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평생 동지’ 강금원의 절규 “정말 이럴 수는 없다”
盧 ‘평생 동지’ 강금원의 절규 “정말 이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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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노 전 대통령은 자존심이 매우 강한 사람...내게 거짓말 한번도 한 적 없는 사람

“일국의 대통령을, 그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죽음까지 내몰아”,정치적 보복 시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있는 가운데 그의 빈소가 마련된 봉하 마을을 한걸음에 달려와 오열한 사람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대전교도소에 구속 수감되어 오다 병보석으로 풀려난 강 창회장이 지난 26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를 조문했다 그 후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과 한참을 껴안으며 소리내어 눈물을 쏟아냈다. 구속 된지 47일 만이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초췌한 모습에 검은색 양복과 넥타이 차림의 강 회장. 그는 이 자리에서 “면목이 없다. 사랑하는 우리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내가 나오길 (노 전 대통령이) 그토록 기다렸다고 하는데…”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노 전 대통령은 자존심이 매우 강했고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해 주변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 강금원(57) 창신섬유 회장이 지난 26일 김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횡령 등의 혐의로 대전교도소에 구속 수감돼있던 강 회장은 이날 오후 4시께 보석으로 풀려나자마자 부인과 함께 봉하마을로 향했다.

강금원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빈소에 도착한 강 회장은 “사랑하는 우리 대통령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을 하셨던 분을 그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괴롭힙니까.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명예롭게 사신 분입니다”라며 울먹였고,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과는 한참을 껴안고 울기도 했다.

이에 앞서 구속된 지 47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강 회장은 이날 오후 4시20분께 대전교도소 앞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이 심경을 묻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강 회장은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지난 화요일(18일 첫 공판 다음날)에 나올 줄 알았는데, 이럴 수가 없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존심이 강한 분이고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며 “내가 잘못 없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나도 잡아넣고…”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죄를 지었다면 달게 받을 것인데, 박정희 시대도 아니고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고 검찰 수사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검은 양복과 넥타이 차림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초췌한 모습으로 나온 강 회장은 검찰수사에 대해 “군사독재 시대도 아니고 이런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비난했다. 5분여에 걸친 인터뷰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이날 오후 8시40분쯤 봉하마을 분향소에 도착한 강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 앞에서 절을 하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빈소를 지키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 등과 일일이 손을 잡던 그는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을 보자 그를 한참 끌어안았다.

아무 말 없이 노 전 대통령 시신이 있는 마을회관에 들어간 그는 붉어진 눈으로 나와 취재진 앞에 섰다. 그는 “면목이 없다. 사랑하는 우리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내가 나오길 (노 전 대통령이) 그토록 기다렸다고 하는데…”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이 무슨 잘못이 있냐”고 말할 땐 울음이 섞였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감정을 짓누르는가 싶더니 “일국의 대통령 한 분을, 그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사람을 괴롭히나. 나한테 (대통령이) 다 얘기했다. 대통령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명예롭게 사신 분”이라며 속에 눌어붙어 있던 울분을 토해냈다.


부산 창신섬유와 충북 충주 시그너스 골프장의 회삿돈 305억원을 임의로 사용한 혐의 등으로 지난달 9일 구속된 강 회장은 뇌종양을 이유로 지난 1일 보석을 청구했고, 법원이 병원 2곳에 건강상태에 대한 사실감정을 의뢰한 결과 ‘악성 뇌종양이 발견됐으며 시급한 조직검사와 항암치료가 필요하다’는 답신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강금원 회장이 보석 신청을 낸 것은 지난 5월 1일. 하지만 검찰은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냈고 보석 신청을 받은 재판부는 강 회장 사건 전담 재판부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뤘다.
강 회장은 첫 재판이 열린 지난 19일 병보석이 허가되기를 기대했지만 강 회장이 뇌종양을 앓고 있다는 서울대와 건양대의 진단서 외에 강남성모병원과 신촌세브란스병원에게 사실조회를 해보자며 재판부는 판단을 유보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저 뒷산 바위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자유의 몸이된 강 회장의 눈물을 흘린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강금원 “평생 동지로 함께 살기로 했는 데..”

