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무풍지대’였던 포스코에 서슬 퍼런 노조 깃발이 꽂혔다. 최근 포스코의 IT계열사인 포스데이타가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노사간의 갈등이 벌어지면서 민주노총 산하의 노동조합이 설립된 것. 이에 포스코 측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룹 내에 정식 노조가 설립된 것은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준양 회장 체제 출범이후 첫 노사 갈등인 만큼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도 고심하고 있는 눈치다. 자칫 이번 노조설립이 다른 계열사로까지 번지면 사태는 훨씬 심각해질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포스코 IT계열사 포스데이타 ‘노동조합’ 설립…그룹 내에 생긴 사실상 첫 노조
재계 일각, “공기업 성격 못 벗어난 포스코, 노조설립은 아래로부터의 민영화”
사실 그동안 포스코는 무노조 사업장으로 ‘노조 무풍지대’, ‘무노조’의 대명사로 여겨져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986년 포항종합제철(주)로 출범한 포스코는 그동안 공기업으로서, 국가와 국민들의 지지와 관심을 받으며 국민기업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노조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기업문화가 자리 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런 포스코에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산하의 노동조합이 처음 설립되면서 포스코의 노조문화에 대파란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무노조 시대’의 폐막
지난 19일 포스데이타노동조합(위원장 윤석준)은 지난 5월28일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마치고, 민주노총 전국IT산업노동조합연맹에 가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포스데이타는 시스템통합(SI), 시스템운영(SM), 컨버전스, 와이브로(FLYVO) 사업을 하는 포스코의 IT전문 계열사다.
포스데이타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4월 포스데이타는 와이브로 사업으로 인한 경영악화를 이유로 직원들에게 구조조정을 예고했고, 이때부터 직원들과 갈등이 깊어졌다.
포스데이타 측은 4월부터 DVR사업을 윈포넷에 자산분리방식으로 매각하면서 관련 직원 30여명을 넘겼다.
6월15일에는 와이브로 사업부문의 310명 가운데 130명을 포함한 150여명을 희망퇴직 시켰고, 이튿날 희망퇴직을 거부한 와이브로 사업부문의 직원 80여명을 대기발령 시켰다. 이런 과정에서 경영진은 일방적인 인력감축을 강행했고 이에 반발해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됐다는 것이다.
포스데이타노조 측은 “노조가 설립되기 전 직원들은 다각적 노력을 통해 회사와 대화를 시도했으나, 회사는 철저히 무시했다”며 “특히 경영상의 위기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나 적극적인 구조조정 회피 노력을 누락한 채 막무가내식 인력감축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조 측은 “노동조합 설립 이후 포스데이타는 ‘법외노조’, ‘무고죄처벌’, ‘형사처벌’ 등을 운운하며 설립필증을 받은 노동조합을 정면 무시하거나, 심지어 협박까지 서슴치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포스데이타 측 관계자는 “와이브로 사업부문이 계속해서 적자를 면치 못하자 회사에서는 근로자 참여 및 협력중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노사 양측이 참여하는 ‘위기극복공동위원회’(와이브로 사업부문 인력 3명 포함)를 만들어 7차에 걸쳐 직원들과 해결방안을 논의해왔으며, 여기서 나온 방안이 희망퇴직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관계자는 “노조를 무시한다거나 협박 등을 했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이 일을 포스데이타 회사 차원의 일로만 봐줬으면 한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아래로부터 민영화의 기운이?
그동안 포스코는 2만여명에 달하는 전체 임직원 가운데 포스코 직원 20여명만이 한국노총 산하의 노조원으로 소속돼 있는 등 사실상 무노조 사업장이었다. 이에 포스코그룹 직원들은 노동조합이라기보다는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선출하는 직원대표제 형태를 운용, 그동안 노조문제로 말썽을 빚은 적이 거의 없었다.
이에 재계 관계자들은 포스데이타노동조합이 포스코그룹 내에 생긴 첫 노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각에 따르면 지난 2000년 민영기업으로 새로 출범한 포스코는 민영화 선언이후에도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그룹의 회장이 바뀌는 등 여전히 공기업적 성격이 강했다. 특히, 최근에도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이 임기를 1년여 남기고 사퇴한 이후, 정준양 회장이 새로 취임하는 과정을 두고 정치권 ‘외압설’이 불거지기도 했었다.
때문에 일각은 “민영 1,2,3기가 지나도록 공기업적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포스코 내에 내부 감시자 역할 등을 할 수 있는 노조가 생겼다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민영기업문화가 시작되는 첫단추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각은 포스코를 바라보는 국민적 시각의 변화도 노조 설립의 또다른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국민기업에 가까웠던 포스코에 노조가 생긴다는 것은 세간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거다. 때문에 포스데이타노조 사례를 시작으로 노조설립이 다른 계열사로도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일각은 전망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그룹 측 관계자는 “(첫 노조설립에) 의미를 두자면 둘 수도 있다”라며 “(노조 설립이 계속 이어질지는) 추이를 지켜봐야 알겠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재계 일각은 “정준양 회장 체제 출범이후 불거진 첫 노사 갈등인 만큼 포스코 측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에 따라 노조문제가 전 계열사로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 회장의 노사 갈등 대처능력도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