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직 기용 두고 심대평vs이회창, 뿔 난 심대평 탈당으로 선진당 내부 갈등 최고조
“심대평, 이회창에 가려 정치적 리더십 한계, 제왕적 당 운영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
자유선진당의 공동창업자인 심대평 대표가 이회창 총재에게 불만을 품고 탈당했다. 충청권이 흔들리고 자유선진당은 창당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선진당은 심 대표 탈당으로 의석이 한 석 줄면서 제3교섭단체 지위를 잃은 건 물론이고 심 전 대표를 따르는 충남도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지난 달 31일 자유선진당 탈당이 이어지면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분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향후 진로가 안개 속이다. 자유선진당이 “변화·희망” “전화위복”을 외치며 새 출발을 다짐하면서 심 전 대표의 탈당에 따른 후유증 추스르기에 나서고 있지만 지지기반인 충청권 균열 조짐과 원내교섭단체 붕괴 등 ‘원내 1석’ 이상인 심 전 대표의 공백을 메울 뾰족수를 찾기 어려워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가 지난 달 30일 “자신의 편협한 사고를 관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회창 총재와 당을 같이할 수 없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심대평, 독자적 정치행보 예고
심 대표는 “충청권을 기반으로 국민 중심의 새로운 정치를 창조하고자 이회창 총재와 자유선진당을 창당했으나, 총재로 인해 당의 운영이 왜곡되고 있어 더이상 희망이 없다”며 탈당 의사를 밝힌 뒤 “총리직을 맡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이나 국가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정치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창조를 위해 정치 신인들과 동행하며 헌신하겠다”며 독자적인 정치 행보에 나설 뜻을 밝혔다.
이로써 자유선진당 의석이 17석으로 줄어들면서 창조한국당과 함께 구성한 원내교섭단체인 ‘선진과 창조의 모임’도 붕괴돼 당분간 국회 운영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내 2인자였던 심 대표의 탈당으로 선진당의 내부 갈등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심 대표는 지난해 자신이 이끌던 국민중심당을 자유선진당으로 흡수, 해산시키며 이 총재와 손잡았다. 하지만 충청권 맹주로서 나름대로 입지를 다져왔던 심 대표는 이 총재와 사사건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 총재는 제왕적 리더십으로 당을 완전히 장악했고 심 대표의 위상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여권 내부에서 ‘충청 연대론’과 함께 심 대표의 국무총리 기용설이 나오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결국 심 대표가 탈당을 선언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자신의 총리기용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이회창 총재와의 갈등일 것 이라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심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이 총재와 당을 같이할 수 없다”며 탈당의 원인이 이 총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해 처음으로 ‘충청총리설’이 제기됐을 때도 강경한 입장으로 심 대표의 총리기용을 무산시켰고, 올해도 줄곧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 달 27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가 제3당이고 야당인 이상 여권과 정책공조나 연대관계가
형성된 상태에서 (우리당에서)누가 총리로 간다면 모르지만 그런 관계가 아니라면 갈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날 당5역회의에서 “심 대표의 총리 기용 여부에 관한 얘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며 ‘함구령’을 내리고 거부 의사를 공개 표시했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자, 거듭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반성해야”
이 총재는 ‘심대평 총리’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열린 비공개 의원 총회에서도 그동안 정책공조나 ‘강소국 연방제’ 등 정국 구도에 대한 공조 없이 사람 꿔주기는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진당에선 “ ‘곁불은 쬐지 않는다’는 총재의 소신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정치적 고려’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뚜렷한 명분도 없이 심 대표를 ‘총리’로 보낼 경우 선진당이 충청권 지지기반을 되레 여권에 잃을 수 있고 야당으로서 정체성도 모호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자칫 내년 충청권 지방선거에서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사진3}
이에 대해 심 대표는 “자유선진당은 현재 국민들로부터 바라는 만큼의 지지를 못 받는 현실에 처해 있다”며 “현실을 직시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심 대표는 한길리서치의 최근 여론 조사 결과를 인용해 “한나라당 지지율은 26.5%, 민주당은 16.2%, 민주노동당은 3.2%인 반면 우리 당은 2%에 불과하다”며 “충청권에서도 4.6%밖에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 이후 정치권 모두가 화해와 화합으로 가고 있다”며 “그렇다면 우리 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나아갈 길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앞서 이회창 총재는 지난 달 24일 “김대중 시대의 갈등, 대립과 화해함으로써 미래의 화합을 이뤄내자는 것은 과거지향적인 것”이라며 여야의 ‘화합’ 논의에 회의적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심 대표는 “자유선진당이 국가 발전이나 국민의 행복 증진, 그리고 지역 이익 대변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며 “앞으로는 국민 통합 실현과 충청 이익을 대변하는 큰 정치를 정책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총재의 오랜 측근인 이흥주 최고위원은 “선진당이 2%대에서 헤매는 것은 빨리 탈피해야 할 상황”이라며 “지지율 두자리 수를 위해선 국민 마음 속에 쏙 들어가는 정책 개발로 다가가야 한다”고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심 대표가 총리직을 맡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굳이 탈당까지 선언한 것에 대해 자신의 총리기용을 둘러싸고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최근 이 총재의 측근들이 충청총리설에 대해 ‘정치공작’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비판한 것은 선진당의 공동창업주인 심 대표에 대해 도를 넘는 비판이었다는 것.
