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잔다르크’ 장영신 회장이 이끄는 애경그룹이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 그룹의 사실상 총수이자 장 회장의 큰아들인 채형석 총괄부회장이 횡령 혐의로 실형선고를 받은 후 잠시 내부 추스르기 작업에 들어간 애경이었다. 이 차원에서 애경백화점의 사명을 ‘AK플라자’로 변경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또다시 암초를 만나고 말았다. 이번엔 그룹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메머드급이다. 애경이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이 강도 높게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재무구조 개선 약정 기업 9곳 중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애경 장영신 회장, 이미지 타격 이은 유동성 위기 ‘총체적 난관’ 해결 고민
일각, 장 회장 경영 일선 복귀와 함께 후계구도 재정비 및 조직 개편 주목
장 회장은 재계의 잔다르크로 불린다. 이런 별칭이 말해 주듯 그는 재계에서도 몇 안되는 여성 오너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무너져 내린 금자탑
지난 1972년 남편인 채몽인 애경유지 사장이 작고한 후 회사를 떠맡은 장 회장은 국내 최초 주방세제인 ‘트리오’를 내놓아 공전 히트시키며 애경을 국민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장 회장의 여성적 섬세함과 남성보다 더 강한 추진력이 성장 동력원이 됐다. 여기서 장 회장이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은 애경이 어느 기업보다 도덕적으로 투명하고 깨끗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데 갖은 애를 다 썼다는 점이다. 이런 장 회장의 노력 탓에 애경은 회사가 생산하는 치약만큼이나 깨끗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지난해 장 회장이 수 십년간 공들여서 쌓아놓은 무결점의 도덕성이란 금자탑을 ‘와르르’ 무너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장 회장의 큰아들인 채형석 총괄부회장이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으면서 이와 관련해 지난 4월에 결국 횡령 혐의로 실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이를 두고 당시 일각에서는 애경그룹의 후계구도에 큰 변화가 일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 회장이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도덕성에 흠집을 낸 장본인이 후계구도의 최정점에 서 있는 장남이기 때문.
이에 일각에서는 누구보다 맺고 끝는 게 확실한 장 회장이 아무리 채 부회장이 그의 친아들이기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문책을 할 것이란 데 무게를 뒀다. 이는 곧 후계구도의 변화와 맥이 닿아 있다.
그러나, 일각의 이같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머니 장 회장의 특별한 지시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형의 빈 공백을 동생인 채동석 부회장이 잘 메워줌으로써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일각의 관점은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장 회장 역시 회사의 오너이기 이전에 앞서 자식에 대한 사랑은 여느 어머니와 다름없었기 때문이란 것. 또 하나는 장 회장이 그동안 아들들에게 회사 경영을 맡긴 이후부터 경영 감각이 다소 떨어졌다는 것이다.
과거 장 회장이 서슬퍼런 칼을 휘두르며 재계를 종횡무진 누볐던 것에 비하면 지금 장 회장이 쥔 칼은 너무도 녹이 슬었다는 평가다.
장 회장, 또 고민

최근 재계 안팎에서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강도 높게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재무구조개선 약정 9개 그룹에 애경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애경은 본업 외에 부업에 더 열을 올렸다. 장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실질적 총수 역할을 해온 큰아들 채형석 총괄부회장이 주축이 돼 저가항공사를 만들어 항공업에 진출했고, 삼성플라자 분당점을 인수 한 후에는 부동산 투자 및 개발에 박차를 가해 왔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로 치달으면서 애경은 그동안 여러 부업에 투자한 금액 만큼의 이익을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악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곧 유동성 위기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애경은 최근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을 매각하고 차입금 상환 등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해 유동성을 개선키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애경이 내놓은 대책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가로 젓는 이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애경이 세운 저가항공사인 제주항공의 경우 지난해 228억의 적자가 났고, 올 1?4분기 역시 75억원의 적자가 난 상태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유가 상승 등으로 인해 회복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적자폭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AK플라자 분당점도 매출이 감소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애경의 대책은 임시방편일 뿐이란 것.
장 회장의 결단 주목
이에 일각에서는 장 회장이 어떠한 결단을 내릴 지 주목하고 있다. 국민기업으로 성장해오면서 온갖 역경을 다 헤쳐 온 장 회장이 총체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할 것인지 말이다.
나아가 장 회장이 그동안 녹슬었던 칼을 갈고, 다시 후계구도를 재정비 혹은 그룹 조직 개편을 단행할 런지에 대해서도 재계의 비장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