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공공의 적' 중 한 장면
유산을 노리고 친자식처럼 자신을 길러준 양어머니를 청부 살해한 남성이 범행 15개월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사설 경마에 중독된 아들…“유산주지 않겠다”는 말에 살해 결심
은폐하려 태연하게 장례식 치러…상속받은 15억도 경마로 탕진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7일 청부업자를 동원해 양어머니 유모(70)씨를 살해하고 유산을 가로챈 혐의로 이모(34)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뿐만 아니라 이씨의 청부를 받아 유씨를 살해하고, 이미 다른 혐의로 붙잡혀 교도소에 수감 중인 박모(31)씨와 전모(27)씨에 대해 강도살인 혐의를 추가해 기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청부업자를 시켜 양모 살해
경찰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씨가 양어머니 유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어머니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지 못하게 돼 결심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조사에서 이씨는 지난해 3월 어머니로부터 “경마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는 너에게 유산을 주지 못하겠다”며 “대신 사회에 기부하겠다”다는 말을 들었고 이씨는 이에 격분했다.
이씨는 대학시절 사설경마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마에 눈을 뜨게 됐고, 이후부터 본인도 경마에 빠져 수시로 어머니로부터 도박자금을 타냈다.
“유산을 물려주지 못하겠다”는 말을 들은 이씨는 어머니를 살해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씨는 ‘전과자와 출소자들의 쉼터’라는 인터넷 카페에서 “시키면 무슨 일이든 다 한다‘라는 글을 접했다. 이 글을 올린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고 이에 어머니를 청부살해한 박씨와 전씨를 접촉해 어머니를 살해하는 대가로 1억3000만원을 제안한다.
이에 이들은 유씨를 살해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일주일간 유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평소 이동하는 동선을 파악했다.
그러나 이들의 첫 번째 살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작년 4월 유씨가 아침운동을 할 때 자동차 사고로 위장해 살해하려 했으나 이씨가 “어머니 얼굴을 보니 차마 못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실패한 것이다.
첫 번째 실패 후 이들은 유씨가 수년간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을 착안하게 된다. 작년 5월2일 오전 4시경 청부살해범 박씨와 전씨는 경기도 성남시의 유씨의 아파트에 침입한다. 물론 아파트의 비밀번호는 아들인 이씨가 미리 이들에게 알려줬다.
유씨의 아파트 침입에 성공한 박씨 일당은 미리 준비한 비닐랩을 이용해 유씨 얼굴 전체를 감싸 살해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아들인 유씨는 자신의 알리바이 확보를 위해 사건당시 경기도 용인시의 자신의 아파트에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당시 의사에게 “어머니가 평소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고 증언했으며, 담당의사는 이를 믿고 사인을 ‘당뇨병에 의한 혼수’라고 결론지었다.
이혼 후에도 아들 보살펴…
어머니의 사망 후 이씨는 태연하게 장례식을 치뤘다. 석연히 않은 죽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사체 감식 등의 절차는 없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1년 3개월이 지난 이달 초 ‘유씨의 사망 과정이 수상하다’는 지인들과 주변 주민들의 첩보를 입수한 뒤 수사를 시작했다.
경찰관계자는 “계좌추적 결과 유씨가 사망한 직후 이씨 통장에 있던 거액의 돈이 박씨에게 흘러간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에 경찰은 지난 3월 특수강도 혐의로 경기도 모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박씨를 추궁해 범행 일체를 자백 받은 뒤 지난 14일 오후4시쯤 분당의 한 PC방에서 인터넷 경마를 하고 나오던 이씨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75년 갓난 아기였던 이씨는 유씨가 운영하던 한 철물점 앞에 버려졌다. 이에 유씨는 이씨를 입양해 키우기로 결심했다.
경찰 조사에서 이씨는 “고등학교 때 자신이 버려진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며 “하지만 어머니는 철마다 보약까지 지어주며 자신을 극진히 보살펴 친자식처럼 키워줬다”고 진술했다. 숨진 유씨는 1989년 남편과 이혼할 때도 양아들은 이씨를 맡아 키웠다.
이후 양어머니 유씨는 이혼하면서 받은 합의금으로 아들의 사업 밑천을 대줬고, 2001년 아들이 결혼할 때에도 경기도 용인시에 9000여만원짜리 아파트를 사줬다.
이러한 어머니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여러 가지 사업에 손을 댔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원인은 역시나 사설 도박에 빠진 탓이었다. 아울러 이씨는 검거 당시 중고차 딜러를 하면서 생활하고 있었으나 이 역시도 잘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후 이씨는 사업의 실패 등으로 1억원의 빚을 지고 있었으며 유씨가 3억원을 주겠다고 약속해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 유씨는 사설 경마에 빠진 아들을 더욱 믿지 못했고 그러기에 아들에게 유산을 상속시키지 않을 것을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은 뉘우치지 못한 채 이씨는 어머니가 사회복지사들의 꼬임에 넘어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생각하고 어머니를 살해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경찰 조사에서 이씨는 “울컥하는 마음에 어머니를 살해하려고 결심했지만, 교통사고로 위장하려고 어머니를 차로 미행할 때 후회가 들었다”며 “그래서 청부 살인을 취소했지만 박씨가 마음대로 살인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어머니를 살해한 뒤 박씨가 ‘살인 청부 정황이 담긴 녹취 테이프가 있다’고 협박해 돈을 받아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씨의 주장에 대해 청부살인한 박씨는 “이씨가 살인 청부를 철회하려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어머니를 살해한 후 이씨는 유산으로 약 20억원이라는 큰 돈을 손에 쥐게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15억5000만원을 사설 경마로 탕진해버리고 말았다. 아울러 상속세 4억원마저도 아직 납부하지 않은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