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1의 기업, 삼성이 개혁을 선언한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아니 오히려 후퇴한 인상마저 심어주고 있다. 삼성은 직·간접적으로 비리에 연루됐던 임직원들 대부분을 승진시키거나 심지어 이들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해 수억원대의 돈까지 쥐어 줬다. 이로 인해 사회 일각에서는 비난 목소리가 거세다. 삼성이 쇄신 약속을 강력하게 추진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삼성 개혁에 앞장서고 있는 경제개혁연대는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회와 시대적 요구의 목소리에도 삼성은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입을 닫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개혁연대, “삼성화재·삼성증권, 법령위반 확인된 전현직 임직원의 스톡옵션 취소해야”
삼성, ‘모르쇠’로 일관 …오히려 비리가 드러난 임직원들 승진시키거나 돈까지 쥐어줘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이끄는 경제개혁연대(이하 개혁연대)가 삼성 개혁 이행을 위한 전방위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개혁연대는 지난 9일 삼성화재와 삼성증권 이사회에 공문을 보내 사법부와 금융감독당국을 통해 법령위반 행위가 확인된 전·현직 임원에 대해 스톡옵션 부여를 취소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삼성 스톡옵션 부여 취소 촉구
개혁연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1일 대법원은 삼성특검 수사와 관련해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미지급보험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던 삼성화재의 황태선 전 대표이사와 해당 횡령사건 관련 전산자료를 삭제한 혐의로 기소됐던 김승언 전 전무에 대해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원심을 확정했다.
황 전 대표이사는 2000년 5월 30일 삼성화재로부터 4만주의 스톡옵션을 부여받아 2009년 3월 31일 현재 18,166주의 미행사 잔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김 전 전무 역시 2001년 9월 6일 교부받은 삼성화재의 스톡옵션 9,000주 가운데 7,899주의 미행사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개혁연대는 사법부에 의해 유죄가 확정된 삼성화재 전직 임원 및 금융감독당국에 의해 법령위반행위가 확인된 삼성증권 임직원의 경우 회사에 손해를 입힌 임무해태 행위로 스톡옵션 부여 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고, 각사의 정관 혹은 스톡옵션 계약서에 규정된 스톡옵션 취소규정에 근거하여 이사회 차원에서 취소를 결의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이에 대한 이사회의 답변까지 요청했다.
개혁연대가 삼성의 스톡옵션 취소 요청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6월에도 개혁연대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증권, 삼성화재, 제일모직, 제일기획, 호텔신라, 삼성전기, 삼성테크윈, 에스원, 삼성정밀화학, 삼성중공업, 삼성카드, 삼성SDI 등 삼성그룹 14개 계열사 이사회에 공문을 보내 해당 회사의 스톡옵션을 교부받은 임직원 가운데 삼성특검의 수사결과 기소된 7명 및 차명계좌 명의자로 추정되는 173명 등 총 176명(이 중 4명은 중복)에 대해 이사회 결의를 통해 스톡옵션을 취소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당시에도 개혁연대는 각 계열사에 보낸 공문을 통해, 스톡옵션을 부여받은 전·현직 임원들이 배임혐의 등으로 기소가 되거나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해 명의를 빌려주는 등의 법령위반 행위를 한 것은 경영진의 유인구조를 회사의 이익과 일치시키는 장기성과보상제도인 스톡옵션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혁연대는 특히 총수일가의 사익을 위해 현행법을 위반한 임직원의 행위는 회사의 신뢰도를 떨어뜨림으로써 막대한 손해를 입힌 임무해태 행위일 뿐 아니라, 회사와 총수일가의 이해가 상호 충돌하는 상황에서 해당 임원들이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신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부여된 스톡옵션은 즉각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월29일 재벌전문인터넷사이트인 ‘재벌닷컴’은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의 스톡옵션 주식 보유 내역을 조사한 결과, 지난 6월26일 종가 기준으로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 김인주 전 삼성전자 사장 등 삼성전자 전ㆍ현직 임원 10명의 스톡옵션 행사시 평가차익이 각각 100억 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학수 전 부회장의 경우 스톡옵션으로 받은 18만 9천 주의 당시 주가는 445억 원이였지만, 현 시가는 1천129억 원으로 평가차익만 무려 684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재계 스톡옵션 평가차익 상위 117위까지가 모두 삼성그룹 전 현직 임원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비리 드러난 임직원들 승진
이러함에도 불구, 삼성은 개혁연대의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쇄신 약속을 한 날로부터 퇴보되고 있는 작태마저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삼성특검 수사에서 비리가 드러났던 임직원들이 오히려 승진하거나 자리를 지킨 것이다.
