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장 리프트권에서 국정원 신분증까지…
전국이 지금 위조열풍에 빠졌다. 공무원들은 물론이고, 구직을 원하는 취업생들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 문서를 만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이들이 위조하는 문서의 종류도 지폐나 사·공문서 위조에서, 국정원 신분증과 스키장 리프트권 등 다양해지고 있다. 더욱이 위조 의뢰를 했음에도 돈만 갈취하고 실제 위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위조 의뢰자가 사기 피해자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최근 한 경사는 단속된 사행성 게임장 업주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변조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본지가 전국에 불고 있는 각양각색 위조 열풍을 취재해봤다.

국정원 신분증을 위조해주겠다던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전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1일 인터넷 상에서 신분증을 위조해주겠다고 속여 돈을 받아 챙긴 박모씨(28)를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해 12월29일 경기도 안산시 사동의 한 PC방에서 인터넷으로 이모(39)씨에게 ‘국정원 신분증을 위조해 주겠다’며 접근한 뒤 위조비 명목으로 60만원을 가로채는 등 모두 3차례 걸쳐 90만원을 은행 계좌로 송금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공무원·취업생 등 이익 위해 문서위조, 의뢰해도 위조사실 없으면 무죄
국내·외 간 위조서류 문제 불거지도, 진위확인 어려워 수사당국 골머리
국정원 신분증도 위조?
전북 군산에 사는 이씨는 지난 2008년 11월 초순쯤 각종 신분증과 문서를 위조해준다는 인터넷 ‘심부름 센터’ 카페를 발견했다. 대학원생으로 국가정보원 취업이 목표였던 이씨는 심부름 센터 카폐 운영자인 박씨에게 60만원을 입금한 뒤 국정원 신분증 위조를 의뢰했던 것.
그러나 돈을 받은 박씨는 이씨에게 연락을 한 뒤 “중국에서 물건이 오기 때문에 택배비 등 추가 경비가 필요하다. 물건이 서울에 왔는데 비밀리에 퀵서비스 운송을 해야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3차례에 걸쳐 1~20만원을 추가로 입금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이씨가 박씨에게 보낸 돈은 모두 90만원에 이르렀고 위조된 신분증은 끝내 도착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씨가 추가입금을 하지 않자, 이젠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국정원 신분증 위조를 의뢰한 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리겠다”고 협박해 100만원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던 것.
박씨의 협박에 시달리던 이씨는 마음을 굳게 먹고 국정원에 전화를 걸어 모든 사실을 털어놨다. 결국 이씨의 자수(?)를 받은 국정원이 전북경찰청 사이버 수사대에 관련 내용을 통보하면서 경찰 수사와 함께 박씨의 사기 행각은 종지부를 찍었다.
경찰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문서위조의 경우 위조실행착수를 한 시점부터 기소에 들어간다. 하지만 박씨가 돈만편취하고 실제 착수한 시점이 없어 사기 및 공갈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가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씨 외에도 대학 졸업증명서, 토익성적증명서 등의 문서위조를 의뢰해 온 사람 15여명으로부터 적게는 수십만원에서부터 많게는 350만원까지 뜯어내는 수법으로 모두 2000여만원을 가로 챈 것으로 드러났다.
법망 피해가는 의뢰자?
최근 경찰을 통해 전해지는 위조사건 관련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허위 근무상황부를 작성 제출한 초등학교 교장 등 교직원과 수료자명부를 조작해 자격증을 취득한 공무원 31명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힌 사건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학력위조를 밝히려다가 문서위조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했는데, 진짜로 오해할 수 있도록 특정대학교 교무처장의 직인을 복사해 공고문을 만들었다면, 사문서 위조에 해당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더불어 글로벌 시대를 맞아 국내외 간 위조서류 문제가 불거지고 있기도 하다. 위조된 해외서류로 국내 기업이나 개인을, 가짜 한국서류로 외국 기업이나 개인을 속이려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것. 특히 위조된 해외서류의 경우 진위확인이 어려워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외국에서 들여오다 적발된 위조 서류는 지난 2007년 340여장에서 지난 2008년 4600여장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세관에 적발된 위조문서도 불법입국이나 취업을 노린 여권 및 외국인 등록증이 대부분이다.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총괄팀장은 “갈수록 위조 수법이 정교해지고 있다”며 “요즘 여권은 사진을 붙이지 않고 사진 인쇄 후 그 위에 형광 문양을 덧씌우는데 이 문양까지 위조한다”고 말했다.
취업 등을 위해 외국 학위나 영어시험 성적표를 위조하는 사례도 많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해 10월 캐나다 대학에서 유학했다가 성적이 저조해 학위를 따는 데 실패하자 인터넷 카페에서 위조 학위를 구매한 권모씨를 적발했다. 지난해 6월에는 이민 신청을 위해 소득금액증명서 등을 위조해 캐나다 대사관에 제출한 일당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씨나 권모씨처럼 위조를 의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경찰은 “국정원 신분증 위조를 의뢰한 이씨는 처벌 기준이 애매해 사기 및 협박 등을 당한 피해자의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며 “그렇지만 박씨가 위조를 실제로 착수해 위조가 이루어졌다면 이씨도 위조관련 공범으로 조사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씨의 경우 경찰에서 책상에 국정원 신분증을 걸어놓으면 취업공부에 좋은 자극제가 될 것 같다는 이유에서 신분증 위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도다. 하지만 의도야 어쨌건 그러한 생각이 화근이 돼 취업 사기꾼으로부터 금품 요구에 협박까지 당한 사건이라는 게 경찰 관계자의 말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위조된 문서로 학력을 높이고 취직을 하려는 등 위조가 실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위조를 계획하려한 위조 의뢰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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