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격차이로 갈라섰다”
“우리는 성격차이로 갈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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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과 동거생활 청산한 ‘KT노조’의 속사정
3만여명의 조합원으로 이루어진 KT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KT노조는 지난 17일 상급단체 탈퇴여부를 결정하는 조합원 찬반 투표를 실시해 압도적인 찬성표로 민주노총 탈퇴를 가결한 것. 이에 노동계는 압도적인 찬성표에 한번 놀라고 민주노총의 ‘선봉대’였던 KT노조의 탈퇴에 두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결과를 놓고 노동계는 민주노총도 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안하고 있다. 이에 본지가 민주노총과 KT노조가 갈라선 배경은 무엇이며 향후 민주노총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에 대해 취재해봤다.

KT노동조합(이하 KT노조)가 상급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의 탈퇴를 결정했다.



민주노총 창립의 선봉장… 한국노총 탈퇴 후 민주노총에 가입
민영화되며 노조에도 새바람…‘先교섭, 後투쟁 노선’으로 변화

지난 17일 민주노총을 탈퇴 여부를 결정하는 조합원찬반투표에서 찬성 94.9%라는 압도적인 찬성률이라는 결과를 받았기 때문이다. KT노조는 3만명에 가까운 조합원으로 민주노총 산하의 IT산업연맹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조직이어서 KT노조의 탈퇴를 둘러싸고 민주노총도 향후 진로를 크게 고심해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 창립에 선봉

KT(전 한국통신) 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한 것은 민주노총이 창립되면서부터다. 1995년 11월11일 민주노총은 창립하는 과정에서 866개의 가맹이 참여했고 41만여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했고 약 3만여명을 가진 KT노조가 합류한 것이다.

당시 KT노조는 한국노총과의 불협화음을 겪고 있었다. 한국노총의 전반적인 운영이 같은 부분에서 조합원들의 요구와 정서를 만족시켜주지 못했고 당시는 민주화 바람이 상당히 거세던 시절이라 한국노총을 떠나 민주노총에 동참했다.

당시 권영길 씨가 준비위원장을 맞고 있던 민주노총은 어려운 자금난으로 인해 조합원 1인당 1만원의 민주노총 건설기금을 벌이고 있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거대 KT노조의 참여는 민주노총으로써는 누구보다 반가운 동지였다. 한마디로 KT노조의 가세는 민주노총 출범에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후 KT노조는 민주노총의 강력한 투쟁에 가장 앞장 선 이른바 ‘선봉장’으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민주노총의 갖가지 ‘민주화 투쟁’에 동조했고 많은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지난 2000년에는 한국 통신의 인원감축에 대해 사측과 투쟁을 벌였으며 당시 한국통신노조위원장과 조합원들은 명동성당을 점거해 무기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KT노조와 민주노총 간의 ‘아름다운 관계’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지난 2002년 8월 한국통신이 민영화되어 KT로 이름이 바뀌자 이에 따라 KT노조에도 ‘새바람’이 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민영화 이후 KT노조는 정부 차원의 대규모 인력 감축이라는 ‘공포심’이 사라졌고 이에 따라 거리나 혹은 건물을 점거하는 투쟁 대신 사측과 대화를 통해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풍토가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풍토는 민영화 직후 있었던 위원장 후보 선거에서 지재식 후보가 이른바 ‘선(先)교섭, 후(後)투쟁’ 노선을 내새워 당선되며 더욱 확고히 자리 잡았다.

민주노총과 KT노조 내부의 다른 조직인 민주동지회 소속 노조원들은 ‘지재식 후보는 어용 노조’라고 주장하며 다른 후보자를 지지했으나 KT사원들의 생각은 변화를 꿈꾸는 지 후보의 생각과 일치해 60%라는 지지를 얻어 위원장에 당선됐다.

KT노조의 한 관계자는 “그 당시부터 이미 KT노조원들은 무리한 정치적 관심과 과격한 거리투쟁에 신물이 날만큼 지쳐 있었다”고 말했다. ‘선봉장’의 생각이 변하니 민주노총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성격차이로 인한 ‘파경’


▲상급단체 탈퇴안에 대해 두표하고 있는 KT노조원들

온건해진 KT노조는 민주노총 내에서도 ‘온건파집행부’인 이수호·이석행 지도부 출범에 일조했다. KT 노조의 허진 교육선전실장에 따르면 선거 당시 KT노조 출신의 후보자들도 있었지만 이수호 전 위원자의 이념이나 운동 방향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무리한 정치투쟁에 조합원들 질색… 95% 지지로 탈퇴안 가결
노동계, “이제 노동조합도 변화해야할 때”…‘제3의 물결’ 예측


일련의 이러한 사건들 이후 KT노조와 민주노총사이에는 갈등이 지속적으로 양산됐다. 민주노총 측은 연맹차원의 집회나 파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은 KT노조에 불만이 있었고 KT노조는 조합원이 원하지 않는 집회나 파업을 강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양쪽의 상반된 불만은 2005년 민주노총 대의원회의 때 폭발했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온 KT노조 대의원들을 민주노총 대의원들이 입장을 저지하기 위해 회의장을 가로막는 등의 사건이 있었던 것.

