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장품이 생명공학의 수준을 한 단계 뛰어넘고(?) 있다. 요즘 화장품 광고에는 유전공학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앞선 과학적 진화를 보여주는 제품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 광고 문구도 “신비로운 유전자 활성”부터 “깊은 밤 줄기세포 부활”까지 의약품인지 화장품인지 모를 단어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광고를 본 소비자들은 설마 설마하면서도 젊어지고 싶은 욕구에 해당제품을 구입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화장품보다 비싼 가격을 주고도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한 일부 소비자들은 불만을 털어 놓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본지가 화장품 광고의 허위·과장 실태를 취재해봤다.

화장품 광고의 허위·과장 정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를 보다 못한 정부가 규제조치에 나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서울지방청은 지난 5일 새 세럼 제품에 과대광고를 한 랑콤과 디올에 2개월간의 광고 업무정지를 사전 통지했다고 밝혔다.
생명공학 수준 뛰어넘는 화장품 광고, 의약품인지 화장품인지 헷갈려
효능·효과 보단 명품화장품 이미지 이용, 소비자 현혹해 주머니 탈탈
문제가 된 광고 문구는 랑콤의 노화방지 세럼인 ‘제니피끄 유스 액티베이터’의 ‘신비로운 유전자 활성 에센스’, ‘특정 유전자를 활성화하여 젊은 피부를 만드는 단백질의 합성을 촉진한다’와 크리스찬 디올의 노화방지 세럼인 ‘캡처 R60/80 XP 오버나이트 리커버리’의 ‘깊은 밤 줄기세포의 부활’이다.
의약품이야 화장품이야?
랑콤은 지난 7월부터 케이블TV와 잡지ㆍ신문을 통해 ‘제니피끄’를, 디올은 지난 9월부터 잡지·신문을 통해 ‘캡처 XP 오버나이트 리커버리’를 광고해 왔다.
먼저 랑콤은 지난 7월1일 에센스 ‘제니피끄’를 출시, 화장품에 ‘유전자’란 단어를 도입했다. 실제로 첨단과학을 표방한 제니피끄에 대한 반향은 판매고로 나타났다. 국내 출시 7일 만에 1차 출시한 1만1377개가 매진됐고, 이후 지속적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것.

하지만 일각에서는 ‘유전자’라는 단어의 적절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국내유전자의 한 전문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인간 유전자 내 단백질에 관한 연구는 미흡한 수준”이라면서 “인간 노화와 연관된 단백질 연구가 현재까지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랑콤에서 인간 유전자 내 노화와 관련된 단백질에 (간접적으로)영향을 미치는 물질을 발견해서, 이 홍보문구가 법적으로 책임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마치 유전자 내 노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단백질을 발견해서 화장품을 만든 것처럼 오인할 수 있도록 문구를 작성했다”고 지적했다.
사정은 디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디올의 경우 ‘줄기세포’라는 단어를 사용해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최초의 줄기세포 복원’에서 ‘최초’라는 표현은 화장품 표시 관련법상, ‘최고·최상’ 등의 절대적인 표현을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소비자가 오인할 우려가 있는 표현을 쓰는 것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의약품으로 오인 할 우려가 있는 ‘줄기세포’나 ‘유전자’라는 문구는 품질·효능이 객관적으로 확인될 수 없는 상황에서 화장품의 범위를 벗어나는 내용이라는 게 식약청 설명이다.
기술 아닌 표현 문제?
이에 식약청은 사전통지 후 20일간 랑콤과 디올 측의 이견이 없으면 광고정지 처분을 내릴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식약청은 지난 19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랑콤과 디올이 아직까지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며 “이대로라면 예정대로 2개월 정도의 광고정지처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디올 측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예정된 나머지 광고를 한 후 시정명령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앞으로 이 제품에 대한 광고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과대광고는 잘못된 거다. 없는 사실을 있다고 한건 아니다. 법에 위촉되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판단에 오해의 소지를 일으킬 수 있어 시정명령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줄기세포를 활성화 시켜주는 재료가 들어있다. 세포의 재생을 돕는 천연성분”이라며 “줄기세포를 튼튼하게 해준다는 의미를 부활이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말해 말했다. 때문에 본지가 ‘그런데 왜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하자 그는 막상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아함을 샀다
사실 이러한 화장품의 허위 과장 광고 사례는 비단 랑콤과 디올로 축약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식약청의 ‘화장품 과대광고 단속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지난 2009년 6월까지 2764건이 과대광고로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경희대 의대 교수가 최근 열린 대한피부과학회 화장품연구회에서 발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약 90%가 화장품 업체들이 광고를 통해 주장하는 효능에 대해 보통 혹은, 불신하는 의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거기다 고가의 수입화장품 중에는 1개에 43만원을 호가하는 제품도 있어 소비자들의 피해도 우려되고 있는 것. 그러나 이를 단속해야 할 식약청의 움직임마저 더딘 것으로 드러나 이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예컨대 식약청은 “올해부터 화장품산업 활성화 정책에 따른 규제완화 정책으로 과대광고에 대한 기준이 대폭 완화됐다”고만 설명하고 있을 뿐 화장품 과대광고의 허점에 대한 실태는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식약청은 본지와의 통화에서도 “화장품 과장광고를 모니터링이나 민원을 통해 그때그때 적발을 해나가고 있지만 따로 실태조사를 한 것은 없다”라고 말했던 것.
때문에 일각에선 “화장품 업무를 담당하는 식약청이 산업진흥이라는 명분에 갇혀 소비자들의 권리보호를 포기한다면 애꿎은 소비자들의 주머니만 털릴 수밖에 없다”며 “업체들 또한 명품화장품이라는 이미지를 이용해 효능·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제품을 과장 광고해 소비자들을 현혹시키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