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소송으로 골목길 수난시대
잦은 소송으로 골목길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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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거리'에서 '소송거리'로?


각박한 세태에 골목길 소송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추억의 장소 골목길이 점점 사라지는데 이어 없는 골목길에 소송까지 늘고 있는 것. 이들 소송은 주로 골목길 소유자들이 통행을 막거나 통행료를 요구하는 사례로 대표된다. 여기에 재개발·재건축에 따른 재산가치 상승을 노리고 골목길에 눈독을 들이는 전문 사냥꾼까지 등장, 유사분쟁이 늘어날 전망이라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본지가 각박한 세태에 늘어만 가는 ‘골목길 소송’을 취재해봤다.

▲ 영화 '바보'의 한 장면.


주거 및 상업지역의 진입로로 이용되는 골목길. 요즘에는 각종 개발 사업으로 골목이 급속도로 사라지는 추세다. 그런데 이러한 골목길에서 최근 소송이 잦아지고 있다.

각박한 세태에 골목길 소송 기승, 골목길 소유자들 통행을 막거나 통행료 요구
재개발·재건축 재산상승 노린 전문사냥꾼, 기업형 슈퍼에 밀려 골목상권도 위축


골목길 소유자들이 통행료를 요구하고 통행을 막으면서 골목길은 어느새 소송거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골목길 수난시대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골목길 통행 분쟁과 관련해 선고된 소송 건수는 올해 9월 현재 10여건에 이른다. 참고로 지난 2007년은 3건, 지난 2008년 5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계류 중인 소송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법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골목길 소송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시대 ‘봉이 김선달’ 마냥 “골목길 통행료를 내라”는 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 언론은 “인천시 강화읍 상가건물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A씨가 최근 3년간의 골목길 소송 끝에 맘 편하게 출근길에 나서게 됐다”는 웃지 못 할 사연을 전했다.

상가건물이 신축된 지난 2005년 5월, 대로변에서 상가 건물로 이어지는 곳에 바리케이드와 컨테이너, 간이 쇠말뚝 등이 설치됐던 것. 한마디로 소유자가 골목길 진입로에 통행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해났다는 얘기다. 여기에 관리요원이 진입로에 행선지를 따져 묻기까지 했다고 한다.

사실 이 진입로는 30여년간 통행로로 이용됐는데 소유자인 B씨가 인접한 예식장과 유료 주차장 사업을 하면서 “통행료를 내거나 유료주차장을 이용하라”고 요구해 마찰을 빚게 됐고 상가 세입자 일부는 실제 사용 명목으로 월 55만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A씨 등은 인천지법에 통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기각됐고 참다못한 이들은 다시 서울중앙지법에 통행방해배제 소송을 제기했던 것. 결국 법원으로부터 “일반 공중의 통행을 막는 것은 권리 행사의 남용에 해당된다”며 A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실 골목길 분쟁 사유는 돈 때문이라는 것이 일부 전문가의 의견이다. 골목길은 재산 가치가 없지만 보상 대가를 노리고 재산권 행사를 요구하는 소유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 거기다 재개발·재건축도 이를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거기다 개인투자자들이 대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이 싼 골목길을 경매로 사들였다가 가치 상승을 노리는 전문 사냥꾼까지 등장해 문제가 되고 있다.

소송거리로 전락?

실제로 전국 법원의 도로경매 낙찰건수 역시 지난 2006년 362건, 지난 2007년 501건, 지난 2008년 636건, 지난 2009년 9월 현재 529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이를 두고 한 부동산 경매 전문업체의 팀장은 “경매시장에 골목길 도로만 전문으로 노리는 경매꾼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 예로 광주 지역 H업체와 지역 주민들은 지난 4월 법원이 통로통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뒤 망연자실한 사연을 전했다. 내용인 즉, 지난 2006년 말 광주 봉선동에 상가건물이 완공됐는데 당시 유일하게 출입차량이 드나드는 포장도로도 함께 개설됐다는 것.

그러나 시행사 소유였던 이 도로 부지가 임의경매로 박모씨 등에게 낙찰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박씨 등이 차량 1대가 통행할 부분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쇠파이프로 담장을 설치해 독점적 사용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H업체 관계자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가 됐다”며 또 다시 소송에 나설 뜻을 밝혔다.

여기에 법원도 골목길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목길 통행 분쟁에 대해 얼마나 오래 도로로 사용됐는지, 다수의 사람이 이용하는지, 소유자의 재산권이 침해받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는 입장이지만 판단이 쉽지 않다는 게 그 이유.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민사공보판사는 “골목길의 공공적 성격과 개인의 재산권이 맞서는 사안이라 결론내리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최근에는 기업형 슈퍼에 밀려 골목상권도 위축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막강한 자금력과 네트워크로 무장한 기업형 슈퍼마켓이 골목길 어귀의 동네 슈퍼를 공략해 그 주변 상권을 떨어트려 또 다른 골목길 문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서민의 공간인 골목을 둘러싸고 온갖 부정적인 일들이 겹쳐서 발생해 골목길은 어느새 소송거리로 전락, 각박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장점 살려 업그레이드

사실 골목길은 아이들에게는 놀이터고 어른들에게는 대화의 통로가 돼주는 서민 삶의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이웃과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 돈독한 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인 것. 때문에 일각에선 이러한 골목길 소송을 막기 위해선 골목길의 장점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이는 골목을 재개발 대상이나 생각하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것에는 돈만 추구하는 인간의 탐욕이 담겨있으므로 이러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줘야 골목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폐쇄되고 단절된 공간인 아파트가 절대 가질 수 없는 장점을 살려 문화재적 가치와 관광자원으로서의 골목길을 먼저 보존하거나 개발하자는 게 그들의 의견이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골목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고층 아파트를 짓는 지금의 재개발 방식은 문제가 있다. 골목의 뼈대는 그대로 두고 재개발 하거나 서민과 공존하는 재개발 방식을 생각해야 한다”며 “골목이 업그레이드되면 소송거리가 아니라 추억의 거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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