차명계좌 거래 사실이 드러나 일선에서 퇴진했던 배호원 전 삼성증권 사장은 삼성정밀화학 사장으로 복귀했으며 유석렬 전 삼성카드 사장은 삼성토탈로 옮기면서 사장직을 유지했다. 또, 삼성의 로비를 총괄했다는 혐의를 받았던 장충기 전 삼성물산 부사장은 삼성물산 사장 겸 삼성브랜드관리위원장으로 승진까지 했다.
이럴 볼 때 1년 전 삼성의 약속은 단순한 비난 여론을 피하기 위한 임시 면피용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같은 지적에도 불구 여전히 삼성은 눈을 감고, 입을 닫고, 귀를 막은 채로 시종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계산방식 오류로 ‘유죄다’
때문에 개혁연대는 전방위 맹공을 펼치고 있다. 개혁연대는 스톡옵션 취소 요구 외에도 지난 5월에 있었던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서는 개혁연대뿐만 아니라 민변, 민주법연, 참여연대까지 동참했다. 이들은 지난 7일 ‘삼성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과 남은 과제 : SDS 파기환송심 쟁점과 삼성 소유지배구조 변화 전망’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갖고 삼성의 개혁을 강하게 촉구했다.
이날 개혁연대는 “삼성SDS 1심 재판부 주식평가 기준에 오류가 있었다”며 “이를 바로 잡을 경우 회사 손실액이 100억원을 넘어 유죄가 된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특검이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적정가액이라고 주장한 5만5천원(당시 장외실거래가)을 배척하고, BW의 적정가격을 주당 9,740원으로 판단해 배임액수가 최대 44억 원에 불과하므로 공소시효가 10년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 면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SDS 주식가치 산정에 있어서 수익가치법이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판단하면서도 상증법상 보충적 평가방법으로 주가를 산정해 자산가치와 미래수익가치를 산술평균하는 방법으로 주식가치를 계산했다.
또, 수익가치의 기준점을 기업회계기준이 아닌 상증세법상의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함으로써 주당 순손익가치를 저평가했으며 이에 따라 주식가치도 저평가됐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의 이득액을 계산하면서 신주인수권부사채의 발행 당시 적정주식가치와 신주인수가액의 차이가 아닌 주식희석화 효과를 고려함으로써 이득액을 저평가했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할 경우 이재용 씨 등의 이득액은 최고 161억원으로 50억원을 초과하게 된다.
결국 삼성SDS사건에 관련된 이건희 전 회장과 이학수 전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 삼성 구조조정본부 핵심임원들이 모두 유죄가 되는 것으로 이재용 전무로의 삼성 경영권 승계과정에 대해 최초의 유죄판결이 나오게 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1심 재판부는 주식가치를 계산하면서 잘못된 기준을 적용한 것은 물론 신주발행으로 주식가치가 희석되는 것까지 포함시켜 이재용씨 등의 이득액을 고의로 축소시켰다”며 “계산을 바로잡고, 대법원 지적대로 주식가치 희석화 효과를 반영하지 않으면, 이재용씨 등의 이득액은 적게는 104억원, 많게는 161억원으로 늘어나 모두 특경가법 적용대상이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