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근절 위해선, 미혼모 복지부터…”
불법낙태 근절과 관련된 사회적 여론이 찬성에서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프로라이프 의사회(임신중절 원천 반대 운동 단체)가 불법 낙태를 한 의사를 고발한 이후 상당수 산부인과가 낙태수술 중단하면서 그에 따른 혼란을 겪고 있는 것. 현행 기준만으로는 불법낙태 근절이 미혼모 출산 등 사회적으로 적잖은 파장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10대가 임신하게 될 경우 ‘낙태가 막히면 미혼모가 될 확률이 높은데 그게 바람직하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0대의 낙태 논란 배경에는 부실한 성교육이나 미혼모 복지 정책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가 불법낙태 근절을 둘러싼 찬반논란을 취재해봤다.

프로라이프가 불법낙태 근절을 촉구하자는 의미에서 충격적인 불법낙태 사례를 공개했다. 공개된 10건의 자료에는 국·공립병원에서 낙태 시술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에서부터 전남의 한 조산소가 낙태 이후에도 태아가 살아서 나올 경우 목을 눌러 사망시키는 행위를 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프로라이프는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 4일 당장은 적극적인 낙태 단속을 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힌 데 대해 강력히 반발하며 그동안 국민으로부터 제보 받은 사례들을 지난 5일 전격 공개하기에 이른 것이다.
불법낙태 고발 후, 산부인과 낙태수술 중단하면서 그에 따른 혼란 겪어
부실한 성교육·미혼모 복지 정책 우선, 낙태 할 수밖에 없는 삶 존재해
만연한 불법낙태
현재 낙태관련 모자보건법 상에는 임신부에게 유전학적 정신장애가 있거나, 전염성 질환이 있을 경우, 근친상간이나 강간 등에 의한 임신, 임신이 지속되면 산모 건강이 위험해질 때 등 5가지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라이프가 공개한 불법낙태 사례에는 임신 25주된 여성이 아기 아버지에 의해 낙태를 강요받고 있다는 구조 요청을 하거나 조산원에서 미혼모 낙태 및 영아 살해가 이뤄지고 있다는 제보가 담겨있다. 서울의 한 산부인과는 임신 주수와 상관없이 여러 병원에서 거절 받고 온 어떠한 임산부도 낙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명확하게 임신이 아닌데도 불안해서 온 사람들에게 무조건 낙태를 한다고 멀쩡한 자궁을 긁어내서 수술하고 발생된 낙태 처리물은 원장실 안에 있는 작은 주사실방 하수구에 불법으로 수십 년 동안 버리고 있다는 내용도 접수됐다.
이처럼 프로라이프는 병원 수입을 위해 낙태수술을 선호하는 의사들의 사례를 강조하면서 ‘자정’을 외치고 있는 것. 프로라이프는 자궁천공·골반염·우울증 등 다양한 후유증을 들어 “낙태가 여성의 건강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 이전인 지난 3일 프로라이프는 불법 낙태한 산부인과 의사 3명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들은 처벌보다는 사회의 경각심을 일으키려는 의도임을 분명히 했지만,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은 의사회의 동료 고발방식에 분노를 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프로라이프의사회에서 동료 산부인과 의사를 불법 임신중절 수술 행위자로 고발하는 초유의 상황이 전개됐다”며 “이러한 현실에 동료로서의 안타까움과 이들의 근시안적 문제 해결 방식에 심한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특히 연간 35만 건에 달하는 낙태수술 중 합법적인 사유로 시행되는 경우가 극히 드문 점을 감안하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낙태허용 범위에 대한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산부인과 의사 전체가 낙태수술을 보이콧 할 경우 사회적으로 만만찮은 파장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인 것.
무엇보다 10대가 임신할 경우에 대한 우려가 크다. 경기도 의정부의 한 산부인과 개원의는 “임신한 14~15살 소녀를 불법낙태라는 이유로 수술을 거절하게 되면 그 소녀의 인생과 가정은 어떻게 되겠냐”고 토로했다.
허용범위 어디까지
정부 역시 이러한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낙태허용 범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부인과학회, 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 시민단체 등 20여 명으로 구성된 이 TFT에서는 불법 낙태 근절 방안을 논의해 왔고 오는 2월 중으로 종합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종합계획의 핵심은 바로 어느 범위까지 낙태를 허용하느냐의 문제”라며 “현재 TFT 구성원들 간에도 이견이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낙태허용 범위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대를 형성한 만큼 조만간 모자보건법 상의 범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실제 불법낙태 전면금지 조치에 따른 사회적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10여개 여성 단체는 최근 성명서를 발표해 “낙태의 배경에는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삶과 경험이 존재한다”며 산모의 선택권 보장을 주장했다.
더욱이 낙태가 비싸지고 음성화되면 여성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 상황에서 낙태는 근절될 리 없고 무면허 시설로 인한 음성적인 낙태시술이 증가해 여성의 건강과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때문에 일각에선 아예 이번 기회에 낙태를 합법화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석중 분당 연세필 산부인과 원장은 “현장에서 환자들을 만나보면 태아에 심장기형이 있거나 기형아라서 낙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을 우리 사회가 충분히 수용하고 있냐”고 반박하고 있어 당분간 찬반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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