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는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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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대란 초비상, “정규직전환은 딴나라 이야기”

실질적으로 지난 7월 1일부터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됐다.

비정규직은 1997년 외환위기를 당한 이후 크게 늘어났다. 외환위기 때 인원 감축을 포함해 뼈아픈 구조조정을 경험한 기업들이 경비를 줄이고 인력 운용을 유연하게 하려고 비정규직 채용을 선호하기 시작한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많아지면 기업 입장에선 당장 인건비를 줄일 수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언제라도 잘릴 수 있다’는 고용 불안심리와 저임금 구조로 사회적 위화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사회통합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또 살림이 쪼들리는 비정규직이 지갑을 닫는 바람에 내수가 살아나지 못한다. 이로 인해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 입장에서도 좋을게 없다.

대량해고 떨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정부가 나섰고 이것이 바로 요즘 사회적인 논란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보호법이다.

이번 비정규직의 주요골자는 비정규직이라 하더라도 한 회사에서 2년 이상 근무하면 그 회사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같은 조건에서 같은 일을 하고 노동 강도가 같다면 임금.복지 등 면에서 차별을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법안은 2007년 4월달에 간신히 국회를 통과했는데 당시에도 논쟁의 대상이었다. 사용자 측을 대표하는 경제단체에서는 “기업 부담이 너무 커진다”고 난색을 표명했고 노동단체에서는 “이 법안이 비정규직 숫자를 줄이는 데 미흡하다”는 주장했다.

또한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을 보호하려는 정부의 선의 와 달리 오히려 이 법안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다. 예를들어 ‘2년 이상 일하게 하면 계속 고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2년이 되기 직전 이들을 내보내는 방법을 쓸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나마 있는 일자리마저 줄어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지적 이었다.

2007년의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의 이런 걱정은 현실화되고 있다.

대량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약 기다리는 심경으로 해고될까 극심한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이에대해 노무사 김해민씨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는 커녕 여지없이 해고되고 있다. 사약 받을 날을 하루하루 기다리는 심경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살얼음을 걷고있다.”고 밝혔다.

또한 김씨는 “여야간 협상이 결렬되면서 비정규직법안 유예기간 없이 당초대로 시행되는 가운데 특히 조만간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노동자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지만 여의치 않으면 당장 해고될 수 있는 양극단의 갈림길에 선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부산에서는 주요 기업들은 비정규직 문제 처리를 두고 대부분 해고를 선택할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 비정규직노동자 대부분 해고할 계획

부산상공회의소가 지역의 10개 업종별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긴급 전화모니터링을 한 결과 대기업의 경우 비정규직 전환으로 정규직 전환이 다수 이뤄지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인력 대부분을 해고하고 대체인력을 구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부품업종의 경우 기업형편상 정규직 전환이 어려워 2년 이상 비정규직은 해고할 방침이다.

일부에서는 정규직 전환의무에서 제외되는 퇴직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재채용하면서 이들의 현장경험과 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다.

철강업종도 직종에 따라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지만 대부분 일부를 제외하고는 기간 만료시 계약을 해지하고 이후 정년퇴직 직원을 아웃소싱 형태로 활용할 예정이다.

조선기자재업종은 비정규직 활용도가 낮은 편이지만 청소 등 단순 일용직의 경우 해고하고 대체인력을 채용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음식료품의 경우 비정규직은 대부분 부녀사원으로 이직률이 높아 선별 해고할 방침이며, 의류.화학업종 역시 비정규직 업무가 전산처리보조 같은 단순노무이기 때문에 향후 정규직 전환에 회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금융업종은 운전이나 영양사, 청원경찰 등 특수직종에서 계약직이 많았으나 무기근로계약 등 방법으로 계약을 유지할 계획이며, 유통업종도 매장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2년을 넘길 경우 무기계약사원으로 전환하고 있다.

김승희 부산상의 경제조사팀 차장은 "업종별로 지역기업 상당수가 중소기업 규모로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라 불가피하게 해고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일부 업종에서는 비정규직 계약기간을 3~4년으로 연장하거나 법 시행을 유보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비정규직 법안을 두고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정부와 노동계도 이렇게 대책없이 법이 적용되면 매달 수만명의 계약 만료 근료자들이 생겨나 고용 불안이 초래될 것이라는 점은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다.

통계청은 이달 이후 1년 동안 이처럼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직장을 잃게 될 갈림길에 선 비정규직 근로자가 70만명에서 많게는 1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도 정부의 ‘100만명 실업 대란설’은 과장됐다며 반박하면서도, 근속기간 2년이 만료되는 근로자가 매월 3만 2천여명씩 생길 것으로 예상하는 등 고용 불안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이젠 정부가 나서야 할때...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관계자들은 이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부소장은 “극약처방으로 정규직 전환 지원금을 서둘러 마련하는 등 계약 해지를 최소화 해 대량 실업을 막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한 이남신 소장은 “2년이든 3년이든 기간을 제한하는 것 만으로는 비정규직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애초 고용할 때부터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등 비정규직법 자체를 입법 취지에 맞게 수정,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장 실직의 갈림길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함과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고용을 안정화할 수 있는 근원적인 처방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부가 나선다고 하더라도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지난 1일부터 개정법이 시작되는 날 사이에 해고된 비정규직자들을 구제할 길이 사실상 없다.

이부분에 대해 노동부는 “사용자가 재고용 의사가 없어 계약기간이 만료된 비정규직자를 해고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로, 근로자는 법개정을 이유로 의무 고용을 요구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 상황이 바꼈다고 해서 사용자가 과거 상황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어 개정된 법에 이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는 한 보호받을 수 없다”는 못 박았다.

노동부 한 관계자는 “현재 법률적으로 마땅한 구제방안은 없다. 해고자들의 복직을 의무화하는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사실상 이들의 재고용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며칠 차이로 먼저 잘려나간 비정규직자들만 억울하게 되는 셈이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두고 각 정당과 언론, 노동계와 재계 등 곳곳에서 치열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법은 2년 전 국민들에게 약속한 대로 시행되었고, 이제는 소모적인 유예 논란을 종식해야 할 때다. 지금부터는 시행된 법을 근거로 하여 정규직 전환 지원방안, 무분별한 해고에 대한 정책 지도 등 다양한 후속 작업이 실시돼야 한다. 더불어 비정규직 고용사유 제한, 파견제 폐지 등 비정규직법의 재개정도 이뤄져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안정적 일자리 보장은 한국경제의 장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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