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공화국 황태자가 본격적인 용좌굳히기에 들어갔다. 수 년 동안 자신을 옭아맨 법적 사슬도 풀었다. 국내 제1의 기업이자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삼성그룹의 황태자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올 초 그는 이혼의 아픔으로 잠시 잠깐 방황하는 듯한 모습을 내비추기도 했지만,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현재 평온한 자세로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전무가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며 시종 예의주시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전무가 사장으로 곧 승진해 경영 전면에 나설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가 넘어야 할 산은 너무나 많다. 아마 황태자의 머릿속은 지금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분주할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 둘 , 승진과 함께 내부 결집력 다지기 - “나를 따르라”
시나리오 셋 , 경영권 승계 걸림돌 ‘지주사 전환’-“Smooth하게”
지난 13년간 삼성의 발목을 묶은 법적 논쟁이 마침내 종지부를 지었다. 이에 따라 삼성은 뉴삼성으로의 도약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그 지휘를 맡은 이가 바로 황태자 이재용 전무이다. 항간에는 이 전무가 곧 있으면 사장으로 승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재계에서는 오너기업들이 2~3세 경영 체제로의 과도기를 맞고 있다. 삼성과는 좋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만 보더라도 그렇다. 최근 현대기아차그룹의 황태자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그룹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한 것이다. 따라서 이 전무 역시 상대적으로 이에 걸맞은 직위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물론 법적 논쟁을 종결짓고 제3의 도약을 위한 예정된 수순으로 보는 게 더 적합할 듯하다.

하지만 이 전무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길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삼성의 당면 과제는 뉴삼성 시대에 맞는 신사업 발굴과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 등 너무나 많다.
일단 이 전무의 최근 행보를 볼 때 이 많은 과제 중에서도 자신이 가장 급선무로 해결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 것은 ‘신사업 발굴’로 보여진다. 아버지 이건희 전 회장이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현재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 끼어 ‘샌드위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존 주력 사업을 강화하는 동시에 신종사업의 발굴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에 재계는 ‘뉴 삼성’의 글로벌 행보를 걷고 있는 황태자 이 전무의 발걸음에 시선을 쫓고 있다. 이미 이 전무는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세계 경제 대통령인 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 측 실세들과의 물밑 접촉을 통한 삼성의 글로벌 도약 전철을 차곡차곡 밟고 있다.
현재 이 전무는 캐나다 캘거리에 머물며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를 참관하고 있다. 이 전무는 캐나다 일정을 마무리하는 대로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09’가 열리고 있는 독일 베를린으로 이동, 최지성 DMC부문 사장, 윤부근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 등과 함께 전시장을 둘러볼 예정이다. 스트링어 소니 회장 등 글로벌 전자업체 CEO들과의 만남도 예상된다.
재계에서는 이 전무의 이같은 대외적 행보의 목적이 ‘신사업 발굴’을 위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새로운 활로를 뚫기 위한 물밑접촉의 일환이란 것이다. 물론 자신의 경영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속셈도 있다. 신사업 발굴은 곧 이 전무의 경영 능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룹 내 지배력 강화를 가져올 수 있어서다.
이 전무는 이와 동시에 그룹 내 조직 정열을 통한 기존 주력사업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룹의 주요 계열사끼리 중복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삼성SDS간 중복되는 사업부분을 교통정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일환으로 최근엔 계열사 사업장을 잇달아 방문하기도 했다. 이 전무는 지난달 말 삼성전자를 비롯해 전기, 테크윈, 중공업 등 계열사 사업장을 차례로 방문해 계열사별 현안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둘. “나를 따르라”
최근 재계에서는 법적 논쟁을 끝낸 삼성이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를 열기 위한 수순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 이 전무는 사장 승진이 유력시 되고 있다. 이 전무는 2007년 초 상무에서 승진한 이후 2년 넘게 전무직에 머물러 있다. 연한으로 보면 이번 인사에서 승진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특히 비슷한 연배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과 비교하면 이 전무는 오히려 좀 늦은 편이다. 이에 따라 이 전무가 이번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해 계열사 대표를 맡아 본격적인 경영 참여를 할 것이란 설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설이 더욱 탄력을 받는 이유는 올 초 인사에서도 나타났기 때문. 당시 인사에서는 이 전무가 총수자리로 가는 징검다리 중 하나인 부사장으로 승진하지는 못했지만 이 전무의 측근으로 거론된 인사들이 대거 승진 이동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 전무를 위한 새판짜기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건희 시대’를 대표하는 간판급 경영자들이 대거 퇴진한 반면 이들이 물러난 자리는 50대 중반의 부사장급들로 채워졌다. 삼성의 주력 기업인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진으로는 이 전무의 가정교사 역할을 했던 최지성 사장이 이윤우 부회장과 함께 투톱체제로 정비됐다.
이 전무의 선배로 삼성전자 홍보팀장을 맡고 있던 이인용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해 그룹홍보를 담당하게 됐으며, 회사 출범 초기부터 이 전무와 호흡을 맞춰왔던 S-LCD의 장원기 대표이사 겸 LCD총괄 부사장도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외에 윤순봉·서준희·최주현·박오규·황백 부사장 등이 사장 타이틀을 달았다.
비록 이 전무는 3년이라는 승진 연한에 묶여 승진에서는 제외됐지만, 당시 인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이 전 회장의 라인은 전면 퇴진한데 비해 이 전무 라인의 젊은 인사들은 대거 승진했다는 것이다.
이에 재계에선 삼성의 새로운 지도부 구성과 경영조직 정비가 머지않은 장래에 삼성의 경영 전면에 나설 이 전무 체제를 대비한 여건 조성으로 보고 있다.
이 전무의 최측근인 최지성 사장이 투톱 중 하나로 부상한 것이 단적인 예다. 특히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옷을 벗었던 인물들도 올 초 인사에서 대거 중용된 것 역시 이 전무로의 권력승계 기반을 만든 보상차원으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올 초에 단행된 삼성의 인사는 ‘뉴삼성’으로의 새 출발을 위한 동기부여와 함께 이 전무 라인의 인물들을 대거 포진 시키면서 이 전무가 앞으로 얼마만큼의 경영성과를 낼 수 있을 지에 대한 평가 시험이 시작됐다는 것이 재계 안팎의 분석이다. 따라서 이번에 있을 인사에서도 올 초와 마찬가지로 이 전무 측근들이 대거 등용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는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 삼성의 최대 관건인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놓고서도 이 전무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을 듯하다. 경영권 승계를 순탄하게 물려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배구조 개선, 즉 지주사 체제로 전환을 깔끔히 처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는 게 문제이다.
지난해 삼성은 쇄신안을 전격 발표하면서 순환출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을 4~5년 내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또, 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순환출자를 해결해야 한다는 시민단체 등의 날선 비판에 대해서는 “현재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는 약 20조 원 이상이 필요하고,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문제가 있다”며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현행 금융산업구조개선법에 따르면 삼성은 오는 2012년까지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 25.64%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26% 중 5%를 초과한 부분을 처분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정부와 정치권에서 삼성을 가장 심하게 압박하는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고, 비은행 금융지주사의 산업 자회사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논의 중이어서 이들 법의 개정 여부에 따라 향후 삼성 지배구조의 그림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지배구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 전무가 전면에 나서기보다 현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 있는 아버지 이 전 회장이 막후 경영을 통한 아들을 중심에 둔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을 물밑 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삼성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해 이 전무가 핵심계열사들의 경영권을 확보함으로써 막강한 힘을 지닌 황제로 등극할 것이란 재계의 전망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