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성관 후보자 아파트 매입, 가족 호화 생활 등 각종 의혹 봇물...결국 사퇴 표명
이번 사태로 MB 정권 ‘친 서민’ 행보 큰 타격 받을 듯...靑 자성의 목소리 나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달 21일 공석 중인 검찰총장에 천성관 서울 지검장을 내정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천 신임 검찰총장이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맞게 검찰 분위기를 일신하고 법질서 확립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바탕으로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미래지향적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섬기는 리더십을 갖춘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도덕성 문제 등이 도마 위로 오르면서 그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고 정치권은 측근정치와 공안통치를 계속하겠다는 신호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결국 천 후보자는 사퇴했다.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2003년 이후 총장 임명 전에 사퇴한 경우는 천 후보자가 처음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정치권의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민심과 동떨어진 인사”
민주당은 측근정치와 공안통치를 계속하겠다는 신호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정세균 대표는 다음날인 22일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국세청장은 최측근을 임명하고 검찰총장은 대표적인 공안통을 임명했다”고 힐난했다.
그는 이어 “이는 국정쇄신과 인사쇄신을 외면하겠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근원적 처방의 한 단면이 이런 것이라면 국민들에게는 근원적 절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또 “국민의 요구는 명확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하고 국정기조를 전환하라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은 먼저 국민적 요구를 수용하고 다음에 제도 개선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결국 지난 12일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비리의혹을 앞세워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국정쇄신과 제대로 된 인사청문회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다”며 “절대로 하지 말라는 공안인사, 측근인사의 표본”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용산참사와 MBC PD수첩의 엉터리 수사책임자였다는 이유만으로 민심과 너무 동떨어진 인사”라며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수상한 돈거래, 아들 병역의혹, 부인의 고급차리스 등 불거진 의혹만으로도 이미 자격상실”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민주당은 인사청문회를 통해 천 내정자의 모든 의혹을 철저히 추궁하고 밝혀낼 것”이라며 6월 13일로 예정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결의를 다졌다.
드디어 인사청문회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천성관 신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각종 의혹이 봇물처럼 쏟아져 임명동의안 통과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인사청문회 전부터 제기된 고가 아파트 매입 과정의 의혹 뿐 아니라 당시 거액의 돈을 빌려준 박 모씨와 해외 골프여행 및 명품 구입, 동생 관련회사 봐주기 수사 의혹, 고급차 리스 이용 등 의혹이 봇물처럼 이어졌지만 천 후보자는 ‘모르쇠’로 일관해 빈축을 샀다.
각종 의혹들 ‘모르쇠’로 일관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강남 고가 아파트 구매 자금 출처와 고급차 무상 사용 의혹을 비롯해 부인과 자식들의 호화, 과소비 의혹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천 후보자는 이날 핵심 의혹에 대해 “잘 모르겠다”로 일관했으며, 의원들의 자료제출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고가아파트 구매자금과 고급차 리스 의혹도 풀리지 않고 있다. 천 후보자가 지난 4월 총재산(14억6000만원)의 2배가 되는 28억7500만원을 주고 산 강남 신사동 아파트(213㎡·65평) 구매를 둘러싼 의혹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아파트를 살 당시 지인인 박아무개씨에게 15억5000만원, 동생 천성훈씨에게 5억원을 빌렸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천 후보자에게 5억원을 빌려준 동생은 서울시 납세 자료에 재산이 없어 세금을 못 낸 것으로 돼 있다”며 5억원의 출처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천 후보자는 “잘 모르겠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또 박씨와의 관계도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천 후보는 “10년 전쯤 아는 분 소개로 만났고 자주 만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우윤근 민주당 의원은 “자주 어울리지도 않는 사람에게 15억여원을 빌린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따져 물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2004년 8월9일 박아무개씨와 같이 골프채를 갖고 출국했다가 같이 들어오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 거기에 각종 의혹의 핵심 관계자로 지목된 박 씨가 이날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은 채 일본으로 출국해 여야 합의에 의한 동행명령 집행마저 무산되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또 천 후보자는 지난달 21일 30년 지기라는 석아무개씨가 운영하는 건축업체인 ㅅ사로부터 이 차의 리스 승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차가 승계 계약 전부터 천 후보자의 아파트 주차 대장에 등록된 것으로 드러나 석씨의 차를 임의로 무상 사용하다가 뒤늦게 리스 계약을 맺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이에 대해 천 후보자는 “친구 석씨가 마침 회사 차를 팔려고 했고, 우리 집에 원래 있던 차였다. 또 석씨의 아들이 집 근처를 자주 드나들어 우리 아파트 차량으로 등록해 뒀다”고 답했다. 그러나 “석씨 아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중국에 있었는데 왜 그 차량이 당시 청담동에서 신호 위반으로 걸렸느냐”(이춘석 민주당 의원)는 천 후보자 가족의 차량 사용을 의심하는 물음에 천 후보자는 “경위를 모르겠다”고 했다.
이상한 가족?
