이라는 극단적인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노무현 前대통령의 서거 애도기간 중인 지난25일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이 연이어 미사일 발사등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26일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원칙을 승인키로 했고, 여기에 북한은 27일 우리 정부의 PSI 전면참여에 강력 반발하면서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남북간 무력충돌 위기감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북한군 판문점대표부는 27일 성명을 통해 한국의 PSI 전면 참여가 "조선반도를 전쟁상태로 몰아넣었다"며 서해상에서 한.미군의 군함 및 일반선박의 "안전항해를 담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성명에서는 북한군의 "원칙적 입장"을 밝힌다"며 조선 서해 우리의 해상군사분계선 서북쪽 영해에 있는 남측 5개섬(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의 법적 지위와 그 주변수역에서 행동하는 미제 침략군과 괴뢰 해군 함선 및 일반선박들의 안전항해를 담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구체적인 서해지역의 국지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이 핵시험을 강행 할 때에도 유엔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면서 핵실험을 하겠다고 언급한지 한달만에 실행한 것과 이후 미사일의 추가적인 실험발사도 하겠다는 언급을 했던것을 볼때 북한이 최근들어 언급했던 일들을 계획대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군의 성명은 이어 "미국의 현 집권자들이 정전협정 자체를 부정하다못해 남한을 PSI에 끌어들인 상태에서 우리 군대도 더 이상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이날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도 성명을 통해 남한의 PSI 전면참여 발표를 "선전포고"로 규정하고 "우리는 전시에 상응한 실제적인 행동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1999년 6월15일(1차 연평해전) 충돌하는 남,북 경비정

북한은 지난 1999년 6월 제1차 연평해전이 발발한 뒤인 그해 9월2일 인민군 총참모부 '특별보도'를 통해 서해 격렬비열도 부터 등산곶까지의 해상 대부분을 북쪽 관할 수역으로 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데 이어 2003년 3월에는 '서해 5개섬 통항질서'를 발표하고 남측 선박은 북측이 지정한 2개의 수로를 통해서만 운항할 수 있다고 선언한바 있다.

한편 26일 국방부에서는 군단장급 이상 주요 지휘관이 참석한 가운데 김태영 합참의장이 주관한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를 열고 최근 북한 핵 실험 및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과 관련해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에 대비한 군사대비태세를 점검했으며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휴전선 국지도발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북한의 핵실험 직후 전군에 군사대비태세를 강화토록 지시했다.


용어해설
NLL = 서해 북방한계선ㆍ해상군사분계선, NLL은 남북한 간 우발적 무력충돌을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1953년 8월 유엔군사령관이 서해 5도 북쪽, 북측 영토와 근접해 설정한 해상 경계선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남북은 이미 두 차례 교전을 치렀다.
1999년 6월15일 발생한 제1 연평해전은 남측이 압승을 거뒀지만 2002년 6월29일 제2 연평해전에서는 남측의 피해가 컸다.

▲ 연평해전이 일어났던 서해NLL 그래픽
제1 연평해전 당시에는 북한 경비정 2∼7척이 충돌 9일 전부터 옹진반도 남단에서 조업 중인 꽃게잡이 어선을 보호한다며 NLL을 지속적으로 침범했고,우리 해군은 이를 '충돌식 밀어내기 작전'으로 저지하는 등 긴장이 고조됐다.
결국 6월15일 북한 경비정은 소총과 기관포로 선제공격을 했고 우리 해군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14분간의 교전에서 북한은 어뢰정 1척 침몰, 중형 경비정 3척과 소형 경비정 2척 파손, 17∼3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봤다.
반면 우리측 피해는 함정 2척이 약간 손상되고 장병 9명이 부상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제1 연평해전과 달리 제2 연평해전은 우리측의 피해가 컸다.
제2 연평해전은 한·일 월드컵 한국과 터키의 3∼4위전이 있었던 토요일에 발생했다.
북한 경비정 2척이 연평도 서쪽 7마일 지점에서 NLL을 침범한 뒤 퇴각을 요구하는 남측 고속정 편대를 향해 갑자기 함포(85㎜, 35㎜)사격을 가했다.
남측 고속정은 함포(40㎜)와 벌컨포(20㎜)로 대응했으나 20분간 교전에서 6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했고 피격된 고속정은 예인 중 침몰했다.

북한 경비정들이 2주전부터 NLL을 침범했지만 우리측은 꽃게잡이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들을 단속하다 침범한 것으로 오판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아서 피해가 컸던 것이다.
북한이 3년 전의 치욕적인 패배를 설욕할 기회를 노려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후 우리 해군은 제2 연평해전 이후 교전규칙을 개정, 무력시위-경고방송-경고사격-격파사격의 4단계에서 무력시위-경고사격-격파사격의 3단계로 교전단계를 단순화하고 현장지휘관이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대폭 강화했다.

PSI = 대량살상무기(WMD)확산방지구상(PSI)은 대량살상무기의 국제적 확산을 막기 위해 2003년 6월 미국 주도로 발족한 국제 협력체제를 말한다.
PSI에 가입하면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정보 공유와 필요한 경우 가입국 간 합동작전이 가능하다.
또한 PSI에는 대량살상무기의 밀수를 인신매매 금지나 마약.위조지폐 등 밀수 처럼 각국의 국내법으로 저지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된다.

PSI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일본.노르웨이.포르투갈.싱가포르.스페인.러시아 등 94개국이다.

미국은 PSI가 출범하던 2003년 한국에 정식참여를 공식 요청한 이래 수차례에 걸쳐 동참을 요구했지만, 우리 정부는 PSI와 관련, WMD 및 미사일 비확산을 위한 국제협력 차원에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에 따라 전면 참여할 것을 검토해 왔으나 남북간 현안 등 남북화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참여를 미뤄왔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가 계속되자 정부는 2006년 1월 한.미 군사훈련에 WMD 차단훈련을 추가하고 PSI 활동 전반에 대한 브리핑을 듣는 한편 PSI 역내 차단훈련에 참관단을 보내는 등 제한적 참여를 하고있다.

PSI는 미국 대외정책의 대전환을 가져온 2001년 9.11 테러 이후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WMD 차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잉태됐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논의의 확산에 불을 지핀 것은 2002년 12월 스커드 미사일 15기를 감춘 채 예멘으로 향하다 적발된 '북한의 서산호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당시 스페인 해군은 미국의 정보 제공으로 서산호를 검색해 전모를 밝혔지만, 서산호가 합법적인 신용장을 갖고 있었고 예멘 당국이 미국에 강력 항의하면서 무사 통과됐고, 미국은 이 과정에서 스페인과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면서 WMD 차단을 위한 효과적인 국제 공조체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인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의혹에 의한 제2차 북핵위기로 핵물질 또는 핵무기의 반출.입 문제도 미국에게는 골칫거리로 부상 했다.

결국 미국은 이듬해인 2003년 5월 그 필요성을 공개 천명하면서 PSI가 태동했다.
창설 당시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11개국의 공동 발의에 6개국이 가세, 17개국에 불과했던 PSI 가입국은 현재 94개국으로 확대됐으며 우리나라는 95번째 참가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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