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료시장의 가격 담합을 주도한 롯데칠성음료(이하 롯데)가 결국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정호열)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청량음료협의회’라는 자리에서 논의… 실무부분은 ‘청실회’를 거쳐
전화·메일로 정보 공유…‘롯데’ 가격인상 실패하자 타사도 인상실패
공정위가 지난 1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2월과 2009년 2월 등 4차례에 걸쳐 청량음료 가격을 공동으로 인상한 5개 업체(롯데칠성음료, 코카콜라음료, 해태음료, 동아오츠카, 웅진식품)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3개 업체에 총 255억원의 과징금(롯데칠성 217억, 해태음료 23억, 웅진식품 14억)을 부과했고, 롯데칠성음료와 해태음료의 대표이사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공적인 자리에서 가격담합?
금번 ‘음료 가격담합 파문’이 더욱 충격적인 것은 공식적인 모임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5개사의 가격 담합은 ‘청량음료거래질서정상화협의회(이하 청량음료협의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청량음료협의회는 1988년 국세청 훈령에 따라 세금계산서 수수질서 정상화를 위한 교육·홍보·지도와 무자료거래시정 등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결성된 세정협력단체이다.
그러나 5개사의 사장들은 이 모임에서 ‘음료업계의 공동 가격인상 문제’도 논의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시적인 정보교환으로도 공동 가격인상 방침을 구체화하고 각사의 가격인상내역이 확정되기 이전부터 상호 가격인상 계획을 공유하고 각사의 가격인상안이 결정되면 상호 인상내역을 교환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음료가격 담합을 위한 모임’은 이 뿐만이 아니었고, ‘청량음료실무자협의회’(이하 청실회)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롯데, 해태, 동아오츠카, 웅진식품 등 8개사들이 참석한 ‘청실회’는 매월 1회 개최되는 모임이었다. 청량음료협의회를 통해 대표들간 가격 인상이 합의되면 청실회에서는 구체적인 인상율과 시기 등을 조율한 것이다.
아울러 각 업체의 시장조사 직원들은 청실회와는 별도로 전화·일반메일·메신저 등을 통해 수시로 가격·매출·실적·신제품 및 각사의 동향자료를 교환함으로써 ‘짬짜미’에 일조했다. 또 청실회에 참석하지 않는 코카콜라는 시장조사 직원들이 별도로 마련한 채널을 통해 가격인상과 관련한 정보를 서로 교환했다.
여러 모임을 통해 가격인상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인상 시기를 결정해 시장점유율의 1위업체인 롯데칠성음료가 인상하면 나머지 4개사도 인상품목과 인상율·인상폭 등을 유사한 수준에 맞춰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
‘형님’이 실패하면 ‘아우’도?
이러한 가격 담합은 지난 2008년 9월에 처음 시도됐다. 롯데와 해태 사장은 전화통화를 통해 2008년 하반기에 음료제품 가격인상에 합의했다. 이후 양사의 임원들은 가격인상의 방법 등을 협의하고 롯데의 품목별 인상안이 확정되면 해태에 통보해주는 것에 합의했다.
뿐만 아니라 5개사로 이루어진 청실회 참석자 및 시장조사 직원들은 전화 및 메일, 경쟁사 방문 등을 통해 각 업체의 가격인상 계획과 구체적인 가격인상내역을 상호 교환했다.
그러나 이처럼 철두철미한 방법에도 불구하고 가격 담합에 실패한다. 이유는 롯데가 정부의 가격인상 자제 요청에 따라 인상을 철회했기 때문. 롯데의 가격 인상이 연기됨에 따라 나머지 4개 업체의 가격 인상도 철회됐다.
하지만 지난 2월에 결국 가격 담합에 성공한다. 지난 2008년 12월18일 청량음료협의회 사장단 모임에서 환율과 원부자재 가격이 인상됨에 따라 가격 여건이 악화되었다고 판단해 음료제품의 가격 인상에 공감했다. 이에 따라 인상 시기 및 방법 등을 서로 협의하고 관련 정보를 공유했다.
역시나 구체적인 세부사항들은 청실회를 통해서 이뤄졌다. 5개사의 청실회 참석자와 시장조사 직원들은 그들만의 연락망을 통해 각사의 가격인상 계획과 구체적인 가격인상내역을 상호 교환했다.
이후 롯데가 탄산음료 총 29개를 포함한 129개의 품목에 대해 가격을 인상했고 코카콜라, 해태, 동아오츠카, 웅진식품이 롯데의 인상 내용을 바탕으로 유사한 수준에서 함께 가격인상을 단행했다.
한편, 공정위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롯데를 포함한 시정명령을 받은 5개 업체는 공정위의 조사가 시작될 무렵인 지난 4월, 일부 제품의 평균 3~4% 가량의 가격을 스스로 인하했다. 그러나 약 10%로 달하는 인상안에 비해서는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를 두고 업계일각에서는 “공정위의 조사가 진행되자 이러한 가격 인하를 단행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환율이 1500원대에서 1300원대로 떨어져 인하 한 것일 뿐”이라며 “공정위의 영향을 받아 인하한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아직 공정위로부터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며 “때문에 회사 내부적으로 이에 대한 대응책 등을 마련하지는 않는 상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