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3대 핵심 테마를 통해 제시한 중반기 국정운영 방향은 최근 언급한 ‘근원적 처방’의 1차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청와대와 각 부처는 구체적 실행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곧바로 후속 작업에 들어갔으며, 추가적 대책이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각 부처에서 올린 24개 추진과제가 이미 선별되었다. 청와대는 내부 회의에서 1차 조정한 뒤 17일 대통령주재 수석회의에서 이를 논의한다.
■ 정치개혁
◆ 선거제도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생산적인 정치문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은 국회에서도 공감하고 있다. 과거 국회에서 논의한 바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강화 △석폐율 제도 도입도 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이 영남에서 의원을 배출하고, 한나라당도 호남에서 의석을 갖는 형태의 제도라면 어떤 것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과거 노무현 정부도 정치선진화를 위해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제안한 바 있다.
다만 선거구제를 개편하면 정당에 따라 득실이 있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지역별 득표율을 본다면 한나라당이 불리하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여당이 손해를 보더라도 해야 할 일이다. 우리 희생 없이 뭔가를 개선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 선거 횟수
선거횟수 조정은 기본적으로 국회에서 결정할 일이다. 다만 이 대통령의 선거횟수 감축 제안은, 대선, 총선, 지방선거, 재보궐선거 등 잦은 선거가 국력낭비를 초래하고 있으므로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1년에 2번 치르는 재보궐선거를 1번으로 조정하더라도 국가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선거 전후해서는 상대방의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정책제시나 예산편성에서 아무래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 행정구역 개편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이명박 대통령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 회동 때 정 대표의 제안으로 합의된 사안이기도 하다. 다만 구체적 실천 방안 마련을 위한 국회 논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행정구역 개편이 선거구제 개편과 맞물려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도 갖고 있다. 그러나 선거구제 개편은 행정구역 체재가 개편된 후 정치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의할 사안이다.
이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행정구역 개편은 선진화된 행정모델을 염두에 둔 것이다. 중앙정부 권한을 강화하려 한다는 지적은 일부의 오해다.
■ 남북관계
이 대통령은 정부 출범 초기부터 견지해 온 대북정책의 기본 원칙을 유지하면서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하면 긍정적으로 호응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더 나아가 진정한 남북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는 핵문제 해결은 물론 재래식 무기 감축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쉬운 것부터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궁극적 과제인 비핵화와 재래식 무기 감축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뜻이다.
◆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
핵 포기에 상응하는 종합적인 대북협력 프로그램은 5개 분야(경제, 교육, 재정, 인프라, 생활향상)에 걸쳐 ‘비핵·개방·3000 구상’의 기본요소들을 포함하는 포괄적 접근방식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종전처럼 단순한 대북지원을 넘어 북한이 스스로 경제개발을 이룩하도록 종합적으로 협력한다는 구상이다.
DMZ를 평화구역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DMZ를 가로지르는 ‘남북경협 평화공단’ 설치도 가능성을 열어 놓고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이다.
포괄적 접근방식은 종래의 단계적·부분적 접근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제반 요소에 모두 합의함으로써 완전한 핵 폐기의 종착역을 설정한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상호간 행동계획을 마련하는 접근법이다.
◆ 재래식 무기 감축
과도한 재래식 군비가 한반도 긴장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남북 모두에 큰 경제적 부담을 안기고 있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에 핵 문제가 6자회담의 틀에서 다뤄지고 있는 반면 재래식 무기 감축은 남북 간 논의하고 추진해야 할 과제임을 확인했다.
현재 북한은 장사정포 300~400여문을 포함, 서울 및 수도권을 사정권에 둔 1,300여개의 화력을 DMZ 근처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남북을 합쳐 100만명에 가까운 병력이 DMZ에서 멀리 않은 곳에 배치돼 있는 상황이다.
결국 DMZ에 밀집한 재래식 무기 및 병력 감축은 평화공간을 확대한다는 의미가 있다.
◆ 고위급 회의 설치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먼저 남북경제를 상호 보완적인 구조로 발전시키고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고위급 협의체 설치 제안은 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남북간 대화는 아무런 조건 없이 이뤄져야 하며 사안에 따라 대화의 수준은 유연하게 추진할 수 있다는 점도 시사했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미국 방문 당시 ‘서울·평양 연락 사무소’ 설치를 제안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