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있으면 입도 거칠어진다?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일부 공무원의 폭언과 모욕적인 언행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30대 판사가 재판 도중 69세 원고에게 “버릇없다”고 발언해 법원장에게 ‘주의조치’를 받은 데 이어 검찰 수사과정에서의 모욕적 언사도 도마에 오르고 있는 것. 최근엔 학생을 벌레에 비유한 교사의 폭언이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본지가 인격모독 일삼는 공무원들의 ‘막말’ 실태를 조명해봤다.

서울 명문 A고등학교 학생의 한 학부모가 지난 2008년 12월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에 따르면 2학년 교사가 종례시간에 담임을 맡은 교실에서 “인간쓰레기들, 바퀴벌레처럼 콱 밟아 죽여버리겠다. 너희가 사람XX냐”고 폭언을 했다는 진정을 받았다는 것. 이에 인권위는 지난 8일 결정문을 통해 폭언한 교사가 소속된 서울의 명문 A고등학교장에게 유사한 인권침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자체인권교육을 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30대 판사 69세 원고에게 ‘버릇없다’, 교사가 학생을 ‘바퀴벌레’ 비유
상대 존중하지 않는 모욕적 언행 남발, 그릇된 특권의식이 막말 낳아
선도 위한 폭언?
A학교 교사의 문제성 발언이 나온 것은 지난 2008년 11월4일. 당시 진정을 낸 학부모의 아들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심의를 받은) 학교폭력의 가해자로서 종례시간에 교실에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교사는 피진정인 진술을 통해 “교내 폭력을 선도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얘기했다. 만약 그런 인간 이하의 짓을 하는 녀석이 있으면 인간 이하의 벌레라고 취급하고서 밟아버린다고 생각할거라고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폭력 가해 학생들의 폭력 행위가 얼마나 나쁜 짓인지, 보복행위를 할 경우 가해학생들과 똑같이 처벌을 받을 것이다. 만약에 가해 학생과 어울리는 무리가 교내외에서 학급의 누군가를 때리거나 괴롭히면 나라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뜻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사는 이 외에도 “사회인이 되면 내 눈앞에 나타나지도 마라. 보이면 뭐로 확 찢어버리겠다. 나라도 경찰에 신고해 버리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학부모는 덧붙였다.
결국 인권위는 진정인과 피진정인, 참고인 진술 등을 토대로 “교사가 학생들에게 학생을 벌레에 비유하는 등의 폭언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런 행위는 교사로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학생들에게 수치심과 모욕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인권위는 “교사의 이런 행위가 학생 지도와 관리 책임이 있는 교사로서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경고성 발언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인권침해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자체인권교육 시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막말 파문
그러나 자체인권교육 시행이 필요한건 교육계 일각뿐이 아니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경찰이나 판·검사 등 법조계 일각의 폭언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진정인은 2008년 12월 경찰이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하면서 “노숙자냐,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구만. XX” 등의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지난해 3월 조사를 받으면서 한 순경에게서 반말과 욕설을 들었다며 진정을 낸 경우도 있었다.
여기에 2008 인권상담사례집에 보고된 (인권침해 상당의 기관별 현황에서) 검찰 관련 상담신청은 2005년 393건, 2006년 282건, 2007년 280건, 2008년 264건이었다. 검찰 관련 인권침해 시비가 해마다 줄어들고는 있는 셈이었지만, 여전히 매월 21건, 하루 0.7건 정도의 인권상담신청이 제기되는 등 적지 않은 사건관계자들이 불만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청사유도 대부분 폭언이나 위압적인 조사태도 등으로 인한 인격권 침해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사례집에 나타난 판·검사와 검찰수사관들이 했다는 막말 수준은 귀를 의심케 할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소년부 재판 담당 판사는 미성년 피고인에게 ‘차렷’과 ‘열중쉬어’는 물론 앉기와 일어서기까지 시키고 눈을 감으라고 했다가,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왔는데 판사 체면을 세우려는 것이냐”는 부모의 항의에 “나가있어라”고 고함을 질렀다는 것이다.
법정에서 방청객으로 참석했다는 한 신청인은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는데 한 판사가 “법정에서는 판사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라고 호통을 치고 자신의 이름과 주소, 직업까지 물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공무원 지나치게 위압적
이처럼 인권위가 매년 발표하는 ‘인권상담 사례집’에는 일부 공무원들이 폭언을 하고 지나치게 위압적이라는 불만이 그대로 표출돼 있었다.
서울대의 곽금주 심리학과 교수는 “막말을 해놓고 말로 했지, 내가 무슨 피해를 줬냐‘는 식으로 합리화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며 “막말도 충분히 폭력일 수 있는데 그것을 의식을 못하는 사람이 늘면서 막말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소통방식’을 문제로 지적했다.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말의 특성이 언어의 폭력성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공무원들의 그릇된 특권의식이 막말을 낳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관료 우위적 시각과 함께, 판사나 검사처럼 사회적으로 독점적 지위가 인정되는 사람들이 닫힌 공간에서 습관적으로 반복했던 현상이 겉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교사와 학생의 경우에도 일종의 힘의 주종 관계가 성립되는 등 교실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의 막말이 관행적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결국 일부 공무원들의 막말 논란은 언어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로 볼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공무원들의 막말 논란이 사회문제화 된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연세대 황상민 심리학교수는 “고위 공직자의 하대와 막말에 대해 모멸감을 느끼거나 충격을 받은 것 자체가 그간 당연시되던 권력체계의 붕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법원이 재발방지를 위해 대책을 세우겠다고 발표한 것 자체가 완전한 민주사회로 가는 변화의 한 단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