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부른 ‘식욕억제제’의 늪
죽음 부른 ‘식욕억제제’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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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먹으면 더 빠질 것 같아”

향정신성 의약품의 일종인 ‘식욕억제제’를 이용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식욕억제제가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를 참게 해 단기간에 살을 뺄 수 있게 도와준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식욕억제제는 뇌(포만중추)를 약물로 자극해 식욕을 줄이는 것으로 반드시 의사의 처방을 요할 정도로 많은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남용할 경우 구토나 환각 증세는 물론 심혈관 질환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여성은 이러한 식욕억제제의 과도한 복용으로 사망에 이르는 끔찍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에 본지가 죽음을 부르는 식욕억제제의 남용 실태를 취재해봤다.



한 여성이 식욕억제제에 의한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10월 초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에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된 김모(32)씨의 사인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펜터민’에 의한 약물 중독이라고 밝혔다.

살 빼는 마약 식욕억제제, 구토·정신착란 등 부작용 호소하는 환자 늘어
지방보다 근육 소모, 살찌는 체질로 바뀔 수 있어, 치명적 중독 시 사망


끊는 법 좀 알려줄래?

김씨가 복용한 ‘펜터민’은 일명 살 빼는 마약으로 불리는 비만치료제다. 펜터민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마약 성분이 들어 있어 반드시 의사의 진단 하에 처방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김씨는 친구들까지 동원해 과다한 처방을 받았던 것.

경찰은 “김씨가 다이어트를 위해 마약성분이 든 펜터민을 계속해서 복용했다”며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펜터민을 구하지 못하자 나중엔 친구 6∼7명에게 부탁해 계속 처방을 받을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물론 여기엔 김씨가 펜터민을 확보하기 위해 친구들을 동원한 사실을 알면서도 처방전을 써준 담당 의사의 책임도 있었다. 이에 경찰은 의사 A씨를 마약류관리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그러나 문제는 김씨처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식욕억제제의 부작용을 과시한 채 과도한 복용을 한다는 데에 있었다. 실제로 다이어트를 하는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식욕억제제가 살을 빼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과도한 복용에 대한 부작용을 알면서도 이를 쉽게 끊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한 네티즌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항정신성 식욕억제제 끊는 법을 알려 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놓기도 했다. 1년째 식욕억제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B(여)씨는 몸에 좋지 않은 것을 알고 2~3달 정도만 먹으려고 했다는 것.

하지만 약을 끊는 순간 8kg가 쪄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시달리다가 결국 약을 다시 복용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약을 안 먹으면 온갖 음식을 다 먹어치우고 배부른 것도 느끼지 못한다”며 “벌써 1년째 약을 복용해 돈이라는 돈은 다 쓰고 몸은 만신창이가 된 듯 불안하다. 어떻게 하면 약을 끊을 수 있는지 알려 달라”고 물었다.

이처럼 부작용을 호소하는 글들은 대체로 약을 중단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털어놨으며, 실제로 요요현상이나 정신착란을 경험했다는 여성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더 먹으면 더 빠질 것 같다는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 계속해서 약을 복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엔 더 많은 양의 약을 구하기 위한 불법적인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맘대로 먹는 건 자살행위?

실제로 최근 국내 여성들 사이에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등 ‘향정신성 식욕 억제제’ 복용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 국제마약통제국(INCB)에 따르면, 특히 한국은 살빼기 약으로 알려진 식욕감퇴제 소비량에 있어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다이어트 약물이 큰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비만의 주원인을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이라고 하는 만큼 식욕의 억제가 비만환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였던 것. 이에 많은 병원들이 식욕억제제를 비만치료제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식욕억제제를 이용한 체중감량은 약을 끊는 순간부터 살이 더 붙기 시작하는 요요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전문가들도 많다.

서울 청담동의 한 병원 원장은 “식욕억제제 등을 복용해 다이어트를 하면 체중감량은 되지만 지방보다는 근육이 소모돼 기초대사량이 낮아진다”며 “오히려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로 바뀌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부분의 식욕억제제가 중추신경을 흥분시켜 두근거림, 혈압상승, 가슴통증, 불안, 현기증, 불면 등과 같은 부작용을 나타내는데다, 장기간 복용 후 중단할 경우 극도의 피로와 정신적 우울증, 수면에 변화가 생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

무엇보다 남용하게 될 경우 그에 따른 중독 증상은 더욱 심각했다. 식약청 마약관리과에 따르면 “만성 중독 증상으로는 중증의 피부병, 불면, 자극과민, 신체기능의 과도한 증가, 성격변화, 정신분열병 유사 정신 이상 등의 질병이 발생될 수 있다”며 “과량 사용 시 사지가 떨리고 호흡이 빨라지며 의식을 잃을 수 있으며 불안, 혼란, 공격성, 공포로 인한 심리적 상태도 나타나 치명적인 중독 시 사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한 전문가는 “의사의 처방 없이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며 “반드시 의사와 협의 하에 복용해야하며 규칙적인 운동과 식이요법을 꾸준히 병행하는 것만이 건강을 해치지 않고 살을 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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