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형집행제도의 허와 실
대한민국 사형집행제도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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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가 없는데도 수감자가 죽는다?"


최근 수감자의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집행자’의 개봉으로 ‘사형집행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사형선고를 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돼있던 연쇄살인범 정남규(40)씨가 ‘사형불안감’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형제도의 존폐여부가 다시 한 번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사형집행국가라고는 하지만 지난 12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수형자 10만 명당 자살률이 30.5명에 달해 OECD 국가 중 부끄러운 1위를 기록하고 있어 일각에선 “사형제도가 수감자의 자살을 방조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본지가 우리나라 사형집행제도의 허와 실을 취재해봤다.


▲ 영화 '집행자'의 한 장면.


교수대 위에 한 남자가 서있다. 남자의 이름과 범죄내용, 사형선고 사실 등이 확인되고 그의 마지막 말이 이어진다. 남자의 유언이 끝나자 집행 개시를 알리는 빨간 등이 들어온다. 커튼이 쳐지면 벽 뒤에 있던 5명의 교도관들이 일제히 앞에 있는 버튼을 누른다. 2~3초 뒤 남자의 발밑에 있는 장치가 열리면서 교수형이 집행된다. 물론 누구의 버튼을 통해 교수형이 집행됐는지 알 수 없다. 남자의 사망이 확인되면 시신이 거둬지고 24시간 뒤, 그의 시신은 가족에게 인계돼 장례가 치러진다.

사형제 거부하고 자살?

여기까지가 영화 ‘집행자’와 실제 사형집행자가 전하는 현재 우리나라 사형제도의 모습이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사형집행을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자가 있다.

부녀자 13명 등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돼있던 정씨는 지난 21일 1평 남짓한 서울구치소 독거실 내에서 목을 맨 상태로 교도관에게 발견됐다. 구치소측은 곧바로 정씨를 외부병원으로 옮겼지만 지난 22일 숨졌다고 전했다.

정씨에 대한 의료진의 1차 소견은 저산소증(뇌손상)과 심장쇼크로 인한 사망이었고 국립과학연구소의 부검결과에서도 목 졸림 외에 별다른 사인은 발견되지 않아 법무부는 자살로 잠정결론을 내린 상태다.

이에 법무부는 정씨의 직접적인 자살 동기를 최근 고조된 사형제 집행 여론에 따른 부담감과 불안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정씨는 지난 2004년 1월부터 2년여간 미성년자 2명을 성추행한 뒤 살해하고 길 가던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총 25건의 강도 상해와 살인 행각을 벌여 부녀자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지난 2007년 4월 사형이 확정됐다.

하지만 그는 인권 침해에 대한 논란 탓에 CCTV도 설치 안 된 독방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형수 신분이었음에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별도의 심리 치료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정씨는 교도관들의 눈을 피해 거실 내 105cm 높이의 TV 받침대에 쓰레기 비닐봉투를 꼬아 맨 100cm 정도 길이의 끈으로 목을 맬 수 있었다. 때문에 일각에선 자살 도구로 쓰일 수 있는 재활용 쓰레기봉투가 반입된 점에서 구치소의 수감자 관리 소홀을 문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자살 원인에 있어서는 정씨가 남긴 노트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그가 사형제도에 대한 불안감과 죄책감으로 자살한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씨는 일명 ‘조두순 사건(나영이 사건)’ 등으로 이슈가 된 사형제 존폐 문제에 대한 메모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남긴 노트에는 “현재 사형을 폐지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요즘 사형제도 문제가 다시…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이란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씨가 최근 잇단 흉악 범죄로 사형제 시행 논란이 부상하자 심경 변화를 일으켰을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일각에선 이러한 사형제도가 오히려 수감자들의 불안감을 사고 자살을 방조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어 사형집행제도의 존폐여부에 대한 논란도 함께 일고 있다.

피해자냐, 가해자인권이냐?

사실 사형집행제도의 존폐여부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특히 올해 들어 ‘강호순, 조두순 사건’ 등 흉악범죄가 잇따라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는 상태였다.

거기다 최근 광주고등법원이 전남 보성 연쇄살인범 오모(71)씨 사건과 관련해 사형제의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하면서 논란은 헌법재판소로 옮겨갔다. 하지만 이번 자살 사건을 계기로 사형폐지론자들이 목소리 역시 높아지면서 사형제도 존폐여부에 대한 찬반양론이 다시 한 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

사형제유지론은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흉악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려면 생명권도 일반적인 기본권과 같이 제약을 할 필요가 있다”며 “인간이 규범과 제도를 만들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한 생명권은 제한할 수 있으며 생명이나 이와 동등한 가치를 박탈하는 범죄는 사형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견해를 냈다.

이와는 반대로 사형제폐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냉혹한 사이코패스도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할 정도로 사형은 인간이 감내하기 어려운 비인도적인 제도이며 인간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인권의 가치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며 “아무리 범죄자라 해도 우리와 같은 생명을 갖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형제는 폐지돼야 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뉴스 댓글 등이 정씨에 대한 비난글로 도배되면서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 네티즌은 “사형 폐지는 있어서는 안 된다”며 사회불안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서 사형제는 있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인권을 존중해야 하지만 살인범에게 인권 보장은 영역을 넘어선 것”, “인권도 좋지만 피해자의 인권도 인권이다”, “사형시켜야할 흉악범을 가석방시켰을 때 그 흉악범이 다시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반면 사형제 폐지에 동의한다는 한 네티즌은 “인간이 아무리 잘 만들어놓은 법이라 해도 완벽할 수가 없는 것”이라며 “오판의 가능성과 인권을 생각할 때 사형제는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사형제폐지에 대해 유보론적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사형제 자체는 합헌이라고 보지만 국가가 정책적으로 이를 지속해야할지 폐지해야할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형제 존폐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된다”는 신중론에 무게를 뒀다.

