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문외한은 즉각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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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새 인권위원장

인권 단체 “인권 전문적 지식, 경험 없는 그는 ‘듣보잡’...” 거센 항의 성토 봇물
종증조부 반역자 친일파 708인 명단에...“친일후손이 어찌 활개를 칠 수 있나”

국가인권위원장의 취임식이 난장판으로 변했다. 지난 7월20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새 국가인권위원장에 임명된 현병철(65) 위원장의 취임식이 있던 날이다 이날 현 위원장이 취임사를 읽는 동안 식장 뒤편에 있던 인권단체 회원 20여명은 “사퇴하는 게 유일한 길이다” “인권 문외한은 즉각 물러나라”고 외쳤다. 이유는 현 위원장이 인권활동과는 ‘거리 먼’ 인물, 즉 인권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이 전혀 없는 ‘관리형’ 인물 이라는 것이다. 현 위원장 역시 “학자로서 인권을 공부했지만 인권위원회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고 새 인원위원장에 내정될 당시 한 말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현 위원장 내정 사실을 알리면서 “대학장·학회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보여준 균형감각과 합리적인 조직관리 능력은 인권위 현안을 해결하고 조직을 안정시켜 인권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인권위 안팎에선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거세다.

‘인권 모르는’ 현병철 인권위원장

이 대통령은 20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인권에 관해서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내외 문제에 함께 관심을 가져 달라”며 “특히 북한의 인권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그동안 “인권위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소홀히 다룬다”고 비판해온 뉴라이트 등 보수 진영의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이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인권을 챙기는 데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우리도 가난했던 때 인권문제로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인권은 그 자체로 존엄한 것이지 선후를 따질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선배경에 대해서는 “대학장, 학회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보여준 균형감각과 합리적인 조직관리 능력은 인권위 현안을 해결하고 조직을 안정시켜 인권선진국으로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단체들로 구성된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은 “청와대는 졸속적인 국가인권위원장 내정을 철회하고 공개적인 후보 선정위원회를 구성하라”며 현 내정자의 임명을 반대했다.

당초 7월 17일로 예정된 현 위원장의 취임식은 인권단체의 반대로 20일로 연기됐다. 그러나 이날 역시 인권단체의 강한 반대 시위 속에 취임식이 진행됐다. 행사는 위원장 취임사 낭독만 하고 15분 만에 끝났다. 서울 중구 무교동 인권위 건물내에서 농성 중이던 인권단체 회원들은 “우리는 현 위원장을 인정 못한다”고 선언했다.

현 위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외부의 어떤 압력과 간섭도 받지 않고 오로지 국민들의 인권 향상이라는 일에만 매진해야 한다는 국가인권기구의 정신은 독립성이라는 원칙에 구현돼 있다”며 “그 원칙을 다시 확인하면서 앞으로도 확고하게 지켜나갈 것임을 밝힌다”고 말했다.

이어 “위원회 조직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상처와 고통을 당한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그 상처를 씻고 조직이 다시 활력을 찾도록 하는 데도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현 위원장이 취임사를 읽는 동안 식장 뒤편에 있던 인권단체 회원 20여명이 “사퇴하는 게 유일한 길이다” “인권 문외한은 즉각 물러나라”고 외쳤다. 이들은 위원장 쪽으로 접근하면서 저지하는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회원들은 “직원들은 왜 침묵하느냐” “이런 위원장 밑에서 일하겠는가”라며 직원들과 승강이를 벌였다. 다른 인권위 직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현장을 지켜봤다.

듣도 보도 못한 인물

앞서 경찰은 인권위 입구와 주변 등에 3개 중대 200여명을 배치하고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출입을 막았다.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소속 활동가들은 오후 1시30분 취임 저지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권위 진입을 시도하면서 경찰과 충돌했다.

공동행동은 “이번에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을 인권위원장 자리에 앉히려 하고 있다. 국제적 기준이나 인권단체들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은 고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과연 위원장 자격을 규정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읽어보기나 했는지 의문”이라며 거듭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인권·시민단체들은 인권 관련 연구 업적이나 활동경력이 전혀 없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들고 있다. 대학 학장 등 행정 경험이 있긴 하지만 인권위 수장으로서 필요한 자질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5조 2항에 ‘위원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규정한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개인의 능력을 따지지 않고 개인의 경력과 이력만 놓고 비판하는 자체가 이념편향적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인권 관련 활동 유무를 따져 인권수호 의지를 얘기한다는 자체가 인권 침해적인 발상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인권위를 사실상 ‘접수’한 인권·시민단체가 인권을 내세워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한 보수단체 관계자는 “인권은 이념을 떠나 보편적인 것이고 조직은 어떤 사람이 수장이 되든 개인 특성이 아니라 조직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 위원장의 자질 논란은 또 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지난 7월18일자 보도를 통해 현 위원장의 논문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불거진 논문표절 의혹의 핵심은 지금까지 발표한 21편의 논문 중 2002년에 쓴 두 개의 논문이 1998년에 발표한 논문을 나눠 베낀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2002년 한양대 법학연구회 학술지 ‘법학논총’에 실은 ‘무효에 있어서의 대항력의 문제’, ‘무효와 취소의 이중효(二重效)와 상대적 무효’ 논문 서문이 1998년 한국비교사법학회 학술지 ‘비교사법’ 제9호에 실린 ‘무효’라는 논문 서문과 첫 문단을 제외하고 네 문단이 같다.