강 회장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였고, 노 전 대통령은 그런 강 회장이 지난 4월 구속되자 “모진 놈 옆에 있다 벼락을 맞았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앞서 강 회장은 대전교도소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비보를 전해 듣고, 충격에 빠진 채 서러운 울음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강 회장은 “평생 동지로 함께 살기로 했는데 이렇게 힘들어 할 때 옆에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돈 욕심이 전혀 없던 노 전 대통령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그의 변호인은 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주위에 자주 맴돌던 이름 강금원.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물
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도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져 있고 최근 국민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곤 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600만 달러가 노 전 대통령에게 건네진 정황에 대해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100만 달러를 먼저 달라고 요구했고, 500만 달러도 노 전 대통령을 보고 줬다고 말하는 등 “모든 것을 털고 가겠다”며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강 회장과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노 전 대통령은 박 회장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지만 박 회장의 진술 때문에 노 전 대통령과 가족들, 측근들까지 줄줄이 검찰로 불려가야 했다.

반면 강 회장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대통령을 도왔다는 일이 이렇게 정치탄압을 받는 것… 달게 받겠다”면서 입을 다물었다.

영원한 후원자 강금원

노무현을 스스로 찾아와 후원자를 자청했던 사람 강금원. 강 회장은 1998년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이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적지 않은 돈을 후원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00년 노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부산에서 출마하자 강 회장은 직접 노 전 대통령을 찾아가 “당신 같은 정치인이 성공하길 바란다”며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응원했다.
호남 출신인 강 회장이 ‘제2의 고향’인 부산에서 사업을 하면서 설움을 겪었고 지역주의 타파를 실천하던 노 전 대통령과 정서적인 ‘동질감’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도 강 회장에 대해 “나와 하는 일은 다르지만 세상을 보는 생각이 같아 뜻을 같이 하고 있다”면서 “정치적 성취에 큰 보탬이 됐고 나 대신 고초도 겪은 특별한 인연”이라고 소개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오르자 그를 등에 업고 사업 확장에 나섰던 박 회장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오르고 퇴임을 할 때까지 강 회장은 함께 했다.

박 회장은 참여정부 동안 신발산업협회장을 지냈으며 세종증권 주식투자와 농협의 자회사인 휴켐스 인수로 쏠쏠한 이익을 봤다. 골프장을 건설하는가 하면 베트남 화력발전소 건설 국책사업 입찰 성공까지 사업은 크게 성장했다. 정치권력을 이용해 수백억원의 특혜를 받은 것.

그러나 강 회장의 사업은 변함이 없었다. 강 회장은 입버릇처럼 “지난 5년 동안 사업을 한 치도 늘리지 않았다. 이것저것 해보자는 사람이야 오죽 많았겠나. 그래도 그렇게 하면 내가 대통령 주변 사람을 도와줄 수가 없기 때문에 일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도 “강 회장은 단 한 건의 이권도 청탁한 일이 없으며 아예 그럴 만한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못박았다.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봉하마을로 내려가 ‘촌로(村老)’가 됐을 때 매주 봉하마을에 내려가 주변 사람들을 챙겼다. ‘박연차 게이트’의 여파로 봉하마을에 세간의 시선이 집중됐을 때도 그는 거리낌이 없었고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를 함께 계획한 그는 (주)봉하에 7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도 강금원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대통령이 아니라 파산자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측근중의 측근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재임기간 사업을 한 치도 늘리지 않았고 노무현 주변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 돈 함부로 받지 말고 자신에게 부탁하라며 오히려 그들을 걱정 했던 사람이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는 강금원 창신섬유회장에 대해 “강금원씨는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인이지만, 노 전 대통령과는 막역한 사이고, 모든 사정을 다 떠나서 서로 믿고 의지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 자기가 원하는 것”이라며 선뜻 투자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근본부터 박연차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때문에 그를 수사할 당시 검찰이 원하는 먼지 티끌이 나올 리 만무한 거다. 그러니 그의 구속당시 주변에서는 조세포탈이니 횡령이니 코걸이 귀걸이 같은 걸로 구속 시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뇌종양을 앓고 노무현 때문에 구속된 처지에 있어도 오히려 그는 노무현을 걱정 한 사람 강금원. 그는 자신의 이익을 탐해서 노무현에 붙어 있던 사람이 아니라 노무현이 하고자 하는 일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던 노 전 대통령의 진정한 후원자 였다.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가 사상 최대 규모인 1383명으로 구성됐다. 공동위원장은 한승수 국무총리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맡고, 집행위원장은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운영위원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선임됐다.

고문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3부 요인, 정당 대표, 전 국무총리 등 59명이다. 17·18대 국회의원들도 당연직 위원으로 포함됐으며, 유족과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도 들어갔다.
여기에 그의 오랜 후원회장인 이기명씨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도 포함됐다.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국민의 손으로 뽑힌 전 대통령의 최초 국민장”이라며 “정부가 주축된 것이 아니라 정부와 유가족이 합동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다가 규모가 커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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