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교차로. 한 차량이 신호를 무시하고 그대로 질주한다. 이로 인해 이 차량에 대해 범칙금 스티커가 발부되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범칙금을 받아낼 방도가 없다. 실제 운전자와 명의자가 다른 이른바 ‘대포차’이기 때문. 범죄 행위에 이용되거나 세금·범칙금 등을 받을 수 없는 ‘대포차’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와중에 전국적으로 1만여대 이상의 대포차를 판매한 중고차 업자들과 금품과 향응을 받고 이들의 뒤를 봐준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에 본지가 이들의 ‘대포차 불법 유통 커넥션’과 나날이 발전하는 대포차 문제에 대해 취재해 봤다.

속칭 ‘대포차’(이전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단점유 또는 제3자에게 점유 이전을 한 타인 명의의 자동차)라고 불리는 무등록 차량을 유통 시킨 중고 자동차 매매업자 A(44)씨 등 96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지난 일년간 전국적으로 무려 1만2000대의 대포차를 유통시켰다.
전국적으로 1만여대 대포차 유통…뇌물 받고 각종 불법 행위 묵인
국내에 널리 퍼진 상태… 가격 싸고 세금 체납 등 ‘2중 이익’ 노려
또 이들의 이러한 ‘불법 영업’행태를 알고도 눈을 감아준 경기도 북부의 가평군과 남양주시 등 6개 자치단체 소속 B(45)씨 등 22명의 공무원도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금품’과 ‘접대’의 커넥션
사건을 담당한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의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상품용 차량을 대포차로 둔갑시켜 판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 업자들은 대부분이 중고 자동차 매매상 차량으로 등록한 뒤 소비자들에게 명의 이전 없이 차량을 팔아넘긴 것이다.
A씨 등은 지난 해 4월부터 폐차되는 택시나 중고차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 차들을 자신들의 중고매매업소의 전시용 혹은 판매용 차로 등록시켰다. 아울러 이들은 인터넷의 카페나 블로그 등에 대포차를 판매한다는 광고를 낸 뒤 이 광고를 보고 온 소비자들에게 이 차량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이 판매한 차량은 소비자들의 손에 넘어간 이후에도 실제 소유주의 명의로 이전 시키지 않았다. 때문에 차량의 소유는 매매상사 명의로 되어 있는 ‘대포차’로 분류된 것이며 구입한 사람들은 마음 놓고 과속·불법 주차 등의 범법 행위를 할 수 있었다. 또 이들에게 부과되는 과태료는 실소유주가 아닌 매매상사로 발급되었다.
이렇게 판매되어 팔려나간 자동차로 인해 체납된 과태료만 무려 64억원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이렇게 납부되지 않은 과태료가 아무런 제재 없이 차곡차곡 쌓일 수 있는 이유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안에 이 업자들은 회사를 폐업 신고 한 뒤 또 다른 회사를 등록하는 형식으로 꾸준히 영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로 업자들이 활개를 치면서 영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뒤를 봐주는 공무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A씨 등은 몇 번씩 공무원들을 찾아가 ‘얼굴 도장’을 찍고 음료수 등도 사다주면서 친분을 쌓은 뒤 금품을 뿌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 형님, 동생하는 사이로 관계가 발전한 이들은 이른바 ‘떡값’ 명목으로 한번에 약 20~30만원씩 금품을 제공했다. 또 A씨 등은 이에 그치지 않고 향응을 접대하는가하면 심지어는 ‘성접대’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B씨 등의 공무원들은 A씨 등에게 ‘접대’를 받은 뒤 업자들의 범법 행위에 대해 알면서도 묵인 해준 것이다. B씨 등의 자동차 관련 공무원(대부분 7급이나 8급)들은 약 3개월마다 한 번씩 매매업자들의 업소를 돌며 가게 명의로 등록된 자동차가 계속 존재하는 지 등을 확인해야하는 업무를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직무를 유기 한 것이다. 또 명의 이전 신고 후에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자동차 번호판도 명의 이전 없이 그대로 발급해 주었다.
각양각색의 ‘대포차’
‘대포차’ 단속을 맡고 있는 서울특별시청 재무국 세무과 관계자는 “중고 자동차 매매상에서 고의적으로 대포차를 구입하는 등 이미 국내의 대포차가 만연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판단하기 애매모호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실제 차량 이용자와 명의자가 다르고 각종 법령을 위반하는 차량은 모두 대포차”라고 정의를 설명하며 “대포차를 구입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금이나 범칙금 등을 체납할 수 있으며 일반 중고차보다 싸다는 ‘2중 이익’을 노리고 구입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의 일각에 따르면 ‘대포차’에도 출처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 번째로는 속칭 ‘개인 대포’라고 불리는 차량이다.
‘
개인 대포차’는 일반적으로 개인과 개인 사이의 채무 관계에서 양산된다. A가 B에게 일정 금액의 돈을 빌렸지만 이를 갚지 못하자 A는 일종의 담보 형태로 B에게 자신의 차량을 명의 이전 없이 넘겨주거나 맡긴다.
그러나 B는 이 차량이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범칙금이나 세금 등을 납부하지 않는 등의 행위를 저지른다면 이 차량은 대포차량이 되는 것이다. 또 돈을 빌려주는 일종의 캐피탈 회사에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접수된 자동차를 제 3자에게 넘기거나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많이 발생하고 있다.
두 번째로 ‘상사 대포’라고 불리는 차량이다. 이 차량은 대부분 중고차 업자들에게서 양산되는 차량으로 중고차 상사 명의로 된 차량을 업자가 제 3자에게 판매하지만 명의를 이전하지 않고 파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반을 하더라도 범칙금 등이 중고차 업자로 발급되기 때문에 소비자는 범칙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법인 대포’라고 불리는 차량이다. 애초에 회사 혹은 법인으로 등록된 차량이 회사의 부도 등의 이유로 압류된 차량을 손에 넣은 제 3자가 자신의 명의로 변경하지 않은 채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차량 역시 세금과 범칙금 등은 기존의 법인으로 발급된다.
이처럼 국가의 세금 체납 등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대포차 제제를 위한 법령이 시급히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