본론 부분도 12개 문장만 새로 썼을 뿐 나머지는 대부분 같다. 그러나 출처나 인용 표시가 없어 학술진흥재단 ‘논문표절 가이드라인’상 중복게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부실논문’도 여럿있다. 1991년 <법학논총>에 실은 ‘급부부당이득반환청구법’ 또한 1990년 성균관대 박사학위 논문을 발췌·요약한 것이다. 학위논문의 경우 1회에 한해 발췌·요약이 가능해 자기표절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새로운 연구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1995년 교내연구비를 지원받아 <법학논총>에 실은 ‘전용물 소권’에 대한 논문도 1989년 같은 학술지에 실은 ‘부당이득에 있어서의 유형론’에 실린 ‘불도저 사례’(4쪽 분량)를 11쪽 분량으로 늘려 썼다.

한 법대 교수는 “30년 연구한 학자의 논문이 21편이라면 적은 것인데, 자기복제 논문 등이 많다면 사실상 학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개인 차가 있지만, 보통 법대 교수들은 1년에 최소한 1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선 자신의 이전 저작물을 인용하더라도 출처를 표기하지 않았을 때는 표절로 보고 있다. 똑같은 논문을 이중·중복 게재해 학문 성과를 부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연구재단(옛 학술진흥재단)의 의뢰를 받아 ‘표절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한 기초연구’에 참여한 김형순 교수(인하대 신소재공학부)는 “자신의 논문이라고 해도 기존 논문에서 인용했다는 표현이 없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을동 “친일 거물 후손”의혹 제기

백야 김좌진 장군의 손녀로 유명한 김을동(친박연대) 의원이 20일 현 정부의 ‘친일 후손 인사’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해 파장이 일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공식 임명장을 받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을 비롯,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이건무 문화재청장 등이 모두 “친일 거물의 후손”이란 의혹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이날 개인 성명을 통해 “친일파 후손이 활개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도 되는 것인지, 현 정부의 역사인식 부재에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고 성토했다.

특히 현 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해 “그의 종증조부인 현준호는 광복회와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공동으로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올라있는 친일 경력자의 후손”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이 지적한 현준호는 호남은행을 경영했던 당대의 대부호로 일제 시대 전남참사, 전남평의회 의원, 중추원 참의 등 요직을 두루 거쳤고, 학도병 지원을 독려하는 강연반에도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38년 설치된 조선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에도 참여했다. 당시 임명된 위원 97명 중조선인은 현준호를 포함한 11명으로, 여기에는 김연수 경성방직 사장, 박영철 중추원 참의 등 거물급 친일파들이 포함돼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올해 현준호의 땅 3만2000㎡(시가 10억 원)를 국가에 귀속시키기도 했다.

김 의원은 “명박한 반민족 행위가 드러났음에도 그 후손에게 국가인권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기는 것은 현 정부에게 역사인식과 국가관, 민족관을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이라면서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고 비난했다.

행정능력 인정… 인권 경력은 全無

행정능력은 인정받았지만 인권 경력이 전혀 없는 현 위원장. 애초 후보군에 거론되지도 않았던 현 위원장의 내정에 대해 인권위 안팎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고 인권 단체들은 “부적절한 인사”라며 내정 철회를 강력히 촉구했다.

재산ㆍ노동법 전문가인 현 내정자는 한양대 법대 학장 등 대학 내 여러 보직을 거치며 행정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인권과 관련된 활동이나 연구 실적은 알려진 게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인권위는 이날 현 위원장이 내정 될 당시 성향과 경력을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선 그동안 물망에 오르던 보수단체 출신들보다야 다행스러운 인사”라면서도 “인권 관련 활동을 한 전력이 없는 분이라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당혹해 했다.

인권 단체들은 이번 인사가 인권위원 기준으로 ‘인권 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명시한 국가인권위법에 반하는 인사라고 반발했다.

이를 의식한 듯 현 위원장은 내정 당시 “정부나 진보ㆍ보수 진영 어디에도 관련이 없어 발탁된 것 같다”면서 “인권운동 단체 등을 많이 만나 법학자로서 최고의 가치인 정의와 인권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인권위 안팎에서의 반발 외에도 향후 현 위원장이 풀어야 할 숙제는 적지 않다. 우선 조직 축소와 안경환 전 위원장 조기 사퇴 등으로 어수선한 인권위 내부를 추스려야 한다. 또 ‘좌편향’ 행보 개혁을 주문하는 보수 진영과 조직의 독립성 강화를 요구하는 진보 세력 사이에서 인권위의 향로를 재정립하는 것도 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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