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동부 그룹 회장이 용단을 내렸다. 사재 3500억원을 출연해 매각 협상서 대접받지 못하던 동부메탈 지분 50%를 직접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초 동부는 1조2000억원의 빚을 갚기 위해 동부메탈을 내놨으나 산업은행이 3500억원을 제시하면서 ‘빚 청산’에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김 회장의 사재 출연을 두고 일각에서는 “신중하게 지켜봐야”한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고 있으며 3500억원이라는 거금 마련 방식에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이에 본지가 김 회장이 ‘사재 출연’이라는 용단을 내린 배경과 예상되는 총알 마련 방법에 대해 짚어봤다.
동부그룹의 김준기 회장이 히든카드를 꺼내들었다.
가격차로 인한 매각 협상 난항…사재로 동부메탈 주식 매입 추진
동부화재 지분 매각해 ‘총알’ 마련… 경영 승계에 연관 없기 때문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지난 19일 동부그룹은 “김 회장의 사재 3500억원으로 출연해 동부메탈 지분 50%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동부그룹은 보도자료를 통해 “김준기 회장이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사재 3500억원을 출연함으로써 동부하이텍 반도체 부분의 재무구조 개선에 기여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며 “대주주가 책임을 지고 동부하이텍의 구조조정에 앞장서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전했다.
너무 큰 가격 차이
동부의 김준기 회장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은 산업은행과 동부 간 동부메탈의 매각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못해 사실상 ‘결렬’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동부와 산은은 지난 6월 초부터 동부메탈의 매각 협상을 벌였다.
당시 동부 측은 동부메탈의 가격을 7000억원 이상으로 책정해 제시했다. 하지만 산은은 5000억원 이하의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표면적으로 보이는 가격만 해도 2000억원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이 같은 가격 차이에도 불구 지난 8월 잠시 매각 협상이 급물살을 타기도 했다. 산업은행 측이 동부에 ‘언 아웃 방식’을 제시했고 동부도 긍정적으로 검토했기 때문이다. 산은은 김준기 회장 보유의 동부생명 등의 지분을 담보로 제공하면 인수 후 2000억원을 추가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추가 제시한 2000억원을 포함해도 동부는 여전히 ‘인수가격이 너무 낮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동부와 산은 측은 다시 하번 이견차를 좁히기 위한 협상에 돌입했다. 지난 12일 동부는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하고 산은PEF와 동부메탈의 매각 막바지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동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초 동부가 실사한 동부메탈주식 100%의 가격으로 8500억원을 산정했다. 업계에서도 지난해 높은 수익을 낸 동부메탈의 가격이 1조원 정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산은 측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산은 측은 두 차례에 걸친 실사를 통해 3500억원을 제시했다. 여기에 대신 동부가 “동부메탈을 우선적으로 되사갈 수 있는 ‘바이백 옵션’을 보장하겠다”고 제시하며 싼 가격에 팔 경우 다시 싼 가격에 사올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아울러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동부에 시장에서 인정되는 최대한의 금액을 제시했다”며 “더 이상 협상의 여지는 없다”고 말하며 최후통첩임을 밝혔다.
한편, 동부메탈의 지분 100%를 보유한 동부하이텍은 지난 2004년 4월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1조2000억원의 신디케이드론을 받았다. 이후 2007년 말 신디케이트론 만기를 2012년으로 연장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높은 이자를 고려해 매각을 추진한 것이다. 동부하이텍은 지난해 1조3476억이라는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도 저조한 수익성과 과도한 이자비용 탓에 2816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을 냈다.
결국 또 경영권 승계?
김준기 동부회장의 사재 출연으로 인한 동부메탈 주식 50%인수는 사실상 “높은 가격을 받지 못할 바에 팔지 않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되고 있다. 1조2000억원의 빚을 갚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알짜 회사를 팔기로 했으나 이것이 적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자 회장이 직접 두발 벗고 나선 것이다.
또한 김 회장은 종종 동부메탈에 대한 애착을 표시해왔다. 현재의 유동성 위기 때문에 매각하더라도 경영권은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는 한편, 그룹이 정상화 되면 다시 회사를 되살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동부의 김준기 회장의 결단에 대해 “신중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동부메탈은 동부그룹 계열사들 중에서도 동부화재에 버금가는 알짜 회사인만큼 지분인수에 대해 다른 의중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경영권 승계와 연결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 회장의 사재 출연으로 그룹 내 구조조정이 박차를 가해지고 있는 와중에도 김 회장의 아들 남호(34)씨의 지분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금융감독원 및 한국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동부제철의 남호씨의 지분이 지난 21일에서 23일(변동일 기준) 사이 지분 0.33%(16만여주)를 장내 취득했다. 이에 동부정밀화학 등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이 49.22%에서 49.55%로 확대됐다.
남호씨의 지분 상승과 함께 아버지인 김준기 회장이 알짜 계열사인 동부메탈의 지분 50%를 사들인다면 동부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박차를 가하게 될 때 이 지분은 고스란히 아들인 남호씨에 넘어갈 확률을 매우 높다는 것으로 보여 진다.
회장이 직접 사재를 출연하기로 결정한 만큼 이제는 김 회장의 지분 매입을 위한 ‘총알’마련 방식에 관심을 쏠리고 있다.
김 회장이 수천억원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만큼 3500억원은 그의 주식 매각으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김 회장은 현재 동부하이텍 3.4%를 비롯해 동부정밀 14%, 동부CNI 12.2%, 동부건설 10.0%, 동부화재 12.1% 등 총 7개 상장 계열사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는 4000억원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동부화재의 지분 매각이 가장 유력할 것으로 보여 진다. 동부 최고의 알짜 회사인 만큼 주식 가격이 가장 높고 상대적으로 현금화가 쉬운데다 무엇보다 장남인 남호씨가 이미 14.06%로 최대주주에 올라 있어 그룹의 지배구조에 큰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동부그룹 관계자는 “사재 출연으로 동부메탈 지분을 매입 한 것을 결정한 것일 뿐 어떤 계열사의 지분을 팔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이 관계자는 “동부하이텍과 관련해 동부가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는 소문이 많은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