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들은 수그러들 줄을 모르고 있다.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하면서 전 이사장의 비영리 재단인 수림재단에 출연한 1200억원은 아직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으며, 이를 둘러싼 또다른 의혹들도 줄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중앙대 동문회를 중심으로 한 일각에서는 편법적 학교매매라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어 논란을 더하고 있다. 두산과 전 중앙대 재단이 사립학교 매매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편법매매 했다는 것. 이에 본지가 사학재단 인수의 나쁜 전례로 남을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일고 있는 두산의 중앙대 인수에 대한 의혹에 대해 짚어봤다.
두산, 중앙대 인수 조건으로 1200억원 전 이사장의 개인재단에 출연해 논란
일각, “출연금 중앙대 위해 쓰이지 않는 만큼 편법적 학교 매매다” 의혹제기
“사립학교 재단이 설립자 개인 소유물로 인식돼 후손들에게 대대로 물려지고, 또 돈으로 사고파는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건학 이념을 이어 가기 위해선 교육에 대한 열정과 전문지식을 갖춘 이들에게 물려주는 게 바람직하다.”
지난 1월 자신이 반평생을 받쳐 오롯이 가꿔온 사립학교재단을 사회에 환원한 한 노(老)교육자의 말이다. 그의 뜻을 헤아리자면 학교는 사고파는 개인의 소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출연금 1200억 누굴 위한 것?
하지만 그의 바람과 현실은 달랐다. 여전히 사학재단이 이사장 개인의 소유물인 듯 일각에선 암암리에 편법적 매매 행위가 벌어지는가 하면, 여전히 재단의 이사장직도 세습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 막대한 자본금을 가진 재벌기업들의 사학사업 진출이 활발히 이뤄짐에 따라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5월 중앙대를 인수한 두산이 학교 편법 매매 의혹에 휩싸여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골자는 두산이 중앙대 인수 조건으로 출연하기로 한 1200억원이 학교법인 중앙대가 아닌 전 이사장의 개인재단으로 들어간 것은 편법적 학교 매매라는 것.
의혹은 지난해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하면서 교수와 학생들을 위해 내놓기로 한 1200억원의 출연금이 학교법인 중앙대가 아닌 김희수 전 이사장 소유의 수림재단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더욱이 당시 중앙대는 이사회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두산이 인수조건으로 중앙대 재단법인 수림장학연구재단에 장학·연구기금 1200억원을 조성하고 재단이사회 운영에 참여하게 된다”고 발표해 수림재단이 마치 ‘중앙대 재단의 법인재단’인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림재단은 지난 1990년 김 전 이사장이 설립한 공익재단으로 학교법인 중앙대학교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공익재단인 수림재단은 현행 공익법인의설립·운영법에 따라 공익재단의 목적사업 외 다른 사업수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때문에 수림재단 설립 목적이 중앙대만을 위한 것이 아닌 만큼, 두산이 출연한 1200억원을 수림재단이 특정단체인 중앙대만을 위해서 사용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두산은 중앙대 인수 당시 전 재단과 ‘학교법인 중앙대학교 발전을 위한 공동협약서’(MOU)에서 1200억원을 수림재단에 출연할 것을 약속하는 조항과 함께 출연금을 ‘중앙대 복지를 위해 사용하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조항을 넣은 것으로 알려져 의문을 더하고 있다.
때문에 중앙대 동문회를 중심으로 한 일각은 “수림재단에 출연한 돈이 중앙대를 위해서 쓰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두산이 수림재단에 1200억원을 출연하고, 마치 수림재단이 중앙대를 위한 장학사업을 진행할 것처럼 위장했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특히, 공익재단인 수림재단이 공익법인의설립·운영법상 ‘법인과의 특수관계’에 있는 중앙대에 기금 출연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고 있다.