KT노조는 지난 10일 새로운 전략과 비전을 가진 ‘희망의 노동운동’을 만들고 위기에 봉착한 한국 통신 산업 노동자들과 함께 희망의 돌파구를 열어가지 위해 민주노총 탈퇴를 위한 찬반투표를 실시한다고 결정했다.

KT노조의 허진 교육선전실장은 “민주노총 탈퇴건은 이미 6년전부터 자주 등장한 단골메뉴”라며 “매년 대의원회의때 거론되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 허 실장은 “민주노총의 조합원을 생각하지 않는 과격한 투쟁과 정치적으로 KT노조를 이용하는 것에 염증을 느낀 조합원들이 많다”며 “이로 인해 KT노조 지도부도 조합원들에게 신뢰를 많이 잃어 탈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고 사안을 표결에 부친 것”이라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일부 KT노조 조합원들 사이에서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KT노조가 회사와 상관없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나 ‘한·미 자유무억협정 반대’투쟁에도 참여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으며 사원들의 복지에 써도 모자라는데 회사 이익과 전혀 상관없는 민주노총에 연맹비를 내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KT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에도 양측의 갈등은 끝나질 않았다. 민주노총이 KT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찬반 투표 결정’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내비췄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찬반을 묻는 투표에서 민주적인 선택이 보장돼야 하지만 이미 수차례 투표 때마다 KT 사측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투표에 개입하는 의혹이 있었으며 또 작년 KT노조 위원장 선거에서도 사측의 지배개입 문제에 대한 법정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회견에 KT노조도 크게 반발하며 양측의 갈등은 극에 달았다. KT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민주노총 소속으로 15년을 함께한 동지에게 단체를 탈퇴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이 같은 ‘막장 회견을’을 할 수 있는지 경악스럽다”며 “KT노조를 자주적 단결권도 없는 ‘허수아비’ 조직으로 만들고, 사회적 역할에는 관심도 없이 제 살 길만 찾는 ‘이기주의’ 집단으로 매도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양측의 ‘성격차이’는 결국 KT노조가 찬성 95%라는 경이로운 찬성율를 기록하며 민주노총을 탈퇴한 것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대부분의 노동계는 경이로운 찬성율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함과 동시에 민주노총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

해당 사업장이나 노조원들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 정치투쟁과 함께 경기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대부분 노조의 공통 관심사는 정치적 투쟁보다는 ‘고용안정’이라는 면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쟁의 덫에서 벗어날 때인가?


▲ KT노조는 민노총의 기자회견에 반박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KT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를 두고 노동계에서는 말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KT노조는 조합원들의 수도 많았고 민주노총의 ‘창단멤버’였으며 그들의 투쟁에 누구보다 앞장 선 노조였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노사 화합을 통해서 실리추구나 조합원들의 생화문화 개선보다는 노사 갈등을 조장하고 연대에 바탕을 둔 정치투쟁 방식에 반기를 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KT노조의 허진 교육선전실장은 “누구보다 민주노총에 앞장서 봤기 때문에 조합원의 실익을 생각하지 않고 정치투쟁만을 일삼는 것이 얼마나 무리한 행동인가를 누구보다 잘안다”며 “이러한 이유로 KT노조도 조합원들에게 상당히 많은 신뢰를 잃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이제 한단계 산을 넘었으니 조합원들의 신뢰를 회복할 단계”라고 덧붙였다.

KT의 탈퇴에 앞서 지난 4월에는 조합원 810명을 거느린 인천지하철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했고, 인턴국제공항공사(조합원 700명) 등 공공부분 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5900명)와 서울메트로(9000명)도 민주노총과 결별을 선언하고 탈퇴 찬반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KT노조의 탈퇴에 이어 KT의 IT전문 자회사인 KT데이타시스템 노조도 조합원 총회를 열어 역시 압도적인 찬성으로 민주노총 탈퇴를 결정했다.

노동계 대부분은 도미노 ‘탈 민주노총’현상을 두고 강경노선과 정치투쟁 노선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당분간 이 현상을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더 나아가 이제 노조도 서비스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노조는 조합원이 중심이 중심이 돼야 하며 조합원들의 요구를 대변하지 못한다면 결국 외면 받을 것”이라며 “이제까지 노총이나 조합이 조합원을 이끌고 가는 무리한 리더적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위해 보상하는 서비스 조직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의견이 지배적인 현실에서 ‘제3의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 민주노총을 탈퇴한 인천지하철과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를 비롯한 전국 6개 지하철 노조는 오는 9월 ‘가칭 전국지하철노동조합연맹’을 결정하는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지하철 노조는 연맹을 결성한 다음 공공기업 노조로 구성된 전국지방공공기업연맹 등과 힘을 합쳐 별도의 공공기업 노총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 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이는 제3의 노총 탄생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내년부터는 복수노조가 허용된다.

그러면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기존의 상급 단체와 갈라서지 않고도 새로운 상급단체에 가입할 수 있게 되는 만큼 제2노총 설립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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