이와 관련, 심 대표는 “파행적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선진당에 대해 총리직을 미끼로 걸어서 정치공작할 만한 이유가 어디있느냐”며 “과대망상증이고 착각이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해도 공식적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그는 국민중심당 대표시절 이명박 정부로부터 초대 총리직 제안을 받았지만, 이 총재와의 선진당 창당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거부했다는 사실도 소개하면서 “신의를 지킬 만큼 지켰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총리직 제의를 받았지만 심 대표는 “정치적 상황으로 볼 때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JP “충청권에서 심대평만한 인물이 없다.”
심 후보는 40년간의 공직생활 대부분을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지방행정 부서에서 일해온 행정통이다.
공주 출신으로 대전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66년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에 입문한 심 지사는 날카로운 상황판단력과 뛰어난 업무추진력을 보여 ‘행정의 달인’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선거 때마다 각 당의 러브콜을 받아왔으며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의 뒤를 이를 ‘차세대 충청권 리더’로 꼽혀왔다. 심 지사와 자민련의 인연은 JP(김종필)와의 관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70년 국무총리실에 근무할 때 JP와 처음 인연을 맺었으며 1995년 5월 30일 자민련 창당과 함께 JP의 특별보좌역으로 자민련과 연을 맺는다. 그는 그해 6월27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자민련 후보로 충남지사에 당선된 뒤 이후 실시된 2차례의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자민련 간판을 달고 내리 당선했다.
JP는 여러 기회를 통해 “충청권에서 심대평만한 인물이 없다. 장관은 물론 총리와 대통령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고 치켜세우는 등 그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4월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돌풍으로 자민련이 충남에서 4석을 얻는데 그치고 JP마저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당 혁신을 주장했고, 이후 김학원 자민련 대표와 갈등을 빚어오다 탈당한 뒤 국민중심당을 창당, ‘충청발(發) 정계개편’을 촉발할 ‘기대주’로 정치권의 관심을 모았다.
심 대표는 국중당 창당 이후 꾸준히 충청권 현역의원들 영입에 나서 권선택 의원을 입당시키는 등 세력을 키우는데 정치적 리더십과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심 대표의 탈당으로 절치부심하고 있는 이 총재는 그를 뒤따를 탈당 가능성에 경계하고 있다. 덩달아 충청권 지역 민심은 심 전 대표 탈당에 벌써부터 새 정당 창당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지만 그러기에는 명분이 약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분명한 것은 심 대표가 청와대의 총리직 거론과 이러한 개인적인 중대사를 이 총재가 나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데 따른 단편적인 불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체로 자유선진당 창당 이후 줄곧 이 총재의 그늘에 가려 ‘창(昌) 밖’을 벗어나지 못한 정치적 리더십의 한계를 맞았고, 제왕적 당 운영에 대한 반발이 누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심 대표는 향후 행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가능성만 열려 있다. 정치권에서는 그가 ‘차차기 총리’로서 여전히 살아있는 카드라는 관측이 나온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심 대표가 신당을 창당하거나 세종특별자치시장에 출마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