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는 말에 흥분해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시신을 팔당호에 버린 남자가 자살했다. 그가 자살한 장소는 다름 아닌 청주교도소 독방. 독방에는 CCTV가 설치돼 있어 교도관들이 감방 안을 감시할 수 있었지만 아무도 그의 자살을 막지 못했던 것. 더욱이 열흘 전에 그는 유리조각으로 손목을 긋는 등 자해소동을 벌여 경찰이 교도관측에 특별 관리를 요청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연쇄살인 의혹을 받던 용의자이기도 해 사건을 해결해야할 관리당국이 사건을 영구 미제로 남게 했다는 비난마저 받고 있는 것. 이에 본지가 관리소홀 교정당국의 현주소를 취재해봤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미평동에 위치한 청주교도소 병사보호실. 0.96평정도 되는 공간에 화장실 변기와 출입문, 그 사이 약 0.9~1m정도의 선반이 있다. 지난 27일 이 곳에서 수감자 김모(50)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이에 청주지검과 청주교도소는 “김씨는 이날 손목에 감은 붕대를 풀어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으며 순찰 중인 교도관들이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으나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씨가 어떻게 자살 도구로 붕대를 사용할 수 있었던 건지 궁금하다면 사건발생 열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자해소동벌인 수감자
사귀던 A씨를 살해한 뒤 팔당호에 유기한 혐의로 지난 17일 체포된 김씨.
다음날인 지난 18일 청주 흥덕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됐다.
연쇄살인 의혹 받던 용의자 독방에서 목매 숨져, 교도소 CCTV 무용무실
경찰 특별관리 요청했지만 교정당국 관리소홀, 사실상 영구 미제 된 사건
이날 김씨는 경찰과 함께 A씨 살해와 유기에 쓰인 증거품을 찾기 위해 그의 집에 갔던 것.
하지만 그는 경찰관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손목을 유리조각으로 자해했다.
더욱이 경찰은 김씨의 자해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다음날인 지난 19일 이 돼서야 상처를 치료해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경찰은 “김씨가 손목을 감추는 바람에 자해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던 날 상처를 발견해 3바늘을 꿰매는 치료를 해줬다. 상처는 대수롭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이때 김씨의 손목에 감겨진 붕대가 자살사건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사실 김씨는 실종된 뒤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는 김씨의 전 처형 B씨와 전 애인 C씨도 살해해 어딘가에 유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때문에 지난 26일 경찰은 그를 청주교도소로 인계하면서 연쇄살인 용의자인데다 자해까지 한 사실을 적극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교도소 측도 김씨를 관심보호 대상자로 분류해 독방에 수용했던 것.
하지만 경찰이 우려했던 일인 김씨의 자살이 실제로 벌어지면서 교정당국의 관리책임에 관한 부분이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관리소홀 교정당국
실제로 경찰은 김씨가 ‘모르쇠’로 일관, 여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을 검찰로 송치한데다 김씨의 자해사실을 하루 늦게 알 정도로 관리가 소홀했다.
더욱이 김씨가 수감돼있던 독방은 24시간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는 CCTV가 설치돼 있었지만 교도소측은 김씨의 자살을 막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씨는 수감되기 전 경찰 조사과정에서도 자살을 시도해 교도소 측의 특별 관리대상이 아니었냐”며 “연쇄살인의혹까지 받고 있는데다 극도로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인 수용자를 그냥 그대로 방치해둔 것은 자살을 방조한 것과 다름없다”는 원색적인 비난이 일고 있다.
더욱이 김씨는 경찰 수사과정에서 투입된 범죄심리분석가로부터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 장애) 진단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데다 경찰과 교정당국의 책임공방까지 이어져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경찰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자해는 경찰의 피의자 관리 소홀이 원인이긴 하다. 그러나 24시간 감시체계가 갖춰진 교도소에서 자살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교도소 측이 수용자 관리 규칙 등을 제대로 준수했는지 여부도 짚어 볼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도소 관계자는 “김씨가 수감 당시에도 이상한 분위기를 내비치지 않았고 세탁물도 잘 정리해 별다른 이상을 눈치채기 힘들었다”며 “김씨가 목을 맨 선반은 개인 사물함 뒤에 위치해 CCTV 사각지대였다. 정기적으로 순찰을 돌았지만 교도관들이 발견했을 때는 이미 손을 쓰기 힘든 상태였다”고 해명한 것이다.
영구미제 된 살인사건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김씨가 자살함으로써 수사 중인 두 실종 사건이 모두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사실 김씨는 3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지난 2007년부터 혼자 살아오면서 여자를 수시로 바꿔온 것으로 밝혀졌다.
평소 그는 벤츠 등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등 연쇄살인범 강호순과 범행 전 행적이 비슷해 이목을 끌었다.
더욱이 지난 2000년과 2001년에 일어난 이 실종사건은 이미 8,9년이 지나 증거를 확보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김씨가 자살함으로써 또 다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기 때문이다.
결국 김씨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경찰은 김씨가 끝까지 묵비권으로 일관하다 자살하면서 집과 차량 등에 확보된 DNA 분석 결과만이 일말의 기대로 남게 됐다.
이에 검찰 관계자는 “김씨의 여자친구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할 계획”이라며 “여죄도 미제로 정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실종사건의 수사는 사실상 종결됐다”며 “이는 경찰과 검찰, 교정당국이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