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7년간 동업 마무리 지은 LG-GS가…‘신사협정’ 깨고 영원히 안녕?
같은 업종에서 경쟁하지 말자던 범 LG가…‘건설업’ 두고 미묘한 기운 감돌아
역시나 하늘 아래 새로운 사업이란 없는 것일까. 최근 LG-GS家(가)가 재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서로의 사업영역을 침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이른바 ‘신사협정’에 금이 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57년이라는 긴 결혼생활을 끝으로 이혼도장을 찍었던 두 그룹에게 신사협정 기간은 이혼숙려 기간만큼이나 중요한 서로간의 약속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신사협정이 깨질 조짐을 보이고 있어 재계의 시선이 온통 LG-GS家(가)로 집중되고 있다.

LG그룹과 GS그룹이 분리된 지도 어느덧 5년여가 지났다.
창업 1세대인 구인회 창업회장과 허만정씨에서 시작된 두 그룹의 인연이 3대인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허창수 GS그룹 회장에 이르면서 분리를 결정, 지난 2004년에 57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 각자의 길을 가자는 것이었다.
신뢰의 묵계 ‘신사협정’
그러면서 두 그룹은 LG는 LG디스플레이, LG텔레콤, LG전자, LG파워콤, LG화학, LG데이콤 등 정보기술(IT) 사업에 주력하고, GS는 GS건설, GS칼텍스, GS홈쇼핑 등 에너지·유통 서비스 회사로 전문성을 키우기로 약속했다.
이것이 이른바 ‘신사협정’이다. 향후 5년간은 같은 업종에서 경쟁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분야에서만 매진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두 그룹이 맺은 협정이란 것은 사실 구 회장과 허 회장 일가간의 수십 년간 쌓아온 동업의 신뢰를 깨지 말자는 묵계와 같은 것으로 딱히 명문화 되거나 실효성이 있는 협정은 아니다. 한마디로 법적 효력이 있거나 꼭 지켜야 하는 협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최근 두 그룹 사이에 신사협정이 깨질 조짐을 보이면서 그룹 안팎에서 미묘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그동안 큰 잡음 없이 그룹분리를 마치고 각자의 사업에 매진하며 상부상조하던 LG-GS가에 확실한 이혼 종지부를 찍을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 재계 일각의 시선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확히 신사협정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려지지 않아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대내외 적으로 알려진 5년이라는 기간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이제 서로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LG, 건설업 진출한다?
최근에는 “LG가 건설업에 뛰어든다”는 소문이 들려오면서 LG-GS가의 파열 조짐이 가속화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7월 말까지 새로운 투자자를 찾지 못하면 대우건설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LG가 대우건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확산된 것이다.
이미 건설부문은 GS건설이 있기 때문에 LG가 건설업에 진출하게 되면 공식적으로 두 그룹의 신사협정은 깨지는 것과 마찬가지. 뿐만 아니라 지난 2008년 GS건설이 올린 6조8000억원의 매출 가운데 20%가량인 1조2000억원이 옛 LG그룹 계열사인 물량인 만큼, LG의 건설업 진출은 GS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자 LG는 곧바로 “건설업 진출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소문 진화에 나섰다. 물론, LG의 건설업 진출설은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또 이런 소문이 돌때마다 LG는 공식적으로 “건설업에 진출할 생각이 없다”며 각종 설들을 일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공식적인 답변과는 달리 이미 LG는 계열사인 서브원을 통해 일정부분의 그룹 건설물량을 하청 받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말로 LG가 건설업에 관심이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7년 허창수 GS그룹 회장 역시 “LG가 영원히 건설업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안 하는 분야에 참여하는 데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어 LG의 건설업 진출에 대한 묘한 여운을 남긴바 있다.
더욱이 최근엔 LIG건영이 회사명을 ‘LIG건설’로 바꿔 LG-GS간의 미묘한 기운을 더하고 있다.
겹치지 않기는 ‘하늘의 별따기’
재계 관계자들 역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돈 되는 사업’을 찾아야 하는 기업의 특성상 사업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때문에 LG화학의 2차 전지와 겹칠 오해의 소지가 있는 연료전지사업을 GS가 조심스레 진행하고, LG가 계열사인 서브원을 통해 조금씩 그룹 건설 물량을 처리하고 있는 등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점차 서로의 사업 영역이 겹치는 부분은 늘 것이란 거다.
이에 재계 관계자들은 “하늘 아래 새로운 사업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그런만큼 설사 ‘신사협정’은 깨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사업 영역이 겹치는 사례는 더 많이 늘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관계자들은 “결국, LG와 GS간의 신사협정은 언젠가는 깨지게 돼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