천 후보자의 부인 김영주씨의 무더기 명품 구입 전력도 도마위에 올랐다. 박지원 의원은 “후보자의 부인은 별다른 소득이 없는데도 2008년 1월부터 5월 사이 세 번의 국외여행을 다녀왔고 그때마다 3000달러, 3000달러, 100달러의 고가 명품을 구입해 왔다. 그런데 2008년 2월10일엔 (천 후보자에게 15억5000만원을 빌려준) 박경재씨가 똑같이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3000달러(약 390만원)짜리 샤넬 핸드백을 샀다”고 말했다. 이에 천 후보자는 “집사람이 그런 것을 산 것은 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또 “부인 김씨가 지난 1월16일 호텔신라 면세점에서 560달러(약 72만원)짜리 프라다 가방과 621달러(약 80만원)짜리 셀린느 스웨터를 사는 등 2004년 8월부터 인천공항 면세점과 롯데 인천공항점 등에서 총 27차례에 걸쳐 1400여만원어치의 고급 명품을 샀다”고 관세청에서 입수한 자료를 공개했다.
이춘석 의원은 “부인 김씨가 가입한 자스민 클럽은 현대백화점에서 연간 3500만원 이상 쇼핑을 해야 가입 자격이 있다”며 호화 쇼핑을 추궁했다. 이에 대해 천 후보자는 “처에게 물어보니 카드는 제 윗동서 카드인데 처갓집의 다섯 자매들이 같이 쓰는 카드라고 했다”고 답했다.
천 후보자 아들 결혼 장소도 의원들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5월 국내 최고 특급 호화 호텔에서 치른 아들의 결혼식을 “조그만 교외에서 조용히 했다”고 둘러대다 웃음거리가 됐다. 박 의원이 “거기(결혼식 장소)가 6성급 워커힐 더블유 호텔 야외 아니냐. 거기 호화호텔이죠?”라고 추궁하자 천 후보자는 당황한 듯 “예, 야외에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워커힐 더블유 호텔 야외 결혼식장은 애스톤 하우스와 제이드 가든이 있다. 심은하·김희선씨 등의 결혼식으로 유명한 애스톤 하우스의 이용료는 하객 200명 기준으로 8000만원가량 하며, 제이드 가든은 1인당 식사비가 5만5000원부터다.
결국 천 후보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됐던 각종 도덕성 논란과 개인 비리 의혹을 넘지 못하고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지 23일 만인 지난 14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천 후보자는 조은석 대검찰청 대변인을 통해 “이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공직 후보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이로서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2003년 이후 총장 후보자가 임명 전에 자진 사퇴한 경우는 천 후보자가 처음이다.
청와대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천 후보자의 사의를 수용할 것으로 안다”며 “대통령은 고위 공직자를 지향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처신에 모범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청문회를 지켜본 일선 검찰은 침울하다. 조직이 일찍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은 간절하지만, 쏟아지는 의혹에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청문회를 지켜본 일선 검찰청의 한 간부는 “솔직히 어떤 검사도 저런 식의 해명은 믿지 않는다. 창피하다”고 말했다.
대검의 한 간부도 “첫 청문회 대상인 송광수 전 총장을 포함해 누구도 이런 식의 의혹에 휩싸인 적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검찰 총수가 조직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조직의 발목을 잡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목소리다.
千 사퇴 정치권 파장은 계속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14일 전격 사퇴했지만 정치권의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문제점을 집중 비난하고 나섰고, 한나라당도 일단 천 후보자가 자진사퇴를 하며 한 시름 놓았다는 모습이지만 청와대 민정라인 문책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하는 등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여야 정치권은 이번 천 후보자 낙마가 쟁점법안 처리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향후 전략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한나라당내 여의도 연구소 소장인 진수희 의원은 지난 15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당에서 천성관 후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사전달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청와대 인사스크린이 유감스럽고 민정라인에 문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진 의원은 “청와대 직제를 개편해서라도 인사전담부서를 별도로 두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광근 사무총장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가 되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 “대통령의 서민행보 등 국정운영에서 본인이 사퇴를 결심하면서 결과를 빨리 낸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청와대 인사시스템을 맹비난했다. 정세균 대표는 “인사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인사검증 참모진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법사위 간사인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도 “천성관 후보 본인 문제도 심각하지만 청와대에서 누가 추천하고 검증했는지 너무도 중대한 사태”라며 “차제에 청와대에 외부인이 참여하는 인사검증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천 후보자를 누가 추천했는지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검찰과 청와대 민정라인의 실무진은 권재진 당시 서울고검장이 유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정식 루트가 아닌 비선 라인이 작동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던 것은 그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검찰총장 인사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권 고검장은 능력과 검찰 내 신망 등에서 무난하지만 대구경북(TK) 출신이라는 게 큰 약점이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의 경북고 후배이기 때문에 권 고검장의 총장 임명은 곧 김 장관의 교체를 전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이는 개각 문제로 번질 수 있었다.
그런 차에 누군가 천성관 아이디어를 냈고 이 대통령도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인사 발표 후 그 ‘누군가’를 놓고 이런저런 추측성 얘기가 난무했다. 천 후보자가 지방 근무 시절 알게 된 청와대 고위 인사가 추천했다는 설이 있지만 확인은 되지 않는다.
천 후보자와 먼 혈연관계에 있는 이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 천거했다는 말도 있지만 양측의 연결고리가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검찰의 전직 고위 인사는 “항간에는 권력기관의 고위 인사가 천성관 카드를 기획했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고도 전했다. 일각에서는 천 후보자가 검찰 출신으로는 드물게 워낙 발이 넓어 복수의 경로를 통해 추천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누가 이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확실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