일각에 따르면 공익법인의설립·운영법시행령에 따르면 ‘주문관청(교육과학기술부)은 재산을 추가 출연할 때 수혜자 범위를 한정할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장관과 합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중앙대를 위한 장학금 지급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각은 “중앙대를 지원하려는 목적이 있었다면 두산이 기금 출연 당시 수혜범위를 중앙대로 한정시킬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사립학교법 제28조 2항
이처럼 두산이 중앙대 인수 조건으로 출연하기로 한 1200억원이 엉뚱하게 전 이사장의 재단으로 들어가게 되자, 중앙대 동창회를 중심으로 한 일각에서는 법조항을 근거로 학교 편법 매매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사립학교법 제28조 ②항에는 “학교교육에 직접 사용되는 학교법인의 재산 중 대통령이 정하는 것은 이를 매도하거나 담보에 제공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이 내놓은 출연금이 학교와는 상관없는 김 전 이사장의 개인재단으로 간다는 것은 인계인수 양자간의 어떤 커넥션 의혹을 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는 곧 학교재단을 일개 상품처럼 사고 판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중앙대 동창회의 원로고문인 송모 고문은 이런 의혹에 대해 검찰에 수사요청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더하고 있다.
송 고문은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검에 “김 전 이사장이 두산그룹에 재단운영권을 넘기면서 받은 출연금을 학교재단에 입금하지 않고 별도 자기 개인재단에 유입시킨 것은 불법이니 수사해 달라”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진정서를 제출한지 6개월여가 지난 1월에서야 검찰은 “김희수씨가 두산그룹에게 학교재단 운영권을 넘기고 그 대가를 받은 사실은 인정되나, 이사회 의결을 거쳐 이사장 변경을 거친 것이고, 1200억원 출연에 대해서는 처벌규정이 없으므로 범죄사실이 인정되지 않아 혐의없음으로 종결했다”고 통고했다.
검찰, 두산이 수림에 준 1200억원 대가성은 인정…하지만 법규없어 무혐의?
교육계 관계자, “자칫 사학재단을 사고파는 나쁜 선례가 될 수도 있다” 우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검찰도 두산이 수림재단에 출연한 1200억원이 대가성인 것은 인정하지만, 관련 법규 등이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송 고문은 검찰에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검찰의 답변은 같았다. 사립학교법 제28조 ②항은 학교법인 재산(동산 및 부동산)의 매도 및 담보 금지 조항으로, 이번 사안과 같이 학교재단 운영권 자체를 넘기는 대가로 별도의 재단에 그 대금을 출연하도록 하는 것은 이 조항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송 고문은 “검찰도 두산이 수림재단에 출연한 1200억원이 대가성 돈인 것은 인정했다”면서 “관련 법규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사립학교법 외에 민·형사법 상으로 처벌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두산 측 관계자는 “자세한 것은 중앙대 측에 물어보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두산이 중앙대 인수를 위해 출연한 금액은 사실상 0원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도 “마음대로 해석하라”고만 대답했다.
이에 대해 중앙대 측 관계자는 “중앙대 운영권을 넘기면서 두산이 전 이사장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출연금을 수림재단에 출연한 것으로 안다. 당연한 것이 아니겠냐”며 “수림재단은 공익재단인 만큼 공익차원에서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계자는 “유감스럽지만 출연금의 사용처는 전적으로 수림재단의 의사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행정당국도 “문제없다”
더욱이 사립대학을 관리·감독하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의 해당부서 역시 “사립대학의 인수절차는 법적으로 마련돼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사회를 통해 이사장과 이사진이 바뀌는 것일 뿐”이라며 “우리는 임원이 결격사유가 없는지 확인하고 이사취임을 승인만 해준다”고 말했다.
교과부에 따르면 두산의 중앙대 인수의 경우 이사회를 통해 정식으로 합의가 이뤄졌고, 두산과 중앙대 양자 간의 합의사항이기 때문에 교과부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인수절차 등을 제재하는 것은 사학재단에 대한 자율성 침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육계 관계자들은 두산의 중앙대 인수 사례는 자칫 사학재단을 사고 파는 나쁜 선례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 대학교육 관계자는 “특정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재단으로 출연금이 들어갔다면 일종의 매매라고 볼 수도 있다”며 “대부분 사학재단을 인수할 때는 매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빚 등을 갚아주거나 출연금을 재단에 내면서 재단 운영에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과거에도 이런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최근 대학 인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사학재단 인수에 대한 정책연구 등이 필요한 부분인데, 교과부의 태도도 무책임한 부분이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두산이 전 이사장의 재단에 출연금을 주고 중앙대를 인수한 것은 뭔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쩔 수 없고, 기업의 사학재단 참여 절차나 관련 법규가 마련되지 않는 이상 편법적 사학재단 매매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