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취업난에 시달리면서 대학가에 난데없는 ‘학점조작’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전북지역의 한 지역대학은 정규수업을 수강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마치 수업을 받은 것처럼 처리해 파문이 일었던 것. 얼마 전에는 한 학생이 대학 전산망을 해킹한 후 후배와 친구의 성적을 F학점에서 A학점으로 조작한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기도 했다. 이에 본지가 대학가에 불고 있는 ‘학점조작’ 사태를 취재해봤다.

취업을 위한 학생들의 학점이 조작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성적표를 조작하는 고전적 방법대신 아예 성적 원본을 위조하기 위해 전산망에 침투하는 수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
학생들…전산망 해킹해 F학점 A학점으로, 무리한 입사조건 ‘학점조작’으로
학교…수강안한 학생도 받은 것처럼 처리, 취업성공률 높여 학교이미지 업
더욱이 이러한 ‘학점조작’ 사태에는 학생들뿐 아니라 학교가 직접 나선 사례도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허술한 전산망
평소 해킹에 관심이 많던 서울의 유명 모 사립대 졸업생 이모(27)씨는 지난 2월 보안감시 프로그램을 이용해 전산 관리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학교 전산망 침투에 성공한 이씨는 이 학교의 졸업반 임모(29)씨 등 4명의 부탁을 받고 지난 8월까지 모두 18건의 성적을 조작한 것.
이에 이씨가 F학점을 A학점으로 바꾼 게 6건, 이수하지 않은 과목에 A학점을 준 게 10건이었다. C학점 이하였던 2과목은 이수 사실을 삭제했다. 9과목의 성적을 조작해 3.60이던 평점을 4.01로 올린 황모(22)씨는 지난 1학기에 조교로 채용돼 장학금 120여만원을 받기도 했다.
결국 임씨 등의 성적이 F에서 A학점으로 감쪽같이 바뀌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 10월22일 학교 전산망에 18차례 무단 침입해 친구와 후배들의 성적을 올린 혐의로 이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성적을 바꿔달라고 한 임씨 등 4명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서 이씨는 “취업을 앞둔 친구와 후배들을 돕기 위해 대학 전산망을 해킹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임씨 등은 취업을 앞둔 4학년생이었으며 친구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학점관리가 어렵다고 하기에 도와준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나타났던 것.
이씨는 돈을 받거나 하진 않았지만 초보적인 수준의 해킹에 학교 전산시스템이 속수무책으로 뚫려 학교의 허술한 전산시스템이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더욱이 학교 측은 전산망이 뚫린 사실을 모르다가 학생들의 성적을 재조회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해킹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이렇게 이씨는 6개월간 자유자재로 전산망을 누비고 다닌 것이다.
결국엔 취업난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엔 학생뿐 아니라 학교도 ‘학점조작’ 사태에 동원되고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3일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도내 한 대학이 정규수업을 수강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마치 수업을 받은 것처럼 처리한 뒤 해당 학점을 부여한 혐의가 포착됐다.
더욱이 경찰은 지난 15일 학점조작과정에서 금전거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계좌추적에도 나섰다고 밝혔다. 경찰은 “현재 학점 조작과 관련해 해당 관계자를 소환해 사실 여부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특히 학점이 낮은 학생들에게 금품을 수수한 뒤 정상적인 학점으로 부여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계좌추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학교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경찰은 “학교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데다 이제 막 수사에 들어가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 줄 수 없다”며 “다른 대학에도 동일한 수법으로 성적을 조작한 사례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두고 “취업이 어렵다보니 일부 학생들이 범죄의 유혹에 빠지고 있는 것”이라며 “최근엔 졸업예정자로 남기 위해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계속 다니는 학생들도 있는데다 학교도 이를 부추기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 30대 취업률은 1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발표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정규직 취업률은 지난 2008년 48.0%에서 지난 2009년 39.6%로 8.4%가 감소했으며, 전문대학 졸업자의 경우 지난 2008년 64.5%에서 57.7%로 6.8%나 감소했다.
결국 무리한 입사조건을 요구하는 최근 취업풍토가 대학생들을 이른바 ‘학점조작’이라는 범죄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학교 또한 ‘학생들의 취업을 많이 시킨 학교’라는 이미지를 갖기 위해 이러한 취업전쟁을 돕고 있다는 게 일부 교육계의 말이다.
물론 이러한 취업난 속에서 대학가에는 다양한 취업전략도 나오고 있다. 사실 가장 많은 전략은 졸업을 늦추는 것이지만, 졸업을 늦추는 대신 소위 ‘스펙(취업에 필요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조건) 쌓기’에 신중을 가하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
이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스펙을 가지고 있으면서 취업을 못하는 불운한 세대들의 또 다른 취업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그들은 각종 경영활동, 어학연수, 취업 스터디, 자격증 취득 등 최대한 이력서에 빈자리가 없도록 갈고 닦고 있지만 자신을 뛰어넘는 경쟁자들이 많다는 현실을 깨닫고 좌절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전문가들은 졸업을 앞두고 있는 예정자들이나 이미 졸업을 한 사람들, 또한 재취업을 원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취업을 하려면 내년에도 취업경쟁은 더욱 처절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이러한 학생들을 위한 관계부처의 구체적인 대안이나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