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나영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나영이 사건이란 지난해 말 당시 8세이던 나영이가 등교하다 만취한 조두순(57)씨로부터 무자비한 구타와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다. 나영이는 8시간의 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항문과 대장, 생식기의 80%를 영구적으로 잃게 됐다. 더욱이 가해자인 조씨가 법원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 받으면서 ‘적절한 형량이었을까’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가세지고 있는 것. 이에 본지가 ‘나영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성폭력 범죄의 실태와 처벌의 현주소를 점검해봤다.

교도소중의 교도소인 청송교도소 독거실에 조씨가 수용됐다. 법무부는 지난 7일 “8살 여자 어린이를 잔혹하게 성폭행한 조씨를 국내 유일의 중(重)경비시설인 청송제2교도소 독거실에 수용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안양교도소에서 지내다가 최근 대법원 판결에서 징역 12년과 전자팔찌 부착 7년, 신상정보 공개 5년을 확정 받고 이날 오전 청송제2교도소로 이감된 것.
‘조두순 사건’ 8살 나영이 항문과 대장, 생식기 영구적 잃어
가해자 조씨 법원에서 징역 12년형 선고, 관대한 처벌 논란
아동성범죄 처벌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경우 빈번?
무분별한 법원 감형과 처벌 수위, 성범죄 재발방지에 악영향
사실 청송교도소는 S4등급을 받은 수형자 중에서도 전국의 일반 교도소에서 각종 문제를 상습적으로 일으킨 수형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조씨처럼 구치소나 다른 교도소에서 규율을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형 확정 후 청송제2교도소에 곧바로 수용된 사례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조씨의 12년 형이 너무 관대하다는 국민적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이는 극악무도한 조씨의 행위에 비해 형의 수위가 낮다는 것이다. 대체 조씨는 8살 나영이를 상대로 어떤 행위를 저질렀기에 이러한 국민적 미움을 받고 있는 것일까.
‘나영이 사건’의 전모
수원지법 안산지원이 공시한 판결문을 토대로 작년 12월18일, 사건이 일어난 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술에 취한 조씨는 안산시 단원구의 한 교회 앞 노점상근처에서 학교로 등교 중이던 8살 나영이를 발견한다.
여기서 조씨는 나영이를 강간하기로 마음먹고 나영이에게 접근, 교회에 다녀야 한다면서 나영이를 교회 안 화장실로 끌로 간다.
조씨는 그곳에서 바지를 벗고 나영이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시킨다.
나영이가 이를 거부하자 조씨는 주먹으로 나영이의 얼굴을 수차례 때리고 나영이가 울음을 터트리자 시끄럽다는 이유로 볼을 깨물고 목을 졸라 기절시키기에 이른다.
이처럼 조씨는 항거불능 상태에 빠진 나영이를 억지로 강간해 최소 8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복부, 하배부 및 골반부위의 외상성 절단 등의 영구적 상해를 가했다.

더욱이 발견당시 나영이는 복부의 장기가 음부 밖으로 노출될 정도로 그 피해는 참혹했으며 수술적 처치 등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생명이 위험할 정도였다.
이에 지난 7월24일 대법원은 “이 사건으로 인해 나영이와 가족은 평생토록 지울 수 없는 참담하고 심각한 고통과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며 “조씨에 대해 12년형과 전자발찌 부착 7년, 신원공개 5년의 원심 판결을 확정한다”고 밝혔다.
특히 법원은 나영이의 음부와 항문이 심하게 훼손돼 그 기능을 상실함으로써 앞으로도 정서적 육체적 성장 과정에서 심한 고통을 받으며 평생 동안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을 염두 해 조씨에게 이러한 형을 선고한 것이다.
하지만 조씨가 저지른 범죄에 비해 형량의 수위가 낮다는 비판 여론이 가세졌다.
거기다 조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물증(나영이의 혈흔이 묻은 조씨의 양발과 운동화 등)을 제시한 경찰에게 “교도소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나올테니 그때보자”는 말을 하는 등 반성하는 태도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씨는 이미 지난 1983년에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에서 강간치상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전력까지 있었다.
죄에 비해 미약한 처벌
덕분에 청와대와 법원 게시판에는 “조씨를 극형에 처하라”는 글이 쇄도했다.
일부 흥분한 네티즌들은 조두순의 신상명세 등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내 공개했다.
각종 포털사이트에는 조씨의 처벌 수위를 높여야 된다는 내용의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실제로 다음 ‘아고라’에는 ‘법정 최고형에 피해보상까지 하라’는 내용의 글에 무려 50만명에 달하는 네티즌들이 서명을 했다.

