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선급(KR)의 경영비리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선박 건조와 검사 업무를 국토해양부에서 위임받아 대행하는 한국선급의 오공균(58) 회장과 임원들의 각종 비리가 지난 8월27일 경찰의 수사발표로 전모를 드러낸 것. 오 회장과 임원들은 자신들의 연봉을 대폭 인상한 채 이를 감추고 허위로 출장비를 타내 쌈짓돈처럼 쓰는가 하면, 회사 돈을 정치인들에게 기부하고 직원들에게도 정치자금 기부를 지시하는 등 심각한 도덕적 해이 현상을 보였다. 더욱이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백모(51) 교수에게 한국선급의 부산사옥 신축사업 관련 청탁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선급측은 “정치 후원 횡령 등 사실이 아니다”며 해명에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본지가 한국선급의 비리백태를 집중 취재해봤다.

한국선급의 대표와 임직원들이 각종 비리혐의로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 8월27일 “한국선급의 오 회장과 임직원들이 연봉 및 성과급 4억여원과 국내외 출장비 1억여원을 부당 수령했으며 직원 245명으로 하여금 국회의원 23명에게 정치후원금 3435만원을 기부토록 한 혐의”라며 “오 회장은 직원 취업을 대가로 2500만원을 수수하고 부산사옥 신축공사 사업 관리자(PM) 선정관련 입찰 정보를 사전 유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부풀려 작성한 자료로 연봉 인상, 출장비 8400만여원 생활비 사용
직원 245명 대상 국회의원 등 23명에게 2535만원 부당 기부 유도
회삿돈 900만원 포함한 3435만원 부당 기부, 취업 조건 금품 수수
부산사옥 신축 관련 사업관리자 선정 방해, 시공사 선정 이권 개입
이번 사건으로 경찰은 오 회장에게 사전영장을 신청했으며 연세대 백 교수를 구속하고 S건축 박모(45) 대표를 불구속 입건했다. 또한 한국선급 김모씨 등 4명, K 설비업체 명모 대표, J 운수 박모 대표 등 모두 16명을 불구속 입건한 것.
사실 오 회장의 경우 국제선급연합(IACS) 회의 참석차 일본에 머물렀다가 지난 8월 말일 귀국해 경찰 수사를 받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특수수사과 최동해 과장은 지난 9월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오 회장에게 신청한 사전영장을 거두고 영장을 재신청한 상태”라며 “부산사옥 신축과 관련된 혐의를 추가로 확보한 다음수사를 확대하기 위해 그와 연루된 관계자들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찰이 발표한 오 회장의 비리혐의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오 회장 비리 리스트
한국선급의 오 회장은 지난 2006년 5월부터 2007년 1월경까지 인천지방해양수산 청장으로 있었다.
그러던 지난 2007년 3월8일 한국선급의 회장으로 취임한 것.
최근 경기침체로 공기업 임원들이 연봉을 동결 또는 삭감하는 현실임에도 지난 2년간 이사회에 연봉 인상에 대한 안건을 상정했다.
그래서 취임 당시 1억4000만원인 연봉을 지난 2007년 1억6000만원으로, 지난 2008년에는 1억9000만원으로 인상하며 연봉과 별도로 4420만원의 성과급까지 받았다.
사실 이러한 연봉인상 비리는 인천항만공사 사장 연봉이 1억1800만원임에도 허위로 2억1000만원으로 부풀려 작성한 보수 지급표를 이사회에 제출해 연봉인상 안을 가결 받은 데서 드러났다.
경찰은 “자신과 고위 임원들의 연봉을 편법으로 인상해 (임직원들 연금역시 3억5000만원을 부당 지급) 4억5600만원 상당을 법인에 손해를 가했다”며 “오 회장은 연봉 인상내용에 대해 직원들이 인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임직원 연봉에 대한 비밀유지에 신경 썼다”고 말했다.
더욱이 오회장은 임직원들이 비밀을 누설할 경우를 대비해 징계를 조건으로 한 보안각서를 쓰게 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이 발표한 오회장의 비리혐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 2007년 5월21일에는 국내출장비 30만8000원을 과다 청구해 생활비로 사용하는 등 국내외 출장비 8456만2051원을 횡령했으며 회사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정치권 도움을 위해 업무고용 관계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 2008년 4월경 나용선(한국선주가 임대한 외국배를 한국국적을 취득하도록 해 선급의 영업권역으로 들어오도록 하려는 취지)관련 법안을 통과시킬 목적으로 직원 245명에게 모당 강모의원 등 23명에게 2535만원을 부당하게 기부토록 한데서 드러났다.
특히 경찰은 “오 회장이 비서실을 통해 직원들의 기부여부를 체크했다”며 “이에 대한 직원 진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직원 245명에게 국회의원 명단과 계좌번호를 준 뒤 후원금을 내도록 강요한 것.
또한 오 회장은 지난 2008년 4월30일 모당 정모의원에게 200만원을 기부하는 등 900만원을 포함해 총 3435만원을 정치권에게 부당 기부했다.
오 회장이 직접 후원한 의원과 직원을 시켜 기부금을 낸 의원 수는 중복된 경우를 빼면 총 30명.
