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부분 개헌에 긍정적 반응...하지만 미디어법 후폭풍으로 가시밭길 예상
정치 전문가 대체적으로 개헌 논의 회의적, “대통령의 협조가 있어야 할 것”
제헌절 61주년을 맞아 지난 17일 김형오 국회의장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개헌논의를 정식적으로 공론화 했다. 김 의장은 이 자리에서 “수많은 국민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탄생한 87년 제9차 개헌의 기본 정신을 계승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새 지평을 여는 21세기 헌번을 재탄생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김 의장의 개헌 의지에 여야 모두 전반적으로 개헌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고 있지만 현재 혼란한 정국 상황과 각 정당마다 개헌에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어 쉽지 않는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김형오의 고군분투
김형오 국회의장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61주년 제헌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개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자 역사적 소명”이라며 “여야 정치권과 국민 여러분께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와 공론화를 정식 제안한다”고 말했다. 특히 “헌법 개정을 위한 국회 개헌특별위원회를 가급적 빨리 구성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본격 논의를 시작해 달라” 고 강조했다.
그는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18대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개헌에 긍정적이다. 또한 최근 개헌관련 여론조사에서 국민 62.1%가 개헌에 찬성한다”고 전한 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온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한 역사가 이어져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단적인 선택이 더해지면서 ‘대통령제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김 의장이 이날 개헌 공론화를 제기한 것은 오늘일이 아니었다. 그는 작년 국회의장으로 취임 당시 취임 연설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여야 의원들에게 천명 한 바 있다. 하지만 MB정부 집권 초기였던 만큼 청와대와 여당 내 친이계의 반발로 수면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답보상태를 이어갔다. 측근에 의하면 김 의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개헌 공론화를 위해 철저한 준비를 계속해 왔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김 의장은 취임 직후 의장 직속 ‘헌법연구 자문위원회’(위원장 김종인)를 만들어 약 1년 정도 개헌 논의 착수에 들어갔다. 국회의장실 관계자에 따르면 “위원회에서 준비한 개헌안이 지난 2월 경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김 의장이 의원들에게 발표하려고 했으나 여야의 국회 파행으로 얘기치 않는 변수가 생겨 뜻을 미루게 됐는데 때 마침 최근 제헌절을 맞아 기회를 엿보게 됐다”면서 “현재 미디어법 등으로 또다시 여야의 대치로 개헌론이 잠잠해져 있지만 이 문제가 해결 되면 본격적으로 김 의장 주도아래 착수 이행에 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주간동아가 입수한 헌법자문위 최종보고서를 살펴보면 국회가 추구해야할 개헌 개편은 정부보다 내각에 더 많은 권한을 주고 특히 대통령의 권한 축소 방안이 핵심이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권력구조 개편 방향으로 미국식 대통령제와 권력분점형 정부제 두 가지를 가장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 미국식 대통령제는 3권 분립이 분명하고 4년 중임제에 정·부통령제를 가미한 권력구조 형태다. 권력분점형 정부제는 내각제의 한 형태인 이원정부제보다 내각에 더 많은 권한을 주고 의회 권한도 강화된 독특한 권력구조 형태다.

국민62% 개헌동의 靑관섭마?
김 의장은 지난 17일 제헌절 기념사 연설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유인 즉 개헌과 관련해 ‘청와대의 부정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의장은 “개헌은 국회가 하는 것이지, 청와대가 나설 일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어 그는 “내 임기 내에 꼭 관철시키겠다. 앞으로 눈여겨봐라. 제헌절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불을 지필 것이다”라고 강한 의지를 표출했다.
일각에선 중립적 위치 인 김 의장이 입법기관의 수장으로서 지위와 명분을 최대한 발휘해 청와대를 견제하고 국회 위상을 격상 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개헌과 관련한 여론조사에서 대다수 국민들이 개헌 개편에 찬성의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이 또한 김 의장의 개헌 의지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시사저널>가 실시한 ·미디어리서치 공동 국민 여론조사에서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62.1%가 ‘필요하다’라고 답해 개헌의 현실성을 높여주고 있다. 특히 ‘매우 필요하다’라는 답변이 19.0%나 차치했다. 반면 ‘필요하지 않다’라는 부정적 반응은 통틀어 25.4%로 나타났다. 또 ‘전혀 필요하지 않다’라는 응답은 4.7%로 조사됐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개헌 공론화에 나서야 한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체의 68.0%가 ‘개헌 문제는 국회에 맡겨야 한다’라고 답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라고 답한 이는 24.8%에 그쳤다.
이처럼 김 의장이 국회 주도아래 개헌 논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치전문가들은 계속되는 여야 대치 국면과 청와대가 부정적 반응을 보여 개헌 논의가 제대로 성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서울 모 대학교 이아무개 정치학과 교수는 “개헌 성사는 한국 정치적 본질상 국회보다도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통령의 협조가 필요하다”면서 “현재 국민 여론이 개헌에 찬성하고 있지만 MB정권이 아직 집권 초기이고 산재된 현안이 우선이기 때문에 섣불리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분석 했다.
또한 정치권 안팎에선 김 의장의 직권상정으로 난투극 속에 미디어법이 통과된 이상, 야당의 표적은 단연코 김 의장이기 때문에 과연 개헌안 마련에 협조할 지가 회의적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파국 국면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김 의장이 개헌안에 대한 의지를 계속해서 천명한다며 그 파급 효과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 정략적 이용 경계
김 의장의 개헌 논의와 관련해 정치권은 개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나 전략적인 셈법으로 접근 했을 때 민감한 사안이므로 예의주시하고 있다. 먼저 앞서 말했듯이 청와대로선 꺼려하는 눈치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국회는 다양한 민의가 수렴되는 장인 만큼 개헌에 대한 논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며 “다만 국가 100년 대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고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단초를 달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 또한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나라에 혼선을 가져올 가능성 있다”며 “MB정부가 집권 초기인 단계에서 권력 구조화의 변화를 요구하는 개헌 논의는 사실상 차기 후보의 대거 등장으로 현 대통령의 리더쉽이 퇴색되지 않을 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사안은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 있다”고 극도의 말을 아꼈다.
민주당 쪽에선 개헌 성사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이를 여권이 정략적으로 이용할지 않을까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과 여당의 정략적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며 “여권이 국정 실패와 정국 혼란에 대한 국민 비난을 다른 곳으로 끌기 위해 개헌을 악용하려는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 했다.
한나라당 내부도 개헌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내 의원들 대부분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의 권력집중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국회의 권한을 높이자는 내각제의 목소리가 주를 잇고 있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선 차기 대권후보 입지를 굳히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 4년 중임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친이계 쪽에선 뚜렷한 대권 후보가 없는 이상, 중임제든 내각제든 대통령의 권력을 국회로 분산시켜 절대 권력이 없는 박 전 대표로 대통령으로 세우고 내각을 친이계가 지배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지 않겠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