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히 계단을 올라가, 신나게 계단을 뛰어내려와”
한국이 아닌 세계에서 먼저 이름을 알리고 있는 신예 피아니스트가 있다. 한 독일 언론은 하노버 벡슈타인 홀 독주회에서 연주하는 이유미(27)씨의 피아노를 “유쾌하고 활기차면서도 어둠과 우울함의 소리를 그림자처럼 보여준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면서도 다양한 음색과 자유로운 템포를 구사하는 보기 드문 연주를 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얼마 전 KBS 클래식 라디오 ‘FM 음악실’에 유망신인으로 소개되기도 한 그는 세계 속에서 한국을 알리며 자신만의 계단을 차분히 오르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 그랜드 호텔 1층 커피숍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이유미씨는 신기하게도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 음악을 닮아 있었다. 검은색 의상을 멋지게 차려입은 그는 나이답지 않은 화려함과 노련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것.
내면의 소리를 다양한 음색과 자유로운 템포로 구사하는 보기 드문 신예
음악은 곧 그의 삶이고 배움의 방향, 삶이 그대로 녹아난 음악 하고 싶어
여느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으레 무대 위에서만 숨겨진 카리스마를 비장의 무기처럼 보여줬다면, 그는 무대 위에서건 밖에서건 언제나 당찬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신기할 정도로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과 닮은, 젊은 음악가였다.
계단 같은 사람
독일에서 5년째 유학중인 이유미씨가 가족을 보기 위해 잠시 한국에 들렀다. 이제 독일은 그에게 제 2의 고향이 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익숙한 장소가 돼 버렸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결심했을 당시 유학 장소를 ‘독일’로 선택한 것에 대해 그는 “내 연주에서 가장 부족하다고 느낀 ‘아카데믹’을 독일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였다”며 “음악의 본고장에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그는 독일에서 ‘개성 있는 연주자’로 통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틀에 벗어난 캐릭터 있는 연주를 그들은 존중해주고, 그는 그들에게서 기본이 탄탄한 연주를 배운다는 것. 그래서 주변사람들은 그를 “계단 같은 사람”이라고 칭했다.
차분히 계단을 올라가고 신나게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유쾌한 사람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협연이나 콩쿨 연습으로 보낸다. 여느 음악가들처럼 그 역시 1년 스케줄이 미리 짜여 있어 각각의 프로그램에 맞춰 피아노 연습을 하는 것이 그 대부분의 일과인 것.
이에 대해 그는 가벼운 투정을 부리기도 했는데, “항상 음악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며 “왜 이걸 하고 있는 걸까, 행복하자고 하는 건데 왜 이렇게 힘든 걸까, 그러면 행복은 뭘까, 엉뚱한 고민을 한다”면서도, “어느새 행복과 관련된 철학책까지 찾아서 읽고 있는 나를 발견 한다”며 “결국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얼마 전에 ‘불행해지는 법’이라는 독일 책을 발견했다”며 “거기에 나와 있는 걸 반대로 하면 행복해진다”고 말하며 웃음 지었다.
음악 통해 삶 배워
이처럼 그는 음악 외적으로도 재능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 친구들로부터 ‘패셔니스타’라는 애칭으로 불린다는 그는 자신의 드레스뿐 아니라 친구들의 드레스까지도 음악에 맞춰 골라준다는 것.
또한 그는 “언어를 배우는 것도 좋아한다”며 “지금 하고 있는 영어와 독일어 말고도 이태리어와 러시아어도 배워 그들 나라의 음악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언어를 배웠다. 음악은 곧 그의 삶이고 방향이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음악과 닮아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풍족해 보일 것만 같은 그에게 시련의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혼자 오른 독일 유학길은 말 그대로 살얼음판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의 당차고 긍정적인 성격은 빛을 발했다.
이유미씨의 어머니(56)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언제나 혼자서 잘 커준 딸이었기에 독일 유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믿고 보냈다”며 “하지만 유미가 울면서 전화를 했을 땐 당장이라도 돌아오라고 하고 싶었다”는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어머니의 말을 빌자면, 그가 유학을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시(하노버 음대)를 준비하게 됐는데 연습할 피아노가 없어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나가던 성당에 들어가 목사님을 불러달라고 말하고는, 피아노를 치게 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고 한다.
그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며 “그만큼 절박하고 힘든 상황이었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다행히 내 모습을 목사님이 예쁘게 봐주셔서 새벽에 잠깐 피아노 치는 것을 허락받았고 난 입시에 붙었다”며 “그 후로 목사님께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그의 당돌(?)한 면모는 사실 무대 위에서 더 빛났다. 그는 무대를 ‘희열’이라고 표현했는데, 연습이 아무리 힘들고 남들이 누리는 일상생활을 포기하더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설명했다. 물론 그는 무대 위에 오른 다른 연주자의 연주를 듣는 것으로도 그와 비슷한 감동을 받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바르샤바 필하모닉에서 백건우 선생님의 피아노 연주를 보고 한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 날 수 없었다”며 “음악을 통해 그 사람의 삶을 전해들은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 역시도 “내 삶이 그대로 녹아난 음악을 하고 싶다”며 “그러한 진심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 싶다”는 마지막 포부를 전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