사형제 자살 부추겨?

사실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12월, 한꺼번에 23명이 사형당한 이후 12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을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수감자 10만명당 자살률은 30.5명에 달해 OECD 국가 중 부끄러운 1위를 기록하고 있어 수감자 자살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구치소와 교도소 수감자의 자살은 수감시설 내 사망 원인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빈번해 교정당국이 크게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욱이 법무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4년부터 올 7월까지 전국 교도소나 구치소 등 교정시설에서 사망한 수용자 181명 가운데 8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 기도자 중 사망 직전 교도관이나 동료 수감자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진 경우도 연평균 80여건에 달했던 것이다.

그 사례를 보면, 지난 8월15일 대구구치소에서는 30대 수감자가 수용복을 찢어 목매 숨졌다. 지난해 12월25일에는 부산구치소에 수용 중이던 30대 재소자가 화장실 창문에 속옷으로 목매 숨졌고, 같은 날 수원구치소에선 남모(57)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기에 자살미수에 그친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12월23일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여간첩 원정화(34)씨가 자살을 시도했다가 발견돼 치료를 받기도 했다.

특히 정씨의 경우, 참혹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해 사형 집행 여론이 커진데다 사형수에 대한 질타가 높아지면서 사형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이 자살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사형제도 자체가 자살을 방조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법무부는 정씨의 자살을 계기로 “형 확정자의 불안감 해소와 심적 안정을 위해 종교인 상담제 등을 통해 수용관리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자살 우려자를 보다 세밀히 가려내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정신상담 전문가와 접촉 기회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사형제가 공식 폐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형수 입장에선 언제라도 자신이 형장에 불려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기에 냉혈한인 연쇄살인범에게도 사형은 이겨내기 어려운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사형제 내에서의 자살대책은 사실상 어렵다”는 회의론적 입장을 폈다.

이는 결국 사회와 차단된 채 극히 제한된 통로로만 외부의 분위기를 접할 수 있었던 사형수들에게 한동안 잠잠했던 사형제가 다시 거론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고,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그들 역시 정씨와 같은 극단의 선택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국민의 60% 이상이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고 있는데다 사형미집행 등의 관대한 처분으로 예방적 효과가 사라지면서 그에 따른 준법의식 또한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한 전문가는 “사형제 존폐 논란을 떠나 그런 흉악범의 자살에 일말의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납이 어렵다”며 “남의 목숨을 우습게 여기면서 자신은 사형제 폐지로 생을 이어 가려 했다는 사실이 참 가증스럽다”며 사형제 존폐논란 자체를 비난하기도 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하루 빨리 사형집행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편, 사형제 존폐 여부는 오는 12월 헌법재판소에서 결판이 날 것으로 보인다.


자유민주당 박선영 의원 [미니인터뷰]
“국민감정 따라 결정할 수 있는 형벌 아니다”

▲ 자유민주당 박선영 의원


사형미결수인 정남규 자살사건으로 사형제 존폐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박선영의원이 오는 12월2일 ‘사형제 폐지’관련 세미나를 연다. 이에 본지가 지난 26일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2008년 9월)하는 등 사형제 폐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박 의원과의 전화인터뷰를 시도해봤다.

정남규 자살사건으로 사형제 존폐여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사형미결수인 정남규의 자살은 사형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강력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형의 형태는 아니라는 거다. 범죄자의 처벌이유는 교화다. 교화는 가르쳐서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하는 거지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게 아니다. 국가법으로도 그것은 용납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공포심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피하고 싶어 한다. 죽음을 기다리는 그 사람들은 사실 하루하루가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인 것이다.

지난해 사형제 폐지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현재 법안은 어떻게 됐나.
사실 법안은 소위원의 서랍 속에 있다. 하지만 사형제라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생명권을 박탈하는 법은 곧 위헌이기 때문에 법안이 언젠가는 통과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민의 60% 정도가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
여론이 반대한다고 법안이 잘못된 게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 국민의 70%이상이 사형제도가 폐지되는 것을 반대했지만 법안이 통과됐고 지금까지 사회가 잘 유지되고 있다. 결국 사형은 국민감정에 따라 집행여부를 결정 할 수 있는 형벌이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사형폐지국 대부분이 국민 다수의 반대 속에서 사형제를 폐지했지만 막상 폐지된 뒤에는 국민의 저항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보면 법이 곧 여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여론도 중요하지만 법이 여론을 이끌어나가기도 한다는 얘기다.

단순히 사형제 폐지만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대책은 뭐가 있나.
먼저 교도소가 사형집행 장소가 아닌 참회의 장소가 돼야 한다. 미국의 경우엔 우리나라와 달리 교도소가 오픈되어 있다. 그 안에서 직업을 가질 수 있고 공부를 할 수 있게 돼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교도소 행정자체가 변해야만 여론도 자연히 돌아설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교정행정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 재범률을 낮추는 것이 효율적인 정책이며 그러한 변화를 단계적으로 높여야 하는 것이다.

사형제가 폐지됨으로써 우리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사형제가 범죄 억제 효과가 없음이 이미 많은 보고서를 통해 드러났다. 1988년과 1996년 UN 보고서에 따르면 사형제도가 종신형보다 더 효과적인 범죄 예방수단인지 증명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오는 12월2일 ‘사형제 폐지’ 관련 세미나를 통해서도 언급할 것이지만 EU의 29개국이 사형 제도를 실행하지 않고 있다. EU는 단지 경제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사형제 폐지 등 인권문제도 FTA 체결의 주요 전제요소라는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자칫 손해가 될 수 있는 사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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