이 중 21명이 민주당, 7명이 한나라당, 1명이 자유선진당, 1명이 민주노동당 의원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선급측은 “경영진은 직원들에게 특정 정당이나 의원을 지칭해 헌금을 강요하지 않았고 직원들은 본인이 원하는 정당 및 의원에게 정치자금법이 정하는 방법과 절차에 따라 후원금을 냈다”고 해명했지만, 경찰은 “경영지원본부장은 업무, 고용관계를 이용해 부당하게 직원들의 의사를 억압하는 방법으로 기부를 알선할 수 없다. 법인의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혐의가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상적인 업무처리?
이처럼 한국선급측은 경찰이 발표한 한국선급의 비리혐의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선 실정이다.
먼저 한국선급 관계자는 오회장의 연봉 인상에 대해 “지난 2007년 결산기준으로 인천항만공사 기관장과 이사의 연봉은 각각 2억1000만원과 1억1000만원이었다”며 “이사회 때 참고자료로 제출됐던 관련단체 임원 연봉 자료는 기획재정부 자료를 발췌한 자료로 허위 내용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선급은 정부의 보조로 운영되는 안정적인 기관이 아니며 치열한 국제적인 영업현장에서 생존해야 하는 민간기업”이라며 “동종업종의 임원 연봉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는 조선소 임원들의 연봉을 참조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비영리 사단법인인 한국선급은 국토해양부로부터 선박안정법상 선박의 건조와 검사 등에 대한 검사업무를 독점으로 위임받은 사실상 공적법인”이라며 “공기업이나 마찬가지인 한국선급의 회장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불법적인 이익을 취한 것이 취임 전 밝힌 투명하고 공정한 윤리경영이냐”고 비난했다.
더욱이 경찰이 발표한 한국선급의 비리백태는 이뿐만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오 회장은 채용규정을 무시하고 평소에 알고 지내던 K 설비업체의 명 대표로부터 응시자격을 충족하지 못한 허모씨를 취업시켜 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고 선급교육 업무팀 직원으로 취업시켜줬다”며 “오 회장은 허씨의 아버지가 모 대표에게 제공한 2500만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카센타를 운영한 안모씨 등 부정한 청탁을 하고 취업한 것으로 추정되는 직원이 다수인 것으로 드러나 경찰은 계속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한국선급 관계자는 이에 대해서도 “정규직으로 채용보다는 1년간 정상 급여의 80% 수준을 받는 계약직으로 근무를 시키면서 성과를 재평가한 뒤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조건으로 합격시켰다”며 “다만 시급히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시점에서 담당자가 채용을 하다보니 업무처리 과정이 다소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특히 그는 이와 함께 국내외 출장 경비에 관한 부분도 해명했는데 “현지일정 및 사정에 따라 출장일정이 갑자기 변경되는 경우 실무진에서 과부족에 대한 정산 등 후속 행정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사무 착오가 있을 수 있다”며 “이 같은 행정착오는 실무진들의 사무행정상의 과실일 뿐 누구의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특수수사과 정종근 경위는 이에 대해 “출장을 안 갔음에도 불구하고 간 것처럼 속였다”며 “휴대전화 위치추적하고 그 다음에 차량 운행 일지나 기름 넣는 것을 통해 밝혀졌다”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법정공방 준비 중?
더욱이 이 외에도 한국선급의 부산사옥 신축(대전에 있는 사옥을 부산으로 이전)과 관련된 비리혐의가 남아 있었다.
부산사옥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특정회사가 공사를 입찰 받을 수 있도록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
무엇보다 여기에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백교수가 특정업체를 신축사옥 설계 업체로 선정해주며 2억1282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되면서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오회장이 부산사옥 시공사 선정 권한을 확보하고자 자신의 지시에 잘 따르는 사업관리자(PM)를 선정하기 위해 A 종합건축 조모씨를 통해 백 교수를 소개 받으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 회장은 경영지원본부장, 기획조정실장, 팀장, 차장 등 지휘계통을 이용해 백 교수가 사업자로 낙찰되도록 지시한 것.
특히 백 교수에게 사업권을 주기위해 입찰에 참가하기 전 입찰예정 가격을 산출케 한 후 그 가격대로 입찰을 실시했다.
때문에 백 교수의 妻명의로 설립한 (주)B사가 담합에 의한 부정한 방법으로 부산사옥 신축 사업관리자로 선정되도록 한 것으로 한국선급의 사업관리자 선정 입찰을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오 회장이 사업관리자를 이용해 시공사 선정 이권개입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며 “지방의 공적기업 고위임원들이 공금횡령을 비롯한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벌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비리가 훨씬 심각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부산사옥 신축사업은 사실상 전면중단 됐다.
앞서 백 교수 등에 대해 수사가 진행되면서 부산사옥 신축은 두 달간 지연 된데다 오 회장도 이에 대한 혐의를 부정하고 있어 9월말 착공계획은 물 건너 갈 것은 물론 언제 착공할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더욱이 한국선급 관계자 역시 지난 9월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자세한 내용은 말해줄 수 없지만 경찰과 입장이 달라 법적공방을 준비 중”이라며 “현재 오 회장을 포함한 직원들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한국선급 비리사태에 대해 “채용 청탁 및 특정 건설업체 입찰 특혜 등 이권에 개입해 금품을 수수하고 직무행위를 빌미로 특정 기관 단체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례가 만연하고 있다”며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으로 예산을 부당 집행하는 등의 각종 권력형 토착비리는 근절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