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고향 봉하 마을의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서거했다. 이로 인해 국내는 지금 ‘초상집’분위기 이며 그를 추모하는 열기는 범국민적 분위기이다. 전국적으로 분향소가 차려졌고 그가 살던 봉하 마을에는 매일 수 만명의 추모객들이 몰리고 있어 이러한 추모 열기를 반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본지가 직접 추모 현장을 찾아 그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짚어봤다.
‘바보’라고 불리던 대통령…지역주의 타파·부정부패 척결에 앞장 서
인터넷 정치·서민적인 모습들… 항상 서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퇴임 후 고향 봉하 마을로 귀향해 평범한 농사꾼이 되기를 꿈꿨던 그는 자신과 측근, 가족들에게까지 조여 오는 검찰의 수사망에 대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여 진다.
‘변화’를 원했던 대통령
“어찌되었든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노사모)라는 팬클럽이 있던 대통령은 그가 처음이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인정을 받을 만한 것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약 1시간가량을 뙤약볕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만난 박영훈(31)씨의 이야기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지지 세력은 누가 머라 해도 노사모이다. 노사모 회원들에게 그는 ‘바보’ 또는 ‘노짱’이라고 불렸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노사모 회원들은 그를 지지했다.
노무현의 몇 가지 정치 지표 중 대표적인 것은 바로 한국 정치 문화의 가장 큰 병폐인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노무현은 매번 총선에서 영남지역 출신으로 호남의 표심을 바탕으로 하는 정당에 입당해 부산에 출마했고 수 차례 고배를 마셨다. 노사모는 이러한 바보스러운 노무현의 모습을 사랑했고 이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모임이다.
또한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항상 노무현의 편에 섰다. 지난 4월 내내 ‘박연차 게이트’와 연관되어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이 세간에 오르내리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30일 그가 전직 대통령 중 3번째로 검찰청에 불려가 조사를 받을 때에도 노사모 회원들은 봉하 마을과 대검찰청 등에서 그를 지지하는 행동을 펼쳤다. 나아가 그의 서거 후에 그들의 결집력은 더 단단해지고 행동은 과격해졌다.
분향소가 마련된 봉하 마을에서 보수 정당이나 보수 세력들이 빈소를 찾을 때 ‘살인자들이 문상 오는 경우가 어딨냐’며 이들을 저지했다.
“그를 생각하면 ‘노란 돼지저금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것을 좀 더 발전시켜 국내 정치문화에 정착시켰다면 대선 때마다 터져 나오는 정경 유착이나 재벌과 연계된 각종 비리 사건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
가슴 왼쪽에 ‘근조’리본을 달고 분양을 마친 신미영(46)씨의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2년 대선 당시 지지자들은 ‘노란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모아 그의 선거 캠프에 보냈다. 이렇게 모인 돈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선거 자금으로 이용됐다. 이것은 사실상 국내 정치 문화의 일대 혁명이었다. 이전까지 대통령 후보들은 선거 자금 마련을 위해 재벌 혹은 기업체들에게 자금을 받아 사용했으며 후에 이것들이 많은 문제가 됐다. 하지만 노무현은 달랐다. ‘깨끗한 정치’를 위해서는 ‘깨끗한 자금’을 써야한다는 일념 하에 비록 적은 액수라도 지지자들이 모은 돈을 선거에 활용한 것이다.
시민의 말처럼 이와 같은 정치 행태가 국내 정치 문화에 정착했더라면 이른바 ‘검은돈’ 의혹이 국내 정치에서 뿌리 뽑히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대통령 또 없습니다’
“가장 서민적인 모습의 대통령이다. 권위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그를 생각하면 항상 서민적인 모습과 인간적인 모습들만 떠오른다”
눈물을 흘려서 인지 눈이 빨갛게 상기된 김구연(28)씨의 말이다.
지금 인터넷은 이른바 ‘노간지’(‘폼이난다’는 뜻의 일본어 ‘간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을 합친 합성어)사진으로 도배되어 있고 네티즌들은 이 사진 속에 담긴 그의 인간적이며 친근한 모습에 또 한번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러한 노 전 대통령의 서민적인 모습은 ‘봉하 쉼터’에 앉아 담배를 피는 모습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그는 편안한 점퍼 차림으로 마을 상점에 앉아 담배를 무는 모습을 연출했는데 이 사진에 대해 네티즌들의 ‘서민적이며 인간적’이라는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또한 그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자전거에 달린 수레에 두 명의 손녀를 태우고 마을 주변의 길을 드라이브 하는 사진이 공개됐다. 이 사진으로 인해 ‘운전기사’라는 애칭을 얻었으며 평범한 할아버지들과 다르지 않은 ‘손녀’에 대한 사랑을 보였다. 아울러 이러한 애칭은 전 대통령이라는 신분과 국민간의 스스럼없는 거리감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지난 27일 장의위원회는 노 전 대통령 재임당시 미공개 사진을 공개해 소탈하고 인간적인 ‘서민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네티즌이 올린 ‘노간지’ 사진 중 그는 자신을 보러 봉하 마을을 찾은 여대생들과 사진을 찍으며 그들보다 낮은 자세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소 불편한 자세로 서있는 그의 모습은 전직 대통령의 자세라고 보기에는 미심쩍어 보인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동네 옆집 오빠 혹은 삼촌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대통령 재임 시절 외국의 대통령 혹은 총리를 만날 때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한 모습과 대비되 네티즌들의 더 큰 감동과 비통함에 빠지게 하고 있다. 부시 전 미국대통령을 만났던 시절에도 이렇게 행동했으면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만났을 때에도 같은 모습이었다.
“인터넷으로 시작된 ‘인터넷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보급됐으며 일반인들의 소통의 장이 되고 있는 인터넷을 많이 활용한 대통령이었다”
침울한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