이처럼 네티즌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데는 나영이 사건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조씨에게 내려진 ‘징역 12년의 형량이 적절한가’라는 부분이었다.
사실 조씨에게 적용된 형법에 따르면 최고 무기 징역형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조씨가 범행 당시 알코올의존증과 행동통제력 부족(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해 법령에 따라 형량을 감경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거기다 검찰은 구형량(징역 15년)에 근접한 형이 선고됐다는 이유로 항소하지 않았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씨는 “형량이 너무 높다”며 항소까지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적인 분노가 극에 달했다.
결국 조씨는 항소심과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그대로 1심 형량이 유지 된 것.
이는 피고인만 항소한 경우 상급심에서는 1심 형량보다 높일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이러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아동 성범죄자 처벌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거세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아동성범죄자 처벌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등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7년 통계를 보면 형이 확정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1839건 중 42.1%인 774건이 벌금형을, 30.5%인 562건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그 처벌 수위가 얼마나 미약한지 알 수 있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보면, 13세인 의붓딸을 상습적으로 강간해 4차례나 임심시킨 혐의로 구속된 A(48)씨는 징역 12년이 구형됐지만, 동종전과가 없고 범행을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사정은 경비실로 5살짜리 여아를 끌어들여 강제 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아파트 경비원 B(65)씨도 마찬가지였다.
징역 5년이 구형됐지만 피해자 측과 합의한 데다 고령·질병 등으로 수형생활이 어렵다는 점이 참작돼 집행유예가 선고됐던 것.
이처럼 아동 성폭력범죄에 대한 법원의 감형 조치가 지나치게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법원의 감형이 결국 성폭력범죄의 재발 방지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범죄 키우는 감형조치?
또한 대부분의 성폭행 사건이 범인보단 피해자에게 더 초점이 맞춰지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이러한 성범죄 처벌 수위를 낮추는데 일조 한다는 것이 일부 네티즌들의 의견이다.
때문에 이번 ‘나영이 사건’도 ‘조두순사건’으로 이름을 바꾸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사실 나영이라는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은 아동성폭력 사건을 한 언론사가 보도하면서 피해자에게 붙여진 가명.
충격적인 사건인 만큼 이 이름이 알려지면서 사건의 이름처럼 불리게 됐다.
이는 가명일지라도 피해자인 아이의 이름으로 성범죄 사건이 불린다는 게 아이에게 두 번 상처를 주는 일일 수 있다는 여론에 또 다른 언론사가 아이의 이름이 아닌 범인의 실제 이름인 조두순으로 사건을 바꿔 부르기 시작하면서 사건이 이름이 바뀐 것이다.
물론 이와는 동시에 대부분의 성범죄 사건처럼 이슈화만 되고 지나가 버리는 게 아니냐는 다른 일부 네티즌들의 우려도 들리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 역시 일회성에 불과하다는 건데 이는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보단 성범죄의 내용에만 흥미를 가지는 일부 여론의 문제기도 하다는 것.
거기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아동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은 편이라서 성범죄자들이 성범죄를 쉽게 생각하는 풍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다.
때문에 이번 나영이 사건으로 좀 더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조씨의 경우처럼 성범죄의 경우 재범율이 높은 편으로 나타나 이는 제2 제3의 나영이 사건을 만들어 내는 데에 처벌 수위와 법원의 태도에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8일 법무부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맡겨 제출받은 보고서 ‘아동 성폭력 재범 방지 및 아동 보호대책’에 따르면 아동 성폭력범죄에 대한 감형 사유가 일반 범죄에 적용되는 기준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에 접수된 아동 성폭력범죄 28건에 대한 판결 분석 결과 역시 감형 사유가 동종전과 없음 16건, 범행 자백 11건, 범행 반성 10건, 고령 또는 미성년 10건, 합의 5건, 음주와 가족부양이 각각 3건이었다.
더욱이 한 성범죄자에게는 국가유공자이며 동종전과가 없다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또한 살인죄로 출소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범죄자가 여아 2명을 성폭행했는데도 고령이며 추가 범행의 가능성이 없고 동종전과가 없다는 이유로 형이 감경됐다.
가해자의 재범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감형 사유로 판시된 것도 2건이나 있었다.
범행정도가 경미해 아동의 후유증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경우도 있었던 것.
1심 재판부는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 사실은 인정되지만 과도한 애정표현일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무죄 판결했으나 상급심은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김태경 실장은 “아동 대상 성폭력범죄에서 가해자의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일반인들의 인식과 달리 법원에선 감형 조치가 빈번히 이뤄지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윤덕경 교수는 “법원이 임상심리사나 법의학자 등 전문가의 소견을 듣기보다 변호사나 피고인의 말만 듣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문가의 심층조사를 통해 객관적으로 사건에 접근할 수 있는 절차를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