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전입‘은 무조건 죄송하다. 하지만...” 불법을 동정심 유발로 끝내려는 후보자들
시민들 비난 봇물... “국가를 책임질 사람들이 하나 같이...차라리 인사청문회 없애자”
MB 집권2기 내각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인사청문회는 진보성향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총리로 발탁되는 등 야당의원 남편 대법관, 국회의원 장관 임명자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여의도 정가는 물론 국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 보다 커지고 있다.
하지만 총리를 비롯해 정부를 이끌어갈 각 주무 부처 수장 후보들이 하나같이 짠 듯 ‘위장전입’, ‘세금탈루’, ‘병역 면제’등 각종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면서 국가를 책임질 고위공직자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정운찬 의혹 끝이 없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를 며칠 안 남은 가운데 앞서 논문 중복게재, 세금 탈루, 병역 면제 등의 의혹이 불거진 상태였다. 최근 정 후보 부인 최 모씨가 땅을 매입하기 위한 ‘위장전입’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논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난 14일 ‘국회 인사청문요청안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 총리 후보자의 부인 최모 씨는 1988년 2월 5일 주소지를 경기 포천시 내촌면 마명리로 옮겼다가 같은 해 4월 1일 다시 원래 주소인 서울 방배동으로 이전했다.
부인 최 씨가 두 달 동안 포천으로 주소 이전을 하고 다시 원래 주소로 변경 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주민등록법 위반이라 볼 수 있다.
정 후보 부인 위장전입과 관련해 집중 취재한 동아일보는 “최 씨가 주민등록을 이전한 주소즈는 정 후보자의 경기도 동문인 김 모 전 고려대 교수가 살던 기와집이었다”고 보도했다.
김 전 고려대 교수는 인터뷰에서 “정 후보자와 이곳에서 같이 살자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와서 살지는 않았다”며 “(왜 정 후보자의 부인이 주민등록을 이전했는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위장전입’외도 정 총리 후보자가 아파트를 사고팔 때 이중계약서를 작성해 수천만원의 세금을 탈루했다는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이 또 제기됐다.
의혹을 제기한 국회 국무총리 인사청문특위 소속 민주당 김종률 의원은 지난 15일 “정 후보자가 2003년 1월13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아파트를 처분하고 2006년 10월30일부터 거주하고 있는 서초구 한 아파트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두 차례 모두 매매계약서를 이중으로 허위 작성, 매매가를 축소 신고하는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수천만원의 취득·등록세를 탈루한 의혹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또 저작물에 의한 인세 소득, 인터넷 도서판매업체인 ‘예스24’ 자문료 등을 종합소득으로 신고하지 않고 탈세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현재 이 같은 정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 자료가 국회에 거의 제출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강운태, 김종률, 최재성, 백원우, 박상돈, 이정희 의원 등 야3당 인사청문회 위원들은 17일 국회 기자회견을 갖고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며칠 뒤 시작될 예정이지만, 검증을 위한 기초 자료들이 정부측의 자료제출 거부와 지연으로 심각한 문제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야3당의 요구자료 수백 건 중 제출된 자료는 거의 없으며, 일부 도착한 답변도 불성실한 답변이었다”면서 “특히 ‘후보자 및 가족의 국내 및 공항 면세점 구입내역’에 대한 관세청의 답변은 ‘면세점에 요청하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국회를 무시하는 답변”이라고 항의했다. 이들은 또 청문회 방해가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민주당 백원우 의원은 “정 후보자 부인은 화가인데, 부인의 인적사항 및 작품활동의 검색을 위해 미술협회 서울시 지부 홈페이지를 검색하려 했지만 검색이 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운찬’ 못지않은 장관 후보자들?
이번 청문회 대상 가운데 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와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위장전입을 한 사실을 시인했다.
먼저 이귀남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1997년 9월 장남이 원하는 고등학교로 배정받기 위해 배우자와 장남이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 용산구 청파동으로 6개월간 위장 전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앞서 김준규 검찰총장,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위장전입 사실이 논란이 된 바 있다.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의 경우 부인인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이 과거 무주택 단독 세대주 자격으로 사원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결혼 이듬해인 1985년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민 후보자의 부모 집에 단독 세대주로 전입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 후보 쪽은 “단독 세대주라야 분양받을 자격이 있다고 해서 불가피하게 전입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번 이 장관 후보자와 민 대법관 역시 위장전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집행 주무부서인 법무장관 후보자는 물론 법위반 여부를 최종 판결하는 대법관도 위장전입을 했다니 이쯤 되면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위장전입은 ‘필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신성한 법기관의 위신이 추락됐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임태희 노동부장관 후보자 역시 지난 1984년 12월과 87년 10월 두 차례 장인인 권익현 전 민정당 대표의 선거운동을 돕는다는 차원에서 경남 산청으로 주민등록을 옮겨 주민등록법 위반 죄를 저질렀다. 또한 임 후보는 어린 자녀들에게 2억원에 가까운 예금 통장을 만들어줘 증여세 탈루 의혹을 받고 있다.
10년 전 14살과 15살에 불과한 두 딸의 예금이 각각 1867만원과 1923만원이었다. 그런데 두 딸의 재산은 해마다 증가하면서 올해엔 각각 8679만원과 9596만원으로 늘어난 것이 밝혀졌다. 현재 대학생인 두 딸은 1억원씩에 가까운 현금을 쥔 셈이다.
주호영 특임장관 후보자의 경우 2003년 은마아파트 32평형(105㎡)을 6억5천만원에 사고도 매입가를 1억3천500만원으로 신고해 세금을 탈루했다는 이른바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이 제기 됐다. 이와 관련해 주 후보는 인사청문회에서 “중개사를 통해 계약했지만 법적 책임은 귀속되므로 그 부분에 대한 비난을 피해가지 않겠다”며 “실거래 가격으로 정확히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한다면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주 후보자는 판사 재직시 대학 강의에 나가 공무원 겸직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법관 신분으로 외부로 나간 것은 영남대 장학재단과 상지대로, 모두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지만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면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백희영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무직인 장남과 학생인 장녀의 예금이 각각 5171만원과 2963만원으로 돼 있어 증여세 탈루 문제를 추궁 받을 전망이다. 특히 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백 후보자의 장남에 대한 병역처분이 편법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가운데 이에 대한 해명 자료 제출을 거부해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백 후보자는 여성운동 경력이 없는 자로서 여성부 장관직을 맡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지도 검증대상이다.
“차라리 인사청문회 폐지해라”
이처럼 청문회 대상인 고위공직 후보자들이 누구 하나할 것 없이 위장전입,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논문 이중게재 등으로 도덕성 결여 논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계속되어온 각종 의혹들이 이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계속 반복되면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 때문이다.
서울 신림동에 사는 한 시민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인사 인준이 웬만하면 통과되고 있다. 차라리 인사청문회가 없어지는 게 이를 지켜보고 인상 찌푸리는 국민들을 도와주는 길이다”고 비꼬집었다. 목동에 사는 대학생 이 아무개 씨는 “위장전입은 현 이명박 정권의 필수과목이 됐다. 차라리 위장전입을 합법화 하자”고 비아냥거렸다. 이 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고위 공직자를 향한 어느 장관 후보는 “나름 사정이 있어 ‘위장전입’은 불법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법을 수호하고 집행하는 분이 이 같은 말을 한다는 자체가 말이다.
‘위장전입’은 현행 주민등록법상 3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이기 때문에 이는 불법 행위다. 이런 불법을 당연시(?) 하는 청문회 후보자들은 사과와 해명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만 하니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는 ‘불 